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2.28 화요일
불꽃 같은 암릉을 두르고 있는 전남 영암의 월출산에서 험준하기로 이름난 산성대 탐방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 바위를 타고 넘는 아찔한 구간에 놓아둔 난간과 철제 다리가 아니라면 감히 범접할 엄두도 내기 어려웠던 곳이다. 산성대 코스는 월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7년 동안 닫혀 있었다.

‘수반 위에 올려 놓은 기기묘묘한 형상의 수석’. 전남 영암 월출산의 모습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월출산은 남도의 너른 평야 위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다른 산에 능선을 기대지 않고 저 홀로 서서 뜨거운 화염처럼 혹은 거친 파도처럼 일렁이는 화강암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산이지요.

월출산에는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접근 불가의 코스가 있었습니다. 가장 거친 암봉이 길게 이어진 북쪽 능선의 산성대를 넘어가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입니다. 산성대 코스는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단 한 번도 개방되지 않았다가 27년 만인 지난 2015년 10월에 열렸습니다. 말이 27년이지 사실 성난 사자의 갈기 같은 암릉을 타고 오르는 이 탐방로는 그 이전에도 접근 불가의 길이었습니다. 탐방로를 조성하면서 철계단과 난간을 놓아 겨우 접근이 가능하게 된 지금도 그 앞에 서면 오금이 다 저릴 정도입니다.

이른 봄에 월출산을 찾아 가장 거친 코스를 골라 오르기로 했던 건 그곳이 남도의 거대한 들을 마주 볼 수 있는 뛰어난 조망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순한 길을 골라서 오를 때 거친 암봉에만 눈이 머물렀지만, 거친 암릉 길로 오르자 비로소 순한 남녘의 너른 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성대 코스를 오르는 내내 등 뒤로는 초록의 기운이 번져가는 영암의 너른 들과 유순한 영산강의 물줄기가 펼쳐졌고, 정상에 오르자 멀리 해남과 강진의 푸른 바다가 봄볕에 반짝였습니다.

똑같은 산임에도 그 길을 바꾸자 보이는 것이 전혀 달랐습니다. 순한 길에서는 거친 것이, 거친 길에서는 순한 것들이 눈길을 붙잡았던 것이지요. 길 하나가 시선을 바꾸고 마음을 바꿉니다. 월출산에서 굽어본 남도의 평야에 가득한 봄기운이 더 소중하고 각별했던 것은, 정상의 나뭇가지 끝에 수정처럼 꽝꽝 얼어붙은 상고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릿발 같은 추위 속에서 봄은 더 소중했던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사는 일도 산을 오르는 것과 무어 그리 다를 게 있겠습니까.

월출산 천황봉 정상에 오른 등산객이 산 서쪽의 장쾌한 전망 앞에 섰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도열한 능선 너머에 도갑사가 있다. 월출산은 들판에 저 홀로 우뚝 솟아있어 정상에 서면 목포와 강진, 해남의 바다까지 보인다.



# 범접할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한 산

전남 영암 월출산의 이름은 자그마치 열셋이나 된다. 하나의 산에 이렇듯 이름이 여럿이다. 영암 쪽에서 보면 달이 이 산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했고, 산 위로 뜬 달이 보배같다고 해서 ‘보월산(寶月山)’이라고도 불렀다. 화개산, 금저산, 천불산, 지제산, 월산, 낭산 등도 다 월출산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었다.

월출산의 위세는 과거에 더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규모가 작아서인지 전국 24개 국립공원 중에서 인지도가 가장 낮은 축에 들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이 산의 명성은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월출산을 일러 ‘본국 밖에서는 화개산이라 칭한다’는 문장이 있다. 산 이름에 ‘빛날 화(華)’에 ‘덮을 개(蓋)’란 이름을 쓴 건 문수보살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구름이 월출봉 정상 위에 떠서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만 해도 월출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보는 산’에 가까웠을 것이었다. 사방 백 리에 큰 산이라고는 없는 너른 평원 위에 거칠고 험준한 바위들로 솟은 장대한 돌산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가득하다. 경사를 누이고 비탈에 밧줄을 매고 거친 구간마다 철제 덱과 구름다리를 놓은 지금도 아찔한데,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조선시대 선비들이 금강산이며 지리산 같은 큰 산을 수없이 유람하며 산행기를 남겼음에도, 월출산에 대해서는 먼발치에서 경탄한 기록이 전부이고 산행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남긴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한다”는 글도, 김시습이 월출산을 찾아 “호남에서 제일 가는 그림 같은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 뜨지 않고 산간을 오르더라”고 쓴 것도, 다산 정약용이 월출산의 산정을 묘사하며 ‘높다란 뿔 하나가 창공에 꽂혀있어’라고 쓴 것도 모두 산 ‘속’이 아닌 산 ‘밖’에서 쓴 글이었다. 월출산이야 말로 오르거나 유람하는 산이 아니라, 아찔한 위용으로 서서 푸른 밤마다 달을 낳는 신령스러운 산이었던 것이었다.

월출산이 품고 있는 ‘영암’이란 마을 이름도 스스로 움직이는 바위(動石)를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해서 ‘영묘할 영(靈)’ 자에 ‘바위 암(岩)’ 자를 써서 붙인 이름이다. 바위도, 그 바위가 이룬 산도, 그리고 그 산을 거느린 마을도 모두 범접할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했다는 뜻이다.

월출산 아래에는 2200년의 역사를 헤아리는 구림마을이 있다. 고려말 도선국사의 탄생설화가 깃든 마을이다. 구림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활개치듯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 거목.

# 월출산을 만나러 가는 방법

월출산은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평야와 나주평야의 너른 들에 우뚝 솟아 있다. 영암 땅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목포에서도, 화순에서도, 나주에서도 월출산은 보인다. ‘월출산에 간다’는 건 두 발로 산을 오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월출산은 산에 발을 들이기 전에 눈으로 먼저 만나는 게 순서다.

월출산은 멀찌감치서부터 제 존재를 드러낸다. 방향을 가늠하거나 지도를 펴고 확인해볼 필요도 없다. 저지대의 평야 위에서 험준하게 솟구친 비범한 산세를 만난다면 그게 바로 월출산이다. 남도 땅으로 접어들어 달리다가 홀연히 기암의 산 하나가 나타나 ‘저게 월출산인가’ 싶다면 십중팔구 맞다. 산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더라도 먼발치서 산의 형상을 발견하고 차츰 산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면 이미 월출산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전남 장성의 국도에 접어들자 아득하게 월출산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거리를 가늠해보니 자그마치 70㎞ 밖이다. 그때부터 길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월출산의 모습은 달라졌다. 남쪽으로 시야가 트일 때마다 월출산은 기기묘묘한 수석처럼 떠올랐다.

영암 땅에 들어서면 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근육질의 화강암 바위 앞에서 입이 딱 벌어진다. 암봉 사이로 봉긋하게 솟은 해발 809m의 천황봉이 아득하다. 아직 봄기운이 당도하지 않은 까마득한 산정에는 아침마다 나뭇가지 끝에 얼어붙은 상고대가 순백으로 반짝인다. 이즈음 월출산은 수많은 암봉이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번들거린다. 얼어붙은 바위들이 녹아내리는 중이라서 그렇다.

월출산을 찾아 영암 땅에 당도했다면 뒤로 물러서서 산의 지세부터 봐야 한다. 월출산에 들어서기 전에 마치 섬의 실루엣으로 평야 위에 떠 있는 산의 형상을 만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영암에는 월출산과 마주 보는, 월출산 높이의 딱 절반쯤 되는 백룡산이 있다. 백룡산의 발치인 덕진면 운암리의 송석정 마을에 ‘덕진 차밭’이 있다. 1979년 순수 재래종 차나무를 심어 조성한 제법 너른 차밭이다. 차밭의 연둣빛 새순은 아직 멀었지만 덕진 차밭에서 봐야 할 것은 차밭이 아니라 그 너머로 펼쳐지는 월출산의 산세다. 차밭 너머로 운암리 일대의 들녘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멀리 월출산이 그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다. 산 하나의 형상이 그림처럼 또렷하다. 산에 오르기 전에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풍경이다.

거대한 평야 지대에 솟은 월출산을 뒤로 물러나서 보면 마치 수반 위에 올려놓은 수석처럼 감상할 수 있다. 월출산과 마주 보고 있는 백룡산 자락 아래 덕진 차밭에서 월출산을 바라본 모습.

# 기암의 한복판, 가장 험한 길을 택하다

이제 월출산으로 들어간다. 깎아지른 아슬아슬한 암봉들이 늘어선 험준한 월출산의 깊숙한 골짜기를 처음 찾아 들어갔던 건 종교와 신앙이었다. 월출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남아있는 것만 해도 불상과 석탑, 승탑이 각각 10개씩, 비석 7개, 석조물 5개가 있다. 1987년 광주 민학회는 월출산 곳곳에서 40여 개의 절터를 확인했고, 뒤이은 문화재청 조사에서도 33곳의 절터와 사찰이 확인됐다. 전남 지역에서 하나의 산에 가장 많은 불교문화 유산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이 거대한 바위산이 한때 수많은 절집들로 불국토를 이루었을 것이니 월출산은 옛 사람들에게 그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에는 소사(小祀) 터의 자취도 남아있다. 소사란 ‘작은 제사’를 말하는데, 신라 때 명산 대천에 제사를 대, 중, 소로 나눠 지냈다. 경주 부근의 명산에서는 큰 제사(大祀)를,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 등 오악에서는 중간 제사(中祀)를 지냈고, 월출산 등의 명산에서 작은 제사(小祀)를 지냈다. 옛 사람들이 이 아찔한 벼랑 끝의 천황봉까지 올라와 제사를 지냈던 건 그만큼 기원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아찔한 천길 벼랑으로 우뚝 솟은 산은 유람이 아닌 종교와 기원의 이름으로 비로소 다가설 수 있었다. 월출산 절집에서의 구도 수행, 제사의 신묘한 영험은 이렇게 닿기 힘든 곳이어서 가능했을 것이었다. 이렇듯 목숨을 내걸다시피 가야 닿을 수 있는, 두려움과 고통의 끝에서 자신의 소원이 하늘에 닿는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을 것이었다.

월출산을 오르는 길. 국립공원 지정 후에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가 지난 2015년 10월 개방한 ‘산성대 코스’를 망설임 없이 택했던 건 영암에서 올려다본 기암의 한복판으로 오르는 길이자, 가장 험준한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산행의 들머리가 영암읍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우니 옛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이 길로 오르내렸을 것이었다. 이 비범한 산중에다 달아맬 소원이 있거나 거대한 화강암이 뿜어내는 기(氣)를 받고자 한다면 산성대 코스를 택할 일이다.

# 성난 사자의 갈기 같은 바위를 넘어가는 길

산성대 탐방로 코스의 입구는 영암읍의 남쪽에 조성해 놓은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뫼길’의 들머리와 겹쳐진다. 산자락을 횡으로 감아 도는 둘레길에서 곧바로 수직의 탐방코스가 시작된다. 들머리에서 해발 471m의 산성대까지는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데, 이 구간에서 눈길을 붙잡는 건 산이나 암봉이 아니라 거대한 들판이다.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면 바위 아래로 영암 일대의 너른 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영산강의 물줄기는 물론이고, 목포 앞바다까지 광활하게 펼쳐지는 평야가 넓어도 이렇게 넓을 수 없다. 푸릇푸릇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 논과 갈아낸 붉은 황토 흙의 밭이 마치 기워놓은 조각보 같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탐방로 구간 내내 뒤를 돌면 이런 경관이 펼쳐진다.

탐방로의 딱 중간쯤에 있는 산성대는 월출산의 봉수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월출산 봉수대는 산 정상이 아니라 해발 471m의 산성대에 있었다. 기암의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 올라야 하는 정상에다 봉수대를 놓는 게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산성대 입구의 바위에는 ‘월출제일관(月出第一關)’이라는 음각의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음각이 새겨진 바위는 ‘문바위’라고 불리는데 문을 단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문바위를 지나면 거대한 돌문 형상의 바위가 나타난다.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인데 어찌나 고인돌과 닮았는지 자연이 저 스스로 만들어낸 경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산 전체가 바위인 월출산에 기묘한 형상의 수많은 기암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곳이다. 월출산에는 수많은 비경이 있고, 그만큼 위험한 구간도 많다. 위험한 경계에 위치한 절경이 많다는 뜻이다.

산성대 코스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자 최고의 절경이라면 문바위를 지나 천황사 코스와 길이 합쳐지는 광암터까지 이르는 구간에 있다. 이 구간에서 줄곧 성난 사자의 갈기 같은 암봉을 타고 넘는다. 아찔한 벼랑마다 난간을 세워두고 바위와 바위를 타 넘는 자리에는 철제 덱을 놓아두었는데, 이런 시설이 없다면 감히 오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구간이다. 산성대 코스가 정비되기 전에 이쪽에다 발을 디딘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너른 바위가 펼쳐진 광암터에서 산성대 코스는 월출산을 찾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택하는 천황사 코스와 만나 정상까지 이어진다. 좁은 바위 문인 통천문을 지나 월출산의 정상인 천황봉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는 거친 암봉의 능선이 뻗어있고, 고개를 들면 북쪽으로는 거대한 평야와 목포 앞바다가, 남쪽으로는 해남과 강진의 바다가 펼쳐진다. 천황봉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의 장쾌한 규모감은 다른 산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막 봄 기운이 번져가고 있는 영암 땅에는 신라말 도선국사의 자취가 깃든 자그마치 2200년 내력의 구림마을도 있고, 백제 왕인박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갑사가 있으며, 월출산 반대편 강진에도 산자락 가득 푸르른 차밭과 다산 정약용이 노닐던 백운동, 그윽한 정취의 옛 절 월남사 터, 그리고 천년고찰 무위사가 있다. 모두 다 월출산이 낳은 것들이다. 그러니 영암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월출산을 오르고 산자락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봄날의 여정은 충분하다.



월출산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광주톨게이트를 통과해 산월IC에서 제2순환고속도로 방면으로 우측 고속도로 출구로 나온다. 제2순환고속도로 유덕IC로 빠져나와서 무안-광주고속도로 무안 방면으로 갈아탄다. 무안-광주고속도로 서광산IC로 나와서 49번 지방도로를 타고 지석대교를 넘자마자 1번 국도로 갈아타고 가다 왕산교차로에서 영암 방면 13번 국도에 오르면 영암읍이다. 영암읍 영암실내체육관 건너편, 현대 대동주유소 옆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여기가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뫼길’의 들머리이자 월출산 산성대 탐방코스의 출발지점이다. 산성대 코스를 택하면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까지 편도 3시간쯤 걸린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영암에서는 전통한옥에서 묵는 것이 좋겠다. 군서면 모정리 모정마을의 월인당(061-471-7675)은 장작을 때는 전통한옥이다. 구림마을에는 안용당(061-472-0070), 대동계사(010-5054-3680) 등 한옥민박이 있다. 영암읍 군서면 해창리에는 온천욕을 겸할 수 있는 월출산온천관광호텔(061-473-6311)이 있다. 영암읍에서 멀긴 하지만 삼호방조제 쪽에 특급호텔인 호텔현대목포(061-463-2233)가 있다. 월출산 천황사 지구와 도갑사 지구에는 민박집이 여럿 있다. 영암읍에는 리젠시모텔(061-473-5454) 등 모텔이 10여 곳 있다.

영암의 먹을거리라면 단연 낙지다. 학산면 독천리 일대는 오래전부터 낙지요리로 이름을 날리던 곳인데 간척이 이뤄지면서 바다가 멀리 물러나 버렸지만, 아직도 낙지 음식으로 내놓는 식당 40여 곳이 모여 손님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암읍에서는 추천할 만한 이렇다 할 식당이 없으니 차로 30분 남짓인 강진읍을 찾는 게 낫겠다.


영암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7년 2월 2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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