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8.5.30 수요일
독일 작센 주 ‘작센 스위스’에서 최고 명소로 꼽히는 바스타이 일대의 경관. 치솟은 바위 봉우리 사이로 아치형의 바스타이 다리가 놓여있다. 암벽등반으로 암봉 위에 선 이들이 아찔하게 보인다. 작센 스위스에는 이런 봉우리들이 자그마치 1000개가 넘는다.


통일 독일 이전 동독 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 도시로 갑니다.
독일 동남부.
체코,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미처 발견되지 않은 곳들입니다.
장엄한 자연 풍경도, 단정한 도시 경관도
그곳에 있습니다.
동구권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옛 동독 땅의 국경도시에서는
여간해서 활기를 느낄 수 없더군요.
그렇지만 그 도시에서 목격한 건
우울이나 체념은 아니었습니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들의 애잔함,
혹은 소박하고 검소한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그 도시에서 만났습니다.
오래된 것이 만들어내는 ‘여유’가
국경의 중소도시들에는 있습니다.
바쁘고 들뜬 감각의 여행도 좋지만,
차분하고 느린 사유의 여행이 주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그런 여행의 매력을 십분 즐길 수 있는 곳.
바로 옛 동독 땅의 중소 도시입니다.


# 작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여행지

독일 16개 연방 주 가운데 하나인 ‘작센 주’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독일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할 뿐만 아니라 관광 및 비즈니스의 중심지였다. 작센은 독일 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산업화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문화적인 전통의 깊이도 독일 내에서 겨룰 만한 지역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작센 주는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 땅에 속해 철의 장막 너머로 가둬졌다. 종전 직후에는 소련군 점령지가 됐으며 동독 치하에서는 행정체제 개편으로 아예 ‘작센 주’라는 명칭이 사라지기까지 했다. 중세 때부터 이어져 온 이름이 전후 국제체제의 재편을 거치면서 지워져 버린 건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잊혔던 작센은 1990년 독일 통일을 계기로 예전의 이름을 되찾았다.

동독 치하의 공백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작센 주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작센 주의 주도이자 문화의 중심지 드레스덴, 그리고 1989년 시민혁명 발상지인 라이프치히. 고작 이 정도가 우리가 아는 작센 주 도시의 전부다. 작센 주 제3의 도시 켐니츠 정도만 돼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니 폴란드, 체코와 국경을 이루는 옛 동독 땅의 도시 ‘괴를리츠’나 ‘지타우’ ‘오이빈’ 같은 중소도시 지명은 도대체 낯설기 짝이 없다.

통일 이전에 동독 땅이었던 이들 도시는, 그러나 자연경관이며 문화유적 등이 즐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옛 동독 땅의 독특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으며, 국경도시의 매력까지 품고 있다. 여행지가 가져야 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서구의 여행자들에게는 모르겠으되, 아시아에서 온 우리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여행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세계적인 예술작품, 살아 있는 전통과 역사적인 명소…. 이런 것들이 바로 작센 주의 중소도시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들이다.


독일 작센 주 국경도시 괴를리츠의 나이세 강변. 고요한 강물이 거울처럼 비추어내는 강 건너편이 폴란드 땅이다. 이곳 주민들은 강에 놓인 두 개의 다리로 자유롭게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을 넘나든다.




# 경관부터 규모까지, 모두 비현실적이다

먼저 작센 주의 중심도시인 드레스덴에서 가까운 ‘작센 스위스’ 얘기부터 시작하자. ‘작센’이란 주 이름에다 ‘스위스’라는 나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명을 통해 알게 된 건 뜻밖에도 독일 사람들에게도 ‘스위스’는 곧 로망이라는 것. 스위스를 비현실적인 낭만의 공간으로 여기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작센 스위스란 곧 ‘작센 땅에 있는 스위스만큼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우리의 ‘영남 알프스’와 똑같은 방식의 조어다.

작센 스위스는 드레스덴에서 엘베 강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만나는 체코 국경 부근의 그림 같은 경관을 보여주는 산악지역을 일컫는 이름이다. 18세기 스위스 화가가 이곳을 들렀다가 빼어난 경관이 제 고향인 스위스와 비슷하다며 작센 스위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데, 그게 굳어져 아예 공식 명칭이 됐다.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는데, 그 명칭도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이다.

작센 스위스에는 줄잡아 1000개에 달하는 기암 봉우리와 계곡이 있다. 사암으로 이뤄진 바위는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강을 끼고 있는 데다 천혜의 거친 지형 덕에 작센 스위스에는 오래전부터 요새로 지어졌던 고성들이 곳곳에 있다. 작센 스위스를 대표하는 경관이라면 단연 ‘바스타이’다. 바스타이를 직역하면 ‘성곽의 돌출된 보루’라는 뜻이다. 엘베 강변에 수직으로 일어선 기암들이 가장 높고 조밀하게 솟아 있는 자리의 협곡을 그렇게 부른다.

바스타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아치형 바위 다리가 놓여있다. 본래 상인들의 이동을 위해 나무로 놓았던 다리를 1851년에 사암을 깎아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했다. 바스타이 다리가 보여주는 경관의 특별함은, 1853년 왕실의 전속 사진사가 이 다리를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게 독일 최초의 풍경 사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으로 담아두고자 하는 욕망의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바스타이였으니 말이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바스타이 다리를 보면서 떠올렸던 건 사실 스위스가 아니라 중국이었다. 산정에 솟은 사암 봉우리는 스위스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어쩐지 동양적인 수묵화의 느낌이 강했다. 먹을 듬뿍 찍어 일필휘지로 그려낸 것 같은…. 바스타이 다리 주변의 까마득한 바위 절벽과 협곡은 너무 극적이어서 실재하지 않는 풍경 같기도 했다. 이런 크고 장엄한 풍경만 본다면 깊은 산중에 꼭꼭 숨어있다고 믿게 되는데, 뜻밖에도 산책하듯 도로에서 잠깐만 걸어가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뒷짐 진 채 이런 경관을 만나게 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에서 호텔로 등장하는 괴를리츠 중심가의 한 백화점 건물. 백화점은 촬영 당시에도, 지금도 문을 닫은 상태다.


# 한 번도 함락된 적 없었던 요새

작센 스위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고 즐길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가볍게 걸으며 경관을 감상하는 ‘관광객 모드’가 있는가 하면, 거친 기암의 정상과 뿌리를 숨차게 오르내리며 걷는 ‘트레킹 모드’도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전문 장비를 갖추고 기암에 밧줄을 걸어 암벽을 오르는 ‘등반용 모드’도 인기다. 그렇다 해도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 관광안내판에 적힌 숫자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국립공원 안의 도보 트레일 길이만 2200㎞, 그리고 2만1000개의 등산 루트가 있단다. 작센 스위스는 경관뿐만 아니라 규모도 극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바스타이와 함께 작센 스위스의 양대 명소로 꼽히는 곳이 쾨니히스타인 요새다. 강 이쪽에 바스타이가 있다면, 강 건너편에는 쾨니히스타인 요새가 있다. 쾨니히스타인 요새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요새라는데, 사방을 수직 석벽으로 둘러친 해발 240m의 테이블 같은 평평한 산정에 있다. 천혜의 지형 덕에 요새가 만들어진 이래 400년 동안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단다.

요새는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도록 돼 있는데, 요새에 들어서면 그곳이 요새라는 사실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요새 안에는 학교도, 교회도, 광장도 있다. 요새 안의 건물만 50여 개다. 요새 내부는 독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마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요새 가장자리의 담장에 서면 까마득하게 발 아래로 엘베강의 유연한 물길이 펼쳐진다. 가파른 석벽 아래로 흐르는 강에는 관광객을 태우고 증기선이 유유히 떠다닌다.

쾨니히스타인 요새 안에 남아있는 유적 중 인상적이었던 건 우물이었다. 산정에 들어선 요새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물의 공급. 물을 찾기 위해 석공들은 돌을 깨서 자그마치 152m가 넘는 깊이의 우물을 팠다. 어찌나 깊은지 우물 안은 칠흑 같다. 우물의 깊이를 설명하던 안내원이 컵에 담은 물을 우물 안으로 쏟았는데 한참이 지난 뒤에야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물을 붓자마자 둥글게 모여 숫자를 세던 관광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깊은 우물에서 커다란 두레박으로 하루 5000ℓ의 물을 퍼 올리는 건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었을 것이었다. 요새는 한때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보불전쟁 때와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전쟁포로들을 여기 수감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이 지역에 주둔했던 소련군이 공산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감금했다고도 한다. 우물의 물을 퍼내는 일은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었다. 그래도 죽음보다는 나았을까. 분명한 것은 그 끔찍한 노동을 해야 했던 건, 그들이 지은 죄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독일 작센 주 일대의 평원은 유채밭으로 그득하다. 유채꽃밭이 마치 노란 물감을 듬뿍 찍은 붓으로 그린 그림 같다.


# 괴를리츠, 시간을 박제한 공간

드레스덴 지도 위에 자를 놓고 수평을 유지한 채 오른쪽으로 금을 그으면, 거기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도시 괴를리츠가 있다. 드레스덴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괴를리츠는 분단 당시 동독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인구 5만 명이 겨우 넘는 중소도시다. 독일 노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으로 꼽는 도시이긴 하지만, 그 이유가 생활이나 자연환경이 아니라 싼 집값과 물가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괴를리츠에는 유독 노인들이 많다.

쇠락한 옛 동독 땅은 대개 어둡고 서늘한 느낌인데, 여기 괴를리츠는 정반대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활기가 느껴진다는 뜻은 아니고, 서로 어깨를 잇대고 있는 건축물의 다양한 양식과 도시와 건물에 칠해진 파스텔 톤의 색감이 환하다는 얘기다. 세련된 상점도 없고, 격의 없는 미소도 없지만, 도시는 단정하고 정갈하다. 손님 없는 상점가에서 경기침체보다는 사람들의 검약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나, 이곳 사람들이 걸음걸이마저 바르다고 느꼈던 것은 기분 때문이었을까.

괴를리츠에는 4000개가 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있다지만, 뜻밖에도 이런 역사적 건축물보다 유명한 건 바로 영화 촬영장소인 한 백화점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에 등장한 호텔이 괴를리츠 중심가 한복판에 있다. 영화 속에서 호텔은 부다페스트에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촬영은 괴를리츠의 문 닫은 백화점에서 이뤄졌다. 기이하면서도 독특한 공간이었던 영화 속 부다페스트호텔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까. 순전히 영화 때문에 괴를리츠까지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드물지 않다.

이 영화 외에도 수많은 영화가 괴를리츠에서 촬영됐다. 아마도 괴를리츠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과거의 풍경을 고스란히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체된 도시가 이런 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판타지 같은 영화 속 공간을 기대하고 괴를리츠를 찾았다면 십중팔구 실망할 수밖에 없겠다.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유명세를 치른 곳들도 주변에는 안내판 하나 없고, 영화에 호텔로 등장했던 건물도 문을 잠근 채 여태 비워두고 있다. 이쯤 되면 영화에 등장하는 괴를리츠의 풍경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괴를리츠는 지금 텅 빈 세트장 같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 영광의 시간을 접고 쇠락해가는 동독의 도시들은 ‘지속 가능한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앞으로 어떻게 찾아가야 할 것인가. 분단국가에서 온 여행자에게 이런 걱정이 어디 남의 일인가.

괴를리츠가 우리에게 각별한 건 국경 도시라는 점이다. 괴를리츠는 강 하나를 두고 폴란드와 마주 본다. 독일과 폴란드 사이로 흐르는 나이세강이 곧 국경이다. 독일 괴를리츠와 폴란드의 국경도시 즈고르첼레츠. 강이 가로지르는 두 도시 사이에는 국경을 넘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아무런 출입 절차도 없는, 금조차 그어지지 않은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은 생소하기 짝이 없다. 다리 하나로 이쪽과 저쪽의 말이 바뀌고 돈이 바뀌고, 집의 구조와 색감이 바뀌는 게 당연하면서도 새삼 신기하다.

독일과 폴란드를 가르는 나이세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건 우리 두만강과 압록강이다. 독일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한국과 독일을, 통일 전과 통일 후를 끊임없이 대입하고 짐작해 보게 되는 것은….


■ 여행정보

드레스덴은 작센 주의 관문이다. 인천공항에서 드레스덴까지는 바로 가는 직항편이 없다. 일단 프랑크푸르트나 뮌헨까지 가서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나 뮌헨 공항에서 드레스덴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남짓. 작센 주를 돌아보겠다면 드레스덴을 베이스캠프 삼는 게 편하다. 작센 스위스는 드레스덴에서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다.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S1호 선을 타고 피르나 역에서 내린 뒤 역 바로 앞에서 237번 버스를 타고 바스타이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기차에서 버스로 환승해 찾아가면 대략 1시간쯤 걸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바스타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된다.

드레스덴에서 괴를리츠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리고 최소 2번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뮌헨에서 드레스덴을 거쳐 운행하는 플릭스 버스를 타면 1시간 30분 만에 괴를리츠 역에 도착한다. 그러나 버스 좌석 공간이 좁은 데다 정시 운행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무엇보다 하루 운행 편이 1회라는 것도 불편하다. 렌터카를 빌리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다국적 렌터카 회사에서 대여하면 완전면책 보험을 포함한 소형차 하루 요금이 10만 원 남짓이다. 렌터카로 가면 드레스덴에서 괴를리츠 역까지 1시간 20분 정도면 넉넉하다.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나 체코의 도시 상점들은 의외로 유로화를 받지 않는다. 대신 은행이나 사설 환전소가 국경 근처 곳곳에 있다.

작센 주 관광의 거점도시인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강건왕 아우구스트에 의해 17세기 무렵 전성기를 맞았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쑥대밭으로 변했다가 21세기 들어 비로소 옛 명성을 되찾았다. 도시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양쪽에 박물관, 궁전 등 매력적인 볼거리들이 많은 데다 야경도 빼놓을 수 없으니 적어도 2박 정도는 해야 한다.


작센 주(독일)=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8년 5월 30일 수요일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인쇄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