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6.14 수요일
강원 고성 ‘하늬라벤더팜’의 라벤더 꽃밭. 라벤더뿐만 아니라 이랑 사이에 심어둔 붉은 꽃 양귀비와 호밀이 한데 어우러져 농원 전체가 황홀한 색감으로 물들었다. 라벤더 꽃은 지난 주말 절정을 이뤘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꽃을 볼 수 있다. 옷까지 갖춰 입고 꽃밭을 거니는 두 여성은 베트남에서 온 관광객이다.


강원 고성의 진부령 아래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화려하게 피어나는 라벤더꽃이 보라색 벨벳의 물결을 이루는 농원이 있습니다. 한 사내가 13년 동안 뿌린 눈물과 땀으로 이룬 라벤더 꽃밭은 남북 대치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쇠락할 대로 쇠락한 고성 땅을 화사하게 치장합니다. 고성에는 진부령 아래 깊은 숲도 있고, 적막한 바다 풍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보다 더 마음을 끌었던 건 쇠락한 풍경과 척박한 땅에서 자란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화려한 꽃밭이 되기도 했고, 안타까운 죽음이 되기도 했습니다. 꽃밭에서 시작해 경관을 살핀 뒤 한 사내의 무덤에서 끝나는 고성으로 여정을 떠납니다.

# 보랏빛 벨벳을 이룬 라벤더 꽃밭

진부령 아래 ‘하늬라벤더팜’이 있다. 아름다운 꽃밭이 곧 가장 훌륭한 소출이 되는 이른바 ‘경관농업’의 농원이다. 라벤더는 1년에 딱 한 번 보름 동안 피었다가 진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라벤더 꽃밭이 보여주는 건 비현실적인 색감이다. 라벤더를 하나하나 보면 꽃이 작은데, 무리 지어 꽃밭을 이루면 강렬한 보라색의 벨벳처럼 펼쳐진다. 짙은 보라색이 뿜어내는 이국적인 느낌이라니….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다.

고성의 라벤더 꽃밭을 만든 건 한 사내가 13년 동안 뿌린 땀과 눈물이다. 꽃밭을 만드는 걸 두고 ‘모종을 심어 길러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보는 이들에게는 그냥 보기 좋은 꽃밭일 뿐이지만, 가꿔낸 이에게 그건 고된 노동과 수없는 실패, 포기에 대한 망설임, 반복되는 조바심을 거쳐 이룬 성취와 다름이 없다.

마주 앉은 하덕호(56) 하늬라벤더팜 대표는 수시로 눈시울을 붉혔다. 목이 메어 말을 끊기도 여러 번이었다. 인생역정을 듣기로 한 게 아니라, 꽃밭 조성 과정을 담담하게 물었는데도 그랬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는 눈물겨워 했다. 그의 눈물은 두 가지 의미였으리라. 하나는 힘들었던 시간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야 사람들이 찾아와주니 그게 사무치게 반가워서일 것이다.

자동차부품회사를 조기 퇴직한 뒤 허브를 유통하는 유기농매장을 열었던 하 대표가 이곳 고성에 땅을 마련한 때는 2005년. 하필 강원 북단의 고성 땅을 택한 건, 구릉의 빼어난 경관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른 봄에 수분 공급이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라벤더는 폭설이 잦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 그 꽃밭을 키운 건 눈물이 8할

라벤더 농사는 쉽지 않다. 원산지와 기후나 토질이 다른 탓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잘 자란다고 해도 한국 땅에서 잘 자라는지는 심어봐야 안다. 한국에서 이만큼 대단위로 라벤더 농사를 지어본 이가 없으니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순전히 땅과 몸으로 확인하며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 적응 여부는 품종이 아니라 개체 차이에서 나온다. 해마다 잘 자라는 것만 솎아내서 꺾꽂이로 후계목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라벤더 꽃밭을 가꾸려면 무수한 시간을 쌓아야 하는 건 그래서다.

라벤더를 잘 기르려면 꽃이 피는 초여름보다 개화 전인 봄과 꽃이 지고 난 늦여름이 더 중요하다. 봄 가뭄이 길어지면 그해에, 늦여름에 비가 잦으면 이듬해에 꽃밭은 엉망이 된다. 그러니 꽃이 피기 전에도, 꽃이 피고 난 뒤에도 노심초사의 날들이 계속된다. 라벤더를 키우는 데 ‘땀’보다 ‘눈물’이 훨씬 더 많은 건 그래서다. 꽃이 좋을 때 농원을 찾은 이들은 눈앞의 꽃밭만 보지만, 그걸 키우는 사람은 꽃이 진 뒤에 바람을 기다리고, 차가운 겨울에는 눈을 기다린다. 기대보다는 조바심이 이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다.

하 대표가 5년여의 농사 끝에 처음 겨우 볼 만한 라벤더 꽃밭을 만들어 냈던 것이 지난 2010년. 그러나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비가 잦아 애써 키운 라벤더가 모두 녹아내렸다. 5년 동안의 노고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제 손으로 키워낸 꽃들이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녹아 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던 건 아닌지, 한사코 말렸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옳았던 건 아닌지…. 돈이 모자라 땅을 일부 떼어 팔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봐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7년 만인 올해 ‘최고의 꽃밭’을 만들어 냈다. 농원을 들어서는 이들이 열이면 열, 모두 탄성을 지르게 하는 라벤더 꽃밭을 말이다.

고성의 송지호 남쪽 오호리 마을의 등대 아래 갯바위 지대에 우뚝 서 있는 서낭바위. ‘서낭’이란 이름은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기이한 형상의 이 바위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음을 짐작하게 한다. 커다란 부채 형상의 화강암 바위를 침식에 강한 규장암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다. 가는 목 위에 올라선 바위도, 그 위에서 자라는 마른 소나무도 아슬아슬하다.



# 꽃밭에서 찍는 ‘인생 샷’ 몇 장

경관농업이란 팔레트를 들고 붓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의 색은 다른 색과 어우러질 때 더 아름다운 법. 보라색 라벤더는 붉은 꽃 양귀비, 갈색 호밀밭과 어우러져 더 돋보인다. 여기다가 농원 곳곳에 세워놓은 유럽풍 건물이 이국적인 정취를 보탠다. 푸른 색감의 창과 크림색 벽으로 치장된 우아한 프로방스풍 건물과 장미가 흐드러진 뒷마당의 작은 정원을 둘러보다 보면 유럽의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라벤더 꽃밭을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라벤더를 비롯해 양귀비와 호밀, 그리고 이국의 식물들이 기막힌 색감을 뿜어내니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완벽한 자신의 사진을 일컬어 ‘인생 샷’이라 한다던가. 그렇다면 여기서는 사진찍기에 서툴러도 인생 샷 몇 장쯤은 너끈히 담아낼 수 있겠다.

라벤더 꽃밭 주위에는 작은 메밀꽃밭도 있고, 줄지어 심어놓은 외래종 허브 꽃들도 있다. 아직 아름드리 거목은 아니지만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자라는 자그마한 숲 그늘도 있다.

그럼에도 하늬라벤더팜의 꽃밭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후라노(富良野)에 있는 ‘팜 도미타’의 거대한 규모에다 대면 아직 많이 모자라다. 하지만 하 대표는 더 이상 욕심이 없다. 운영자금이 바닥나 눈물을 머금고 팔아치웠던 땅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의 3만3000㎡(1만 평) 남짓의 공간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어 내는 게 목표다. 라벤더 농원에는 식당도 숙소도 없다. 허브제품을 파는 매장과 라벤더를 넣어 만든 몇 가지 음료를 파는 작은 야외카페가 고작이다. 식당과 숙소는 분명 ‘돈이 되는 일’일 텐데도 하 대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맛있는 음식과 쾌적한 잠자리를 만드는 일은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가 자신 있다고 한 일은 단 하나, 매혹적인 꽃밭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래서 하늬라벤더팜의 꽃밭은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이듬해가 더 화려해질 것이고, 음식이나 숙소가 아니라 화사한 꽃밭을 좋아하는 이들을 불러들일 것이다.

# 진부령에서 만난 쇠락한 것들

하늬라벤더팜이 있는 강원 고성으로 가려면 진부령을 넘어야 한다. 진부령의 경관은 한계령에 한참 부족하다. 터널로 단숨에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미시령터널의 빠른 속도도 없다. 이게 고개인가 싶을 정도로 느리게 고도를 높이다가 단숨에 구불구불한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별 신통할 게 없다는 것, 그래서 바쁘지 않다는 것, 소박한 상점과 마을이 남아 있다는 것. 진부령 고갯길이 지닌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부령 정상에는 번잡한 휴게소 대신 소박한 미술관이 있다. 진부령미술관. 이래봬도 고성군이 운영하는 유일한 군립미술관이다. 고갯마루에 무료 입장의 고즈넉한 미술관이 있는 길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차들이 바삐 지나는 길이었다면, 35년 전쯤 면사무소 출장소가 산 아래로 내려간 자리에 들어선 미술관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미술관이 내세우는 것은 이중섭 상설전시실이지만, 여기에 진품은 단 한 점도 없다. 액자에는 프린팅된 작품들뿐이다. 그림을 찍은 조악한 화질의 사진도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난데없이 원로배우들의 소싯적 얼굴 사진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영화 ‘마부’의 김승호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허장강도 있다. 미술관에 웬 원로배우 사진. 알고 보니 전석진(82) 진부령미술관 관장이 왕년에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꼬마 신랑’을 기획한 제작자였단다.

다른 전시실에는 화가 이동영이 힘찬 필치로 산을 그린 100호가 넘는 대작들이 전시돼 있고, 또 다른 전시실에는 6·25전쟁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 흘러간 영화배우 얼굴과 이중섭의 그림, 6·25전쟁 사진과 설악산 그림이 한데 뒤섞여 있는 셈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진부령미술관이 보여주는 건 이른바 ‘키치(kitsch)’의 느낌이다. 고성 땅에서 자주 마주치는 건 낡고 쇠락한 통속적인 풍경들이다. 고성 일대가 금강산 관광으로 들썩거릴 무렵에 7번 국도가 새로 뚫렸지만,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되면서 경기는 일시에 사그라들었고, 옛 국도변의 상점들도 빠르게 무너졌다. 오가는 차량이 손에 꼽을 정도인 옛 국도변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어쩌다 문을 연 젓갈 매장 앞에선 주인이 의자를 내놓고 앉아 졸고 있다. 그들의 탓이 아닌 쇠락이 안쓰럽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서툰 이들의 일상이 한편으로는 정겹다.

진부령 아래 원시림의 숲 사이를 걷는 트레킹 코스 ‘소똥령 숲길’의 초입에 놓인 출렁다리. 길이 온통 초록으로 그득하다.


# 진부령 아래 가장 청량한 숲길

진부령 고갯길을 넘어서 46번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한 길로 내려서면 곧 ‘소똥령 마을’을 만난다. 마을 이름은 고성의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양을 가던 고개 ‘소똥령’에서 따왔다. 도로가 나면서 고갯길은 오래전에 흐려지고 말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옛길을 다듬어 ‘소똥령 숲길’이란 이름의 트레킹 코스를 놓았다.

46번 국도변에서 시작해 소똥령 마을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편도 1시간 30분 남짓의 가벼운 코스다. 숲길은 경관만을 놓고 보면 밋밋하기 이를 데 없다. 능선에서의 조망도, 눈이 번쩍 띌 만한 절경도 없다. 대신 이 길에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있다.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기 전까지 외지인에게 개방되지 않아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숲 사이로 길이 지나간다. 이 길에서는 청량한 숲 향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들숨과 날숨을 세면서 느리게 걷는 게 제맛이다. 이렇게 느리게 숲길을 걷고 난 뒤에 소똥령 마을 장신리 유원지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즐긴다면 더 부러울 게 있을까.

# 적막한 해변과 기기묘묘한 바위들

▲ 고성 거진읍의 반암해수욕장 뒤편 언덕의 개망초 만발한 풀숲에 있는 김득구 묘.
진부령을 내려서면 간성읍이다. 여기서 북쪽으로는 거진항과 화진포가 있고, 남쪽으로는 가진항과 송지호가 있다. 먼저 간성의 북쪽 얘기부터.

민통선과 가까운 고성 북쪽 해안은 대부분 철조망 너머로 닫혀 있다. 최북단 해변이란 이유만으로 각별하지만 명파 해변은 물론이고 그 아래 마차진 해변도 금강산콘도 부근 해안만 겨우 출입이 가능할 뿐이다. 명파 해변 앞의 안내판에는 군부대 명의로 연중 ‘일출 이후와 일몰 이전까지 개방한다’고 분명히 써놓았지만, 그건 피서철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고성 최북단에는 통일전망대가 있다. 통일전망대는 1984년 지어진 2층 건물인데 그 옆에 지금 C자 모양의 해돋이 통일전망타워가 한창 공사 중이다. 새 전망대는 지금의 것보다 높고 크다. 7월 초 완공 예정이었다가 8월 말로 미뤄졌는데 진척 상황을 보면 가을쯤에나 완공될 듯하다.

이번에는 간성 남쪽의 가진항 일대. 이즈음 고성의 해변은 어디나 한적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적요한 곳이 바로 가진해수욕장 북쪽에 펼쳐진 4㎞ 남짓의 긴 해변이다. 해변은 삼엄한 철조망으로 가둬져 있지만, 이쪽의 해안은 일출 후와 일몰 이전까지 출입을 허용한다. 해안가에 딱 붙어 있는 ‘바다추억펜션’ 뒤쪽으로 해변으로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다. 아는 이들이 없어 주민들만 간혹 드나드는 곳이라 주말에 가도 해변 전체를 독차지할 수 있다.

간성 남쪽에는 유독 독특한 기암의 해변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경관을 보여주는 것이 송지호해수욕장 남쪽 오호리 등대 아래 갯바위 지대에 우뚝 서 있는 서낭바위다. 부채 같기도 하고 하트 모양 같기도 한 커다란 바위가 마치 와인 잔의 목처럼 가느다란 바위에 위태롭게 올라서 있는 형상이다. 바위는 파도가 치면 금세라도 굴러떨어질 듯 위태롭다.

서낭바위 인근의 갯바위도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지만, 더 기괴한 모습의 바위 해안은 남쪽 문암 해변의 능파대다. 찢어진 책처럼 너덜너덜한 바위도 있고,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도 있다. 이런 바위는 바닷물이 바위 안으로 스며 들어가 내부를 녹인 뒤에, 파도의 침식으로 그 구멍이 드러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파도가 거친 날에 능파대 앞에 서면 절로 비장한 느낌이 든다. 북쪽과 가까운 탓일까, 아니면 고성의 쇠락한 풍경 때문일까. 뒤틀리고 파인 바위에 서면 마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한 사내의 뜨거웠던 꿈이 묻힌 곳

여러 번 망설이다가 여정의 마지막 코스로 반암해수욕장 뒤편 언덕의 김득구 묘를 끼워넣는다. 이국 땅 사각의 링 위에서 쓰러진 권투선수 김득구를 기억하시는지. 죽음을 무릅쓰고 몸뚱이 하나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거진 출신의 한 사내의 뜨거웠던 꿈과 안타까웠던 비극이 기억나시는지.

1982년 11월 13일, 김득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챔피언전에서 레이 맨시니와 경기 도중 사망했다. 14라운드에서 맨시니에게 턱을 강타당한 김득구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일간의 뇌사상태 끝에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산소마스크를 떼어냈다. 권투팬들이 아직도 30여 년 전 그의 죽음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TV로 생중계된 경기 장면의 충격 때문이다. 비극은 김득구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김득구가 사망한 3개월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이 경기 심판도 7개월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돌보는 사람이 없는지 경계석 한쪽이 무너진 초라한 그의 묘 주변은 개망초꽃이 흐드러졌다. 묘 앞의 상석에는 누가 가져다 놨는지 빈 막걸리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끼니마저 잇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했던 가난을 맨주먹 하나로 이기고자 했던, 그러나 결국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말았던 사내의 꿈에다 누군가 술을 부었던 모양이다. 그의 묘 앞에서 비극보다 치열했던 꿈을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 치열하게 여기까지 온 건 아닐까. 눈물로 키운 화려한 꽃밭에서 시작한 여정이 쇠락한 옛 국도를 거쳐 여기 한 사내의 뜨거웠던 꿈까지 왔다.



◇진부령 가는 길=서울∼춘천 고속도로를 거쳐 춘천∼동홍천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온다. 나들목에서 나와 성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44번 국도 인제 방면으로 향한다. 한계교차로에서 고성·간성 방면 왼쪽 길로 가다 용대육교 앞에서 오른쪽 길로 46번 국도로 바꿔 탄다. 국도를 줄곧 따라가면 진부령이다. 진부령으로 내려서면 오른쪽에 ‘소똥령 숲길’ 이정표가 있다. 하늬라벤더팜으로 가려면 진부령을 다 내려서서 광산초등학교 앞에서 원미매운탕을 끼고 우회전한다. 광산3리와 어천리를 지나면 하늬라벤더팜이다. 원미매운탕 앞부터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고성에는 금강산콘도 외에는 이렇다 할 숙소가 없다. 대명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델피노 골프&리조트는 나무랄 데 없지만 행정구역만 고성이고 고성보다는 속초에 훨씬 더 가깝다. 금강산콘도는 비수기에는 10만 원 안쪽에 방 2개짜리 객실에서 숙박할 수 있다. 방 배정은 선착순인데, 바다 전망이 제법 훌륭하니 일찍 체크인을 하는 게 요령이다.

의외로 고성 주민들이 맛집으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곳은 횟집이 아니라 중국집 ‘동해반점’이다. 동해반점은 고성에만 1·2호점을 두고 있다. 누나와 남동생이 같은 상호로 자그마한 중국집을 운영한다. 초도해수욕장 인근의 1호점은 바다 전망이 가장 좋은 중국집으로 꼽아도 좋을 듯하다. 동해반점의 인기 메뉴는 짬뽕비빔면과 짬뽕비빔밥. 진득한 짬뽕 양념에다 국수나 밥을 비벼 먹는데, 제법 맛이 좋다. 가진항 일대에는 물회를 내는 횟집이 많다. 가자미 뼈째회와 오징어, 해삼을 기본으로 전복, 멍게,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꽤 이름을 날리는 곳들도 있는데, 비수기인 이즈음에는 재료 수급이나 회전 탓인지 유명한 곳들도 명성만큼 이름값을 못 한다. 어느 곳이나 비슷비슷하니 큰 기대 없이 찾아가는 게 좋겠다.

고성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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