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5.17 수요일
삼국시대에 축조한 경남 밀양의 연못 양량지는 농사를 위한 수리시설로 만들어졌지만, 섬을 띄워놓고 경관을 즐기는 빼어난 정원이기도 했다. 양량지의 섬에는 운치 있는 정자 완재정이 들어서 있다. 양량지와 완재정은 담 아래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이팝나무 꽃이 만개한 요즘이 가장 아름답다.


경남 밀양은 지금 만춘(晩春)의 계절이 피워낸 꽃들로 환합니다. 그림 같은 연못 양량지(陽良池)의 운치 있는 정자 담에는 이팝나무 몇 그루가 피워낸 꽃이 기품 있었고, 밀양댐 아래로 가는 길에는 만개한 이팝나무가 늘어서 이룬 5㎞의 꽃 터널이 화려했습니다. 지금 밀양의 대기 속에는 옅으면서도 은은한 꽃향기가 그득합니다. 아름다운 5월.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 어찌 꽃뿐이겠습니까. 깊은 절집 표충사로 드는 숲에서도, 예림서원의 반들반들한 마루에서도, 만어사의 이끼 낀 바위에서도 오래된 것들이 봄볕 속에서 익어가는 그윽한 향기가 묻어났습니다.

# 늦봄에 가장 화려한 꽃을 만나는 곳

봄을 장식하는 가장 화려한 꽃은 무엇일까. 순서대로 보자. 팝콘처럼 피어나는 매화가 봄의 기별을 가장 먼저 알린다면 일순 화르르 피었다가 지는 벚꽃은 봄기운의 절정을 보여준다. 매화와 벚꽃에 뒤이어 만춘의 봄날에 피어나는 것이 이팝나무 꽃이다. 봄이 한껏 무르익은 뒤에 새로 난 가지 끝마다 순백의 꽃을 피워 내는 이팝 꽃의 화려함은 벚꽃 못지않다. 만개한 이팝나무 꽃은 가지마다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둥실 뜬 흰 구름처럼 화려하다. 이팝이란 나무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잔 꽃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나면 사발에 소복이 얹힌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했다가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도 하고, 여름이 들어서는 입하(入夏)에 꽃이 피어 입하목(入夏木)이라 불렀고 입하가 이파를 거쳐 이팝으로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팝나무는 예로부터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였다.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꽃이 많이 피지 않는 해는 흉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올해는 풍년이 틀림없다. 이팝나무 꽃이 올해 유독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팝나무 꽃이 가장 화려한 풍경을 빚어내는 곳이 경남 밀양에 있다. 가지 가득 피는 꽃의 절정은 모여서 필 때 가장 화려하다. 밀양에는 늦봄에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가 도처에 있다. 모여서 피어나는 곳도 있고, 띄엄띄엄 꽃을 피우는 곳도 있다. 모여서 피어난 꽃이 가장 화려하지만, 품격으로 보면 딱 맞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몇 그루 나무의 꽃이 뿜어내는 그윽한 정취가 단연 한 수 위다.

밀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는 부북면 화악산 아래 연못 양량지에 있다. 양량지는 ‘위양지(位良池)’란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연못 앞에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축조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 그럴 듯한 설명과 함께 ‘위양지’란 안내 현판을 세워두었지만, 본래 이름은 양량지다. 근래 바뀐 이름에다가 ‘선량한 백성’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설명을 매달아둔 셈이다. 각설하고…. 신라 때 축조됐다는 양량지는 논에 물을 대던 수리 저수지였으나 인근에 거대한 가산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쓸모를 잃었다. 논에 물을 대지는 못하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두르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으니 ‘쓸모가 바뀌었다’고 하는 쪽이 맞겠다. 아름드리 왕버드나무와 소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두르고 있는 양량지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연못의 물 위에 대숲과 버드나무로 빽빽한 다섯 개의 섬을 띄워 두었으니 수리 저수지의 역할은 물론이고, 애초에 빼어난 경관을 가꾸자는 목적도 있었던 게 틀림없다.

밀양시 단장면 아불 삼거리에서 밀양댐 아래로 이어지는 1051번 지방도로. 이 길 양쪽으로 만개한 이팝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그 거리만 5㎞다. 단장천의 물길을 끼고 구름처럼 피어난 이팝나무 꽃이 긴 띠를 두른 듯하다.



# 완재정, 늦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다

양량지의 풍경을 완성하는 건 정자다. 연못에 떠 있는 다섯 개 섬 중 하나에 1900년에 지어진 안동 권씨 문중 소유의 정자 ‘완재정’이 있다. 당시에는 배로 드나들었다는데 지금은 정자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였다. 노 저어 배로 드나드는 연못 속의 정자라니…. 누가 이런 기막힌 곳을 정자 자리로 택했을까. 연못 한쪽에 정자를 들이는 것만으로 연못 전체를 통째로 정원으로 누리는 자리를 찾아냈던 건 사실 정자가 지어지기 400년 전의 일이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12년 만에 돌아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던 안동 권씨 일족이 양량지에 정자를 짓고자 이름부터 먼저 지어두었다. 그리고 이곳을 오가며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실제 정자를 짓지 못했지만, 마음속에다 그윽한 정자를 지었던 셈이다. 처음 그 자리를 택한 게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눈썰미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밀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팝나무가 이 정자의 담 너머에 있다. 완재정 담장을 끼고 있는 아름드리 이팝나무는 지금 꽃이 절정이다. 실가닥 같은 순백의 꽃들이 가지마다 터져서 치렁치렁하다. 정자로 건너가는 다리 주변에 이팝나무 몇 그루가 더 있고, 담장 한쪽에는 이팝나무에 질세라 찔레꽃이 흰 꽃을 화려하게 피워내고 있다.

완재정과 이팝나무 꽃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자리는 연못 건너편이다. 물 건너로 정자의 기와와 토담, 그리고 만개한 꽃을 매단 이팝나무가 수면에 반영되는 모습은 가히 황홀할 지경이다. 여기야말로 늦은 봄을 배웅하는 아름다운 꽃이 지나가고 있는 자리다.

정자와 이팝나무뿐만이 아니다. 연못 주위에는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왕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고, 연못을 두르는 숲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보라색 꽃을 피운 오동나무가 늘어서 있다. 길 위에는 떨어진 쪽동백 흰 꽃잎으로 양탄자를 펼쳐놓은 듯하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늦은 봄의 황송한 대접을 받는 듯하다.

# 만개한 이팝나무 꽃이 이룬 구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밀양에는 이팝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길이 있다. 단장면의 아불 삼거리에서 밀양댐 아래로 이어지는 1051번 지방도로. 이 길 양쪽으로 이팝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그 거리만 5㎞다. 한쪽에만 이팝나무가 심어진 곳도 있지만, 만개한 꽃을 매단 이팝나무가 길 양쪽에서 가지를 맞잡으면서 꽃 터널을 이룬 구간도 있다. 단장천의 물길을 끼고 밀양댐 아래까지 이팝나무 흰 꽃이 구불구불 긴 띠를 이뤘다. 나무마다 만개한 꽃의 모습이 마치 설경(雪景)을 연상케 한다.

이 길에 심은 이팝나무는 밀양댐을 완공한 2001년 무렵 심어진 것. 당시 심었던 묘목의 수령을 감안한다면 대략 20년을 헤아리는 수령인데, 이팝나무는 성장이 빨라서 활개 치는 가지들이 길 양옆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팝나무의 평균 수명은 자그마치 500살. 지금도 좋지만 나무들이 한 해 한 해 더 크게 자랄수록 이팝나무 꽃 터널도 더욱 화려해지고 깊어지리라.

이곳의 이팝나무 길은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어서일까. 차량 통행이 뜸한 이 길을 지나는 차들은 열이면 열 모두 주춤거리다가 멈춰 섰다. 길 위에서 예기치 않은 꽃 사태를 만나 감탄하다가 멈춰선 이들이 차에서 내려 저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팝나무 가로수길을 지나서 당도하는 밀양댐 제방 아래에는 생태공원이 있다. 여기는 공원 자체보다 주변의 그윽한 풍경이 더 빼어나다. 이런 경관 사이에 들어선 펜션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 대구보건대학의 보현연수원이 있다. 세련된 외양의 독특한 건축이 인상적인 곳이다. 여기에 자그마한 정원이 딸린 노출 콘크리트 건물 별채가 있다. 1층은 커피숍이고, 2층은 보현박물관이다. ‘혼인’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박물관은 문이 잠겨서 아쉬웠지만, 카페에서 내는 2000원짜리 커피의 향이 그윽하다.

밀양을 대표하는 건 밀양강을 끼고 있는 언덕 위에 들어선 거대한 누각 영남루다. 영남루는 규모도 그렇거니와 처마의 선도, 현판의 글씨도 다 시원시원하다. 영남루의 압권은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 불교·유교가 한 담장 안에…표충사

이팝나무 길과 밀양댐이 있는 단장면에는 표충사가 있다. 밀양에서 꼽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소다. 밀양에서는 ‘표충’이란 이름이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다. 절 사(寺)자를 쓰는 표충사(表忠寺)가 있고, 사당 사(祠)자를 쓰는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여기다가 표충비와 표충서원도 있다. 밀양에서 ‘표충’이란 밀양 출신인 조선시대 승병장 사명대사를 기리는 이름. 그 이름이 붙여진 절집과 사당, 서원이 여기저기로 자리를 옮겨다녀 더 혼란스럽다. 연원을 파고들면 더 복잡해지니 이쯤에서 접어두고 딱 두 곳, 절집 표충사와 표충비만 얘기하자. 함께 모여 있을 것 같지만 표충사는 밀양 동쪽 끝 단장면에 있고, 표충비는 밀양 서쪽 끝인 무안면에 있다.

절집 표충사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곳으로 드는 길 얘기부터. 차를 타고 표충사로 드는 길은 온통 짙은 숲이다. 벚나무 숲을 지나면 은행나무가, 그 길을 지나면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울한 숲을 이뤘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을 끼고 이어지는 길 위로 군데군데 떨어지는 빛이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그 길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만으로도 표충사는 가볼 가치가 충분하다.

표충사의 분위기는 단정하면서도 우아하다. 사찰의 직선의 공간 배치가 단정함을 보여준다면, 우아한 맛은 전각의 처마 선과 손때 묻은 누각의 마루, 그리고 굽은 기둥이 만들어낸다. 표충사에는 한센병에 걸린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마시고 나았다는 물이 솟는 영정약수도 있고, 법당 앞의 단아한 삼층석탑 앞에 260년 된 토종 매실나무도 있다. 봄볕이 쏟아지는 매실나무 발치에는 지금 나무가 보시로 내려놓은 듯 일찍 떨군 풋 매실로 그득하다.

# 표충사, 그곳을 지나간 인물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표충사의 본래 이름은 죽림사였다. 경내에다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 표충사와 표충서원을 옮겨 오면서 절집의 이름도 표충사로 바꿔 걸었다. 절집이면서 서원과 사당을 산문 안에 함께 품고 있으니 불교와 유교가 한데 어우러진 형국이다. 불교와 유교를 휘저어 한데 섞은 것은, 불교는 물론이거니와 유교적 가치까지 실현했던 사명대사 때문이다. 수도와 정진의 삶을 꿈꾸었지만, 나라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조정은 그를 끊임없이 호출했고, 그때마다 그는 고뇌 속에서 그 큰 짐을 기꺼이 어깨에 올렸다.

표충사에는 사명대사 말고도, 또 한 사람의 굵은 자취가 남아 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 스님. 그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법대를 나와 판사로 일하다 사형선고를 내린 뒤,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엿장수를 하며 전국을 떠돌다 출가했다는 전설적인 얘기로 유명하다. 스님은 1966년 여기 표충사 서래각에서 입적했다. 부도탑은 거대한 바위 위에다 자연석을 얹어둔 독특한 모양이다.

인물 얘기가 나온 김에 김종직의 생가도 들러보자.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조의제문’을 지은, 그래서 무오사화의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영남 사림파의 영수인 점필재 김종직이 여기 밀양 출신이다. 생전에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빗댄 글을 남겼다는 이유로 그는 죽은 뒤에 무덤이 파헤쳐지고 부관참시의 형을 받았다.

생가는 단출하고 소박하다. 비문에도 생전의 업적만 간략하게 담았을 뿐 사화 얘기나 조의제문 얘기는 한 줄도 없다. 뜻밖에도 밀양 향교에서는 그를 모시지 않는단다. 생가 인근의 예림서원 한 곳만 그를 배향하고 있을 뿐이다. 사후에 남긴 그의 글 한 줄이 여러 문중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탓일까. 아니면 세조를 비판했으되 세조 승하 후 공덕을 극찬하는 글을 짓기도 한 어긋난 행적 때문일까.

표충사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만나는 문인 수충루. 이런 누각식 정문은 향교와 서원에서 주로 쓰이던 건축이다. 수충루 앞에도 아름드리 이팝나무가 꽃을 치렁치렁 매달고 있다.


# 불법을 닦으러 산으로 온 물고기떼

사명대사의 생가가 있는 무안면에는 표충비가 있다. 사명대사가 세상을 뜬 지 132년 뒤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사명대사의 행적과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사적을 새겼다.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영험으로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비 면에 물방울이 맺혀 흐른다고 해서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하다.

비석 한쪽에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부터 시작해 2011년까지 땀을 흘린 서른 번의 기록을 적어두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비석은 땀을 흘렸을까. 정답은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았다’이다.

밀양까지 갔다면 만어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발 670m의 만어산 턱밑의 절집 만어사는 절집의 위세보다 그 앞에 펼쳐진 너덜겅으로 이름이 난 절집이다. 무너져 내린 큰 돌들이 절집 옆의 비탈면에 가득하다. 그게 무슨 볼거리가 되나 싶지만, 시커먼 돌들이 주르르 흘러내린 모습과 거기 곁들여진 전설이 자못 흥미롭다. 만어산에 살던 독을 품은 용이 부처의 설법으로 제자가 되자, 소문을 들은 용왕의 아들이 자신도 제자가 되길 소원해 수만 마리의 물고기 부하를 이끌고 부처를 찾아 제자가 되길 간청했단다. 그때 용왕의 아들을 따라온 물고기들이 만어사에 당도하자 돌로 변했고 그게 바로 너덜겅의 바위라는 것이다.

신기한 건 너덜겅의 돌들은 서로 두드리면 깊고 맑은 종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만어사의 돌들이 ‘종과 경쇠 소리가 난다’는 얘기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돼 있다. 만어사를 찾은 이들은 너나없이 돌을 두드려 보는데, 어느 돌이나 맑은 소리가 나는 건 아니다. 바위에 돌이 부서진 가루가 희게 앉아 있다면 그게 곧 여러 사람이 두드려본 자리인데, 거길 두드리면 영락없이 맑은 종소리가 났다.

너덜겅 돌 위쪽에는 만어사의 전각 미륵전이 있다. 미륵불 대신 집채만 한 자연석 바위를 그대로 놓고 지붕과 벽체를 세워 만든 전각인이다. 거기 모셔둔 바위가 바로 전설 속의 용왕 아들이라고 전한다. 바위에서 관음의 형상이 희미하게 비친다고 했지만, 바위는 고래가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에 가까웠다. 신기했던 건 미륵전 앞마당의 커다란 바위였다. 이 바위는 돌로 두드리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데, 여기저기를 두드려보니 일곱 가지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곳은 밀양 여행의 필수 코스인 영남루. 양쪽에 침류당과 능파당이란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의 영남루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힌다. 누각은 규모부터 현판의 글씨까지 시원시원하다. 영남루는 밀양강 건너편에서 보는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조명 켜진 영남루를 바라보면서 천변을 따라 느릿느릿 걷는다면 봄밤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밀양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로 대구까지 가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밀양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수도권에서 가자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김천갈림목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다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시간이 조금 단축된다. 밀양에서는 시내 한복판의 영남루를 중심으로 양량지, 표충사, 만어사 등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동선의 순서를 세심하게 짜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미리 관광안내지도로 이동시간과 순서를 감안해가며 움직여야 시간 낭비가 없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밀양에서는 밀양관광호텔(055-356-3882)이 간판격인 숙소다. 객실은 2년 전쯤 리모델링해 깔끔한 편. 2인 기준 평일 숙박요금은 6만 원쯤으로 저렴하다. 밀양에는 펜션이 많다. 펜션은 대부분 밀양댐과 표충사가 있는 단장면에 몰려 있다. ‘물안개피는마을 & 들꽃향기’(055-352-4300)와 ‘밀양펜션 아름드리’(055-351-0082), ‘알프스관광펜션’(055-352-5763) 등이 단장면에 있는 숙소다. 이 밖에도 밀양댐 아래 생태공원 인근에 펜션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여름 성수기만 아니라면 이쪽에는 예약하지 않고 가도 쉽게 방을 구할 수 있다. 밀양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돼지국밥이다. 밀양시내 밀양 새마을금고 본점 인근의 ‘설봉돼지국밥’(055-356-9555)이 알아주는 맛집이다. 국밥이 구수하면서도 담박하다. 밀양 사람들이 설봉돼지국밥을 최고로 친다면 외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전통시장 내 식당골목의 ‘단골집’(055-354-7980)이다. TV프로그램 등에 소개돼 밀양을 찾는 외지인들로 늘 북적인다.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의 밀양돼지국밥(055-354-9599)과 무암면소재지의 동부식육식당(055-352-0023) 등도 알아주는 곳이다.

밀양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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