26년 전 어린이집 교사를 기억해 준 제자…“알아봐줘서 고마워”[사랑합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4-06-20 09:21
  • 업데이트 2024-06-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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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합니다 - 어느덧 지금 가르치는 원생의 학부모

어린이집 대체교사를 하러 갔다. 평생 7세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만둔 지 5년이 넘었기에 사실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 같은 교사를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돼 삐죽삐죽 올라온 흰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밝게 화장도 했다.

신나게 아침 인사를 하고 교실로 들어서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낯선 교사를 떨떠름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반사적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노장은 사라졌을 뿐 죽지 않았다. 목소리 톤이 달라지고 평생 몸에 배어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처음부터 무장 해제돼 다정하게 다가오는 아이, 까칠하게 마음을 닫아 두는 아이, 다가가도 되는지 아닌지 간을 보는 아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아이, 극강의 내향성을 지닌 아이까지 반나절이 지나니 조금씩 벽이 허물어져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의 하원을 돕고 쓰레기를 비우기 위해 어린이집 현관을 서성이는데 자녀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가 나를 보자고 했다.

“선생님, 혹시 저희를 가르치지 않으셨나요?”
“아∼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머니 성함이?”
“저 ○○○이에요.”
“어머나 ○○○, 왜 기억이 안 나겠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저를 알아봤어요?”

내 얼굴이 방부제를 먹은 동안이거나 그녀의 머리가 비상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후자가 맞을 것이다. 26년 전 그녀와 그녀의 오빠를 가르쳤다. 그 당시 남매의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늘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남매를 정성껏 돌봐줬다. 다행히 남매는 어린이집을 좋아했고 선생님들을 잘 따라주었다.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가면서 점점 거리가 생겼다. 교회에서 어쩌다 만나 안부를 묻는 게 전부가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서도 앨범을 자주 봤기에 내 모습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러 왔는데 멀리 보이는 내 모습이 예전에 자신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단다.

그 아이의 기억에 내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잘 자라줘 고맙다고, 날 기억해줘 고맙다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도 힘을 줘 나를 안았다.

“선생님, 지금 제 감정이 미묘해요.”

학부모가 된 제자의 눈에도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과거에 남아 있는 나를 모르는 척하지 않고 알아봐 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마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찾아낸 것은 현재의 그녀가 단단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오랜만에 대체교사 제의를 받고 사실 조금 망설였다. 이 나이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아이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며 기도했다. ‘오늘 하루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베풀게 해주세요. 내가 평생을 해 온 일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해주세요.’

날 기억해 준 제자와의 따뜻한 포옹은 자신감을 잃은 내게 감격스러운 선물이 됐다.

‘잘 자라줘 고맙고, 알아봐 줘서 고마워. 어쩌면 너의 모습이 내 존재의 의미이지 않았을까? 사랑한다.’

조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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