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만큼 두려운 佛 극좌[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7-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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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진 국제부 차장

1930년대 프랑스는 혼돈의 시기였다. 경제는 대공황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은 독일과 이탈리아처럼 극우파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당시 양대 좌파 정당이었던 사회당과 공산당은 극우파 집권을 막기 위해 1936년 4월 1차 총선을 앞두고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연합세력의 이름은 민중전선(Le Front Populaire). 민중전선은 그해 5월 치러진 2차 총선에서 1당 자리를 차지했다.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좌파연합이 1당을 차지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회당 당수였던 레옹 블룸이 총리에 올라 연립 내각을 구성했다. 주 40시간 근무제, 2주 유급휴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당시로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정책을 도입했다. 민중전선은 1938년 연립 내각이 사실상 붕괴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민중전선은 2024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범좌파 연합은 지난 7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을 누르고 1당 자리를 차지했다. 범좌파 정당 연합의 이름은 신민중전선(Le Nouveau Front Populaire). 1936년 집권한 민중전선에서 프랑스어로 ‘새로운’이라는 뜻의 누보(Nouveau)를 붙인 것이다. 신민중전선(NFP)은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와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이 뭉친 좌파연합이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톨레랑스’(관용)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반(反)유대주의와 이민자 반대 등을 내세운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 프랑스를 더욱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분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자 총리 자리를 요구하고 나선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는 극좌 성향의 정치인이다. 사회당 각료를 지냈던 그는 사회당이 친기업적으로 변질했다며 2008년 탈당하고 2016년 LFI를 창당했다. 멜랑숑 대표는 2012·2017·2022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매번 고배를 마셨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급진적 사회주의 성향 때문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의 유권자들은 RN의 마리 르펜보다 멜랑숑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신민중전선은 이번 총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1년 전에 실시한 연금개혁 폐기를 약속하고, 최저임금을 14% 인상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생필품과 식품, 에너지 가격을 동결하고 초과이윤에 대한 세제를 도입할 뿐 아니라 부유층에 사회기여금을 걷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5%로, 유럽연합(EU)이 정한 한도(3%)를 넘겨 신용등급까지 강등된 상황에서 추가 재정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총선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성 정당이 국민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극단주의 세력이 침투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극우·극좌 세력의 부상도 보수(공화당)의 부패와 진보(사회당)의 무능에 대한 심판으로 양당이 몰락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여야가 극단적 대결 국면과 편 가르기를 지속하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우려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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