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12.13 수요일
차고 맑은 날. 겨울 산의 하늘색이 어찌나 짙던지 검은색에 가까웠다. 가야산 만물상을 거쳐 당도한 서성재에서 정상 칠불봉을 향해 오르는 길. 풀어헤친 겨울나무의 흰 가지들이 마치 푸른 하늘에다 실금을 낸 듯하다.


가야산은,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겨울 가야산을 두고 ‘동설송(冬雪松)’이라 부릅니다. 겨울 눈이 쌓인 청청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 떠오르는 운치 있는 이름이지요. 겨울 금강산을 부르는 이름인 ‘개골산(皆骨山)’에 대면 풍류가 한 수 위입니다. 금강산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이름뿐만 아닙니다. 가야산에는, 금강산에 있는 ‘만물상’이 있습니다. 만물상은 이름 그대로 ‘만 가지 형상을 한 바위가 이루는 세상’입니다.

조선 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야산의 만물상을 일러 ‘석화(石火)’라고 했습니다. ‘돌로 만든 불꽃’이란 뜻이지요. 그 표현 그대로 가야산의 암봉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의 형상입니다. 내친 김에 가야산에 바친 이중환의 헌사를 좀 더 들어보시지요. “뾰족한 돌이 줄을 잇달아서 불꽃같으며 공중에 솟아서 극히 높고 빼어나다…. 나는 듯한 샘물과 반석이 수십 리에 걸쳐 있다.”

하필 매서운 절정의 겨울 추위에 가야산 얘기를 꺼낸 건, 지금 그곳에 가면 잎을 다 떨군 겨울 산의 흰 뼈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기묘묘한 암봉이 날 선 창끝처럼 서 있는 겨울 가야산은 지금, 시린 박하 향으로 가득합니다. 가야산 계곡에는 아직 얼지 않은 물소리가 있었고, 산정에는 푸른 빛이 너무 짙어 검은색에 가까운 하늘이 있습니다.

이런 풍경 속으로 오래전의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가야산에 들어 경관과 풍류를 말했던 이가 많지만, 실의와 절망 끝에 가야산을 찾아들어 마지막을 의탁한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좌절한 지식인이었던 신라의 최치원이 그랬고,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 월광도,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둘째 아들 김황도 그랬습니다.

겨울 가야산에 들면 그들이 여기까지 들어온 이유가 짐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내려놓고 본질로 돌아온 것들의 명징함이 겨울 가야산에는 있으니 말입니다. 눈 쌓인 가야산에는 인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만물상을 거쳐 정상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 선비 한강 정구가 가야산을 드나들며 남겼다는 글을 되새겨 봅니다.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眼界·시야)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들숨과 날숨의 흰 입김으로 겨울 산을 가로지르면서 보고, 또 생각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 마음’입니다.


가야국의 탄생과 관련한 전설이 깃든 ‘상아덤’으로 오르는 길에서 뒤를 돌아 가야산 만물상을 바라본 모습. 치솟은 암봉 사이로 길을 잡아 건너왔는데, 이렇게 돌아보면 지나온 길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 합천 가야산인가, 성주 가야산인가

알려지기로는, 그리고 알고 있기로는 ‘합천 가야산’이다. ‘합천 해인사’가 자연스럽듯이 말이다. 가야산은, 또 그 산자락의 해인사는 경남 합천에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지도만 놓고서 따져보면 가야산의 이름은 합천이 아니라 성주가 가져야 마땅하다. 합천은 경남 땅이고, 성주는 경북 땅이다. 그러니 경남 땅으로 알았던 가야산이 실은 경북의 것이란 얘기다.

가야산의 임자가 성주라는 이유는 정상인 칠불봉이 성주 땅에 있어서다. 무슨 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산은 대개 정상이 있는 곳의 지명으로 불린다. 가야산이 합천 땅으로 알려진 건, 합천에 속한 상왕봉(우두봉)이 가야산 최고봉으로 알려져서다. 18년 전까지는 그랬다. 칠불봉이 가야산 최고봉으로 인정받게 된 건 요즘 국가정보원 직원의 불법 댓글 공작사건 수사과정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요청이 계기가 됐다.

김 전 청장은 성주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1999년 성주군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에다 칠불봉과 상왕봉의 높이를 정확히 측정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성주서장 재직 중 가야산을 서른 번 넘게 올랐던 김 전 청장은 공문을 통해 ‘칠불봉과 상왕봉에 올라보면 칠불봉 쪽이 더 높아 보인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정밀측정에 나선 결과 김 전 청장의 말대로 칠불봉이 해발 1432.4m로 상왕봉보다 2.6m가 높은 것으로 계측됐다. 가야산의 최고봉이 합천이 아니라 성주로 옮겨진 것이다.

가야산 정상이 성주 땅에 있으니 이로써 가야산은 성주의 것이 된 듯했다. 가야산의 임자가 누구냐를 놓고 성주와 합천이, 경북과 경남은 한바탕 격전을 치렀다. 논란은 길었지만 결론만 보면 바뀐 건 없었다. 여전히 가야산의 임자는 합천이다. 최고봉의 타이틀을 칠불봉에 넘겨줬음에도 국립공원은 가야산 주봉을 여전히 상왕봉으로 삼고 있다. 과학적인 계측의 결과가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팔만대장경의 해인사도, 최치원이 깃들어 신선이 됐다는 홍류동 계곡도 모두 가야산 합천 쪽에 있으니….


# 홍류동의 풍류, 해인사의 삼매

▲ 위 사진은 아직 얼지 않은 홍류동 계곡의 모습. 계곡 물이 아직 얼지 않아 물소리가 청량하다. 사진 가운데는 해인사의 암자 희랑대. 절벽에 자리 잡은 금강산 보덕암의 모습과 닮았다. 사진 아래는 가야산 만물상에서 가지를 뒤틀고 자라는 소나무. 만물상에는 이런 소나무들이 암릉 곳곳에 있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합천의 가야산 홍류동 계곡은 아직 얼어붙지 않았다. 군데군데 살얼음이 잡혔지만 계곡 곳곳의 노송들은 여전히 싱그러운 초록을 잃지 않았고, 물소리도 아직 청아하다. 가야산 어귀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3㎞ 남짓 이어진 계곡에 붙여진 ‘홍류동’이란 이름은, 이 계곡의 단풍이 짙어 흐르는 물마저 붉다 해서 얻은 것이다. 그러니 이 계곡의 절정이 가을인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코끝이 아린 겨울 추위 속에도 홍류동의 정취는 모자람이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올해 가야산의 단풍나무는 마치 박제된 것처럼 잎을 가지에 매단 채 말라붙어 버렸다. 계곡 사이로 볕이 들면 바싹 말랐으되 아직 떨구지 않은 잎들이 온통 붉고 노랗게 반짝인다.

홍류동 계곡은 신분제에 좌절한 신라의 최치원이 홀연히 사라져 신선이 됐다는 전설을 남긴 곳이다. 홍류동 계곡에는 최치원이 남겼다는 시 한 편이 새겨 전한다. “바위 골짝 치닫는 물 첩첩 산골 뒤흔드니 / 말소리는 지척에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 세속의 시비 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치게 하였구나.” 겨울의 적막 때문일까. 세속의 시비를 흐르는 물소리로 막았다는 표현처럼 겨울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가 유독 크다.

홍류동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해인사다. 신라 애장왕 때 지은 절집이라니 거기 깃든 세월만 1200년이 훌쩍 넘는다. ‘바다 해(海)’에 도장 인(印)’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왔다. 해인삼매란 풍랑이 일던 바다가 잠잠해지면서 삼라만상이 바닷물이 비치는 것처럼 온갖 번뇌가 끊어진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다. 풍랑의 바다가 중생의 마음이라면 고요한 바다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바다를 뜻한다. 그렇다면 절집이 적막에 잠긴 이즈음이야말로 해인사가 가장 해인사다울 때다.


# 만물상… 바위가 불꽃으로 타오르다

합천 가야산이 가진 해인사와 홍류동에 맞서서 성주 가야산이 자신 있게 내놓는 건 타오르는 불꽃 형상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만물상’이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야산의 기기묘묘한 암봉을 두고 ‘돌로 만든 불꽃(석화·石火)’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만물상의 바위들은 불꽃의 형상이다.

가야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전국의 산 중에서 탐방코스가 가장 단출하다. 가야산을 오르는 길이라야 딱 3개뿐이니 말이다. 합천 해인사 쪽에서 오르는 길이 하나 있고, 반대편 성주의 백운동 쪽에서 오르는 길이 두 개 있다. 택리지에 등장하는 불꽃같은 바위는 성주 쪽에서 오르는 ‘만물상 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만물상’이라면 금강산부터 떠오르지만, 가야산 만물상도 못지않다. 그럼에도 ‘가야산 만물상’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 그곳이 오랫동안 통제구간이었기 때문이다. 만물상은 1972년 10월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됨과 함께 통제됐다가 38년 만인 지난 2010년에야 개방됐다. 만물상을 닫아놓았던 건 성난 짐승의 갈기처럼 아찔하게 이어지는 암릉 때문이었다. 만물상 코스 대신 암릉 아래 계곡을 따라 오르는 용기골 탐방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등산객들은 만물상의 암릉을 올려다보면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물상에다 탐방로를 놓기로 했던 건, 가야산을 제 것으로 삼으려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성주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주 입장에서 칠불봉을 가야산 정상으로 인정받은 게 소득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만물상 암봉에 탐방로를 내고 사다리를 놓아 탐방코스를 열자마자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단풍이 물드는 가을철이면 탐방로에 정체가 생길 정도로 인파로 붐볐다. 그러나, 겨울만큼은 예외였다. 다른 명산들이 산불방지 기간으로 통제되고 있는 동안에도 가야산만큼은 제한 없이 오를 수 있는데도 그랬다.


# 적막한 겨울 가야산의 바람

겨울 가야산은 적막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내내 단 한 명의 등산객도 만나지 못했다. 가야산에 그동안 서너 차례 눈이 지나갔다지만, 녹지 않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은 서너 개에 불과했다. 그나마 만물상 코스에는 사나흘 전쯤에나 지나간 딱 하나의 발자국만 있었다. 산은 텅 비어 있었고 눈밭에는 산짐승들이 지나간 자취만 뚜렷했다.

성주 백운동에서 출발하는 만물상 코스의 구간은 3㎞ 남짓.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탐방 코스별로 등반 난이도를 매겨놓았는데, 여기 만물상 구간의 경우는 다섯 단계의 난이도 중 최고인 ‘매우 힘듦’이다. 그러나 실제 올라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3㎞ 구간을 오르는 데 2시간 30분이나 걸리지만, 긴 등반 시간은 가파른 경사도나 체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바위를 딛고 오르는 속도 혹은 안전의 문제 때문이다.

겨울 만물상 탐방로가 텅 비어 있는 이유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암봉의 능선 위에 올라서자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두드렸다. 어찌나 바람이 차고 거센지 두통마저 일 정도였다. 바람은 위태롭게 바위 이곳저곳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뒤튼 소나무 잎 사이를 빗질하듯 지나가면서 소리를 만들었다. ‘쏴아~.’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겨울이면 산악인들이 겨울바람을 맞는다며 소백산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다. 소백산의 겨울철 칼바람이 얼마나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지 아는 이들은 안다.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만물상의 바람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 충분하다. 위태로운 암릉 구간에 눈이 쌓여 있으면 어쩔까 싶었는데, 거센 바람 때문일까. 눈이 다 날아가서 능선에는 자취도 없다. 군데군데 눈이 쌓인 곳이 있긴 했지만, 아직은 아이젠을 꺼내지 않아도 될 정도다. 만물상의 미덕은 오를수록 점입가경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 점점 더 속도가 늦춰지고 감탄사가 길어지다가 마침내 만물상의 가장 훌륭한 조망대이자, 스스로도 명승의 경관인 ‘상아덤’에 당도했다.


# 천신과 산신이 만나 가야를 이루다

‘상아덤’이란 이름은 달에 산다는 미인을 뜻하는 ‘상아(嫦娥)’에다 ‘바위 암(巖)’을 뜻하는 ‘덤’을 합친 이름이다. 풀면 ‘하늘의 여신이 사는 바위’란 뜻이다. 상아덤에는 가야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빛나는 전설이 있다.

상아덤에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가 깃들여 있었는데,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기 위해 힘을 얻고자 하늘에 기도를 드리니 하늘의 신 ‘이비가지(夷毗訶之)’가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천신과 산신은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이 대가야의 첫 왕이 됐고, 둘째 아들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됐다는 얘기다.

상아덤의 바위 무더기 앞에 놓아둔 나무덱에 올라서면 옛사람들이 왜 그곳을 고대 국가의 시작으로 삼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상아덤에서는 만물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다볼 수 있다. 칼날처럼 날이 선 바위도, 뾰족한 창끝이나 톱니 같은 바위도, 부드럽게 둥글어진 바위도 모두 발밑이다. 사방이 벼랑인 암봉 어디쯤을 지나서 여기까지 왔을 텐데 지나온 길을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은 아찔하게 현기증 나는 바위와 바위 사이에다가 계단과 사다리를 놓아두어 오를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이곳에 발을 디디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그러므로 상아덤의 공간은 오랫동안 신의 영역이었을 것이고, 상아덤에서 보는 경관 역시 신들의 시선이었을 것이었다. 겨울 산의 능선을 지나는 칼바람의 정점에 서서 그 풍경을 본다.


■ 여행정보

가야산 국립공원에는 해인사 뒤의 가야산과 해인사 앞쪽의 남산제일봉이 함께 속해 있다. 가야산을 오르는 탐방코스는 세 개. 해인사 쪽에서 오르는 코스가 하나 있고, 반대편 백운동에서 오르는 코스가 두 개 있다.

백운동에서 오르는 코스는 암봉능선을 타고 넘는 만물상 코스와 계곡 사이로 이어진 용기골 코스 두 가지다. 8분 능선인 서성재에서 합류한다. 서성재까지는, 만물상 코스를 택하면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리지만 용기골 코스로 오르면 1시간 30분이면 된다. 서성재에서 정상 칠불봉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해인사 쪽에서 상왕봉을 거쳐 칠불봉까지는 2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의 산행이라면 만물상을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용기골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만물상을 오르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내린 눈이 쌓여 있는 암릉구간은 하산길보다는 등산길로 잡는 게 낫기 때문이다.

만물상 코스와 용기골 코스의 출발지점인 백운동에는 가야호텔(054-931-3500)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부대시설로 대중탕도 운영하고 있다. 가야호텔은 성주에 있지만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령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찾아가는 편이 더 빠르다. 고령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호텔까지는 택시로 30분 거리다.

성주에서는 이렇다 할 맛집을 찾기 어렵다. 청국장을 내는 성주읍의 ‘왜관식당’(054-932-9554)이 제법 이름난 곳. 성주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감골식당(054-931-3100)의 정식도 괜찮다.

이웃 고령에는 시원한 복국을 끓여 내놓는 ‘월산복어’(054-956-8600)가 있다. 해물찜도 좋고, 복국 솜씨도 괜찮은 편이다.


성주·합천=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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