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추락·원전 폭발… 기술에 대한 맹신이 재난 부른다[북리뷰]

■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1983년 9월 11일 새벽 미국 뉴욕에서 출발해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KAL) 007기가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269명이 사망했다. 경로 이탈 탓이었다. 당시 소련 전투기가 경고비행, 경고사격 등을 했으나 007기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미국 정찰기라고 확신하고 미사일로 격추했다. 007기의 조종사는 사고 이력이 없는 베테랑이었고, 여객기는 자동항법장치에 따라 운항했기에 항로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고 추정됐지만 끝내 비극은 벌어졌다. 이 참사는 자동항법장치에 대한 과도한 신뢰,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 소련의 신경전, 경기 절감을 위한 비상등 소등 등 인적·기술적 문제가 결합해 발생한 재난이었다.

과학기술학자인 저자는 20세기 후반부터 겪어온 수많은 재난을 ‘기술재난’이라는 범주로 다시 파악하고자 한다. 기술재난은 태풍·지진 같은 자연재난이나 화재·붕괴 같은 사회재난과 구별된다. 단순히 사람의 실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기술과 인간의 네트워크로 이뤄진 복잡한 기술 시스템이 오작동하면서 발생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도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해상에서 진도 9.0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내륙에도 지진이 일어나 원자로가 일시 중단됐다. 이에 보조 발전기를 가동하려고 했으나 13m가 넘는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완전히 붕괴됐다. 원전이 견고한 엔지니어링의 가장 뚜렷한 사례라고 과신한 결과다. 누구도 재난을 원치 않지만 사실상 재난 없는 세상에서 살기는 어렵다. 과거 자연재난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로 받아들이고 피해자들이 서로 도우며 결속을 다졌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재난은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책임 소재를 따진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는 화합하기보다 분열하기 쉽다. 게다가 인적·기술적 오류가 복잡하게 얽힌 기술재난은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워 ‘음모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기술재난은 혁신과 진보의 그림자다. 기술재난을 컨트롤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기술재난 연구센터’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재난 공동체’로서 미래를 책임 있게 헤쳐가는 데 필요한 실천적 지식을 나눈다. 248쪽, 1만7000원.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