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4.11 목요일
일본 나라현의 요시노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관. 산중 마을이 온통 벚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난주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할 무렵의 풍경인데, 요시노산 일대에 3만 그루의 벚나무가 만개하면 가히 황홀한 풍경을 빚어낸다.


‘기이(紀伊) 산지의 영지(靈地)와 순례길.’

지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의 참배 길입니다. 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말고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이산지 지역에는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나라(奈良)현, 미에(三重)현이 걸쳐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신령스럽다고 꼽히는 고야산(高野山)과 요시노산(吉野山)을 찾았습니다. 일본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도, 벚꽃 흐드러진 요시노산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들입니다.


# 극락정토의 성지…고야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죽은 뒤에 묻히고 싶어 하는 곳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신령스러운 땅’. 일본 최고의 불교성지로 일컬어지는 와카야마 중부 산악지대인 고야산(高野山)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야산은 산 이름이 아니다. 우리 지리산이나 설악산이 봉우리가 없는 것처럼, 고야산도 일대의 산군(山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해발 1000m 안팎의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들어선 중세 분위기의 사찰 마을을 일컫는 지명이기도 하다.

와카야마나 고야산이라는 낯선 지명으로 위치를 짐작할 수는 없으니, 잘 아는 지역으로부터의 거리를 이동 소요시간으로 환산하는 것이 이해하기 간명하겠다. 그렇게 설명하면 고야산은 오사카에서 차로 2시간 남짓. 오사카 도심에서 기차를 갈아탄 뒤 다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2시간 30분쯤 걸리는 곳이다. 오사카의 관문인 간사이(關西)공항에서 고야산까지 1시간 20분에 닿는 직행버스도 있다.

고야산은 오사카 여행의 좋은 선택지다. 먹거리와 쇼핑만 넘쳐날 뿐 가볼 곳이라고는 성(城)이 고작인 오사카에서, 고야산이야말로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온통 중국인과 한국인 여행자로 넘쳐나는 오사카나 교토(京都)와는 달리 고야산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고, 고야산을 찾는 관광객의 80% 이상이 동양의 불교적 전통에 호기심을 품고 있는 푸른 눈의 서양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게다가 그곳에 가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고야산의 벚꽃이 지금 막 피어 절정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고야산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극락정토의 성지(聖地)’가 된 건 오로지 한 명의 스님 덕분이다. 1200여 년 전의 고승 고보대사(弘法大師).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홍법대사’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목포 유달산 일등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인물이 바로 홍법대사다. 지금은 유달산 일등바위에 새겨진 것만 남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불교 부흥의 명분을 내세워 유달산의 자그마치 88곳에다 홍법대사와 부동명왕을 새겼다고 했다. 일본 불교의 힘을 빌려 조선의 국운을 압도하기 위한 술책이었을까. 이런 배경 때문인지 홍법대사는 그로테스크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의 땅을 침략한 후손들의 후안무치가 문제지, 홍법대사야 무슨 죄가 있을까.


# 고보대사, 산중에 불국토를 가꾸다

홍법대사, 아니 고보대사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고보대사는 스물여덟의 나이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 고보대사는 ‘단기유학생’이었다. 불교를 공부하러 당나라 유학을 떠나는 경우 20년 공부가 보통인데, 고보대사는 불과 2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학식과 공부가 출중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조기 귀국이 죄가 됐는지 고보대사는 당시 수도였던 교토 출입을 허가받지 못했다.

고보대사가 당나라 유학에서 배워온 건 ‘밀교(密敎)’였다. 당시 일본 불교의 대세를 이루던 현교(顯敎)가 전문적 이론 중심이라면, 밀교 포교는 실천을 위주로 한 대중불교운동이었다. 밀교는 기도로 병든 자를 낫게 한다든지, 가뭄에 비가 내리게 한다든지 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주술과 구복을 포함한 민간신앙을 폭넓게 받아들여 불교적으로 정립한 게 바로 밀교의 사상이었다. 고보대사도 기도로 자주 기적을 보여줘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고 전한다.

일본 왕실은 ‘재앙을 막게 해달라는 기도를 통해 현세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고보대사의 장담에 솔깃했다. 사가(嵯峨) 일왕은 그에게 와카야마현의 고야산을 하사했다. 나라의 안녕과 호국을 기원하고 수행을 하는 도량으로 쓰라는 뜻이었다. 고야산은 영험한 산이었다. 우선 지형부터가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활짝 핀 연꽃과도 같다는 중국의 우타이산(五臺山·오대산)과 비슷하다. 게다가 고야산에서 자라는 금송(金松)은 잘 썩지 않아 일왕의 관 재료로 쓰였다. 백제 무령왕 관의 재료도 이곳의 금송으로 알려졌다.

고야산으로 들어간 고보대사는 일본 밀교의 종파 ‘진언종’을 개창하고 일대를 불국토로 가꾸었다. 지금은 고야산에 117개의 사찰이 있지만, 전성기 때는 일대에 자그마치 3600여 개가 넘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보대사가 개창한 진언종의 위세는 아직도 대단해서 지금까지도 일본의 불교 종파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현 고야산의 중심이 되는 절집 곤고부지에 조성된 ‘마른 정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모래와 돌만으로 조성한 정원이다.


# 모래와 돌로 정원에 산수화를 그리다

분지를 이루고 있는 사찰 마을인 고야산은 전체가 수도처다. 고야산 전체를 하나의 절집으로 보고, 마을 아래쪽에다 산문 삼아 다이몬(大門)을 지었을 정도다. 25m 높이의 거대한 산문을 들어서면 비로소 고야산이다. 분지 마을을 이룬 고야산에서는 집이 규모가 크다 싶으면 죄다 절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마을 전체에서 수도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건 당연하다.

잘 가꾼 정원과 오래된 나뭇결의 문을 가진 고야산의 사찰도 경건했지만, 오히려 사찰 밖의 거리에 깃든 종교적 기운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제 막 벚꽃 철이 시작됐지만, 마을 분위기는 조금도 들뜨지 않았다. 골목은 고즈넉했고,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나 관광객 상대의 식당도 한가로웠다. 마을 전체가 나른한 봄날의 낮잠 같은, 혹은 이제 막 참선에 든 선승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고즈넉함 사이에서 꽃들이 뭐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히 피었다. 이곳에서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야산에서 꼭 보고 와야 할 곳은 세 곳이다. 먼저 곤고부지(金剛峯寺). 고보대사가 종교활동의 거점을 삼았던 진언종의 종찰이라 할 수 있는 곤고부지는 절 외부 경관보다, 절 안을 더 유심히 보아야 하는 곳이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실내로 들어가면 미로와도 같은 실내공간이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 붙은 방의 크기도 크기지만, 방마다 벽이나 문짝에 그려진 화려한 장식의 그림이 눈길을 붙잡는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그린 방도 있고, 상징과 은유의 그림이 가득한 방도 있다. 그림의 선도 선이지만 화려한 색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중에서 흰 눈이 쌓인 겨울나무가 그려진 방을 유심히 보자. 이 방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카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가 할복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을 후계자 자리에 올랐던 그는, 말년에 아들을 낳고 마음이 바뀐 히데요시에 의해 여기로 쫓겨왔다. 히데요시는 권력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후환이 두려워 히데쓰구에게 할복을 명령했고, 이 명령을 받은 히데쓰구는 제 배를 칼로 갈랐다. 권력을 둘러싼 참혹한 비극이 차가운 겨울 풍경이 그려진 이 방에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곤고부지의 명물은 잔돌을 깔고 그 위에 바위를 배치해 꾸민 정원인 ‘카레산스이(枯山水)’. 카레산스이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심지 않고 돌과 모래로만 산수를 표현하는 양식의 정원인데 대담한 생략과 간결한 표현으로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카레산스이 정원은 단순한 관상의 공간을 넘어 선문답의 공간이기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수련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정원은 다른 절집에도 있지만 대개 앉은 자리에서 한눈에 감상하기 적당한 정도의 크기인데, 곤고부지의 것은 걸어 다니면서 감상해도 미처 눈에 다 넣지 못할 정도로 크고 대담하다.


고보대사가 고야산에 처음 지은 절집인 단조가란. 밤에도 경내에 불을 켜고 문을 활짝 열어두는데 조명을 받아 빛나는 전각이 화려하다.


# 밤에 더 좋은 곳…단조가란과 오쿠노인

고야산에서 보아야 할 두 번째 명소는 ‘단조가란(亶上伽藍)’이다. 고보대사가 고야산에 지은 첫 번째 건물이 바로 이곳이다. 곤고부지가 절집 안을 감상하는 곳이라면, 단조가란은 절집의 건축과 배치를 보아야 하는 곳이다. 조화롭게 배치된 절집의 전각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공간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감상하는 맛이 각별하다. 경내에는 목재 부분을 온통 붉은색으로 칠한 대탑이 있고, 단정하되 웅장한 규모와 무게감이 느껴지는 총본당이 있다. 전각과 탑이 보여주는 규모감이 인상적이다.

단조가란은 밤의 풍경도 훌륭하다. 밤새 문을 열고 불을 켜 두는데, 조명을 받아 단조가란의 전각들이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자못 인상적이었다. 절집을 산책하다 빛이 들지 않는 캄캄한 절집 뒷마당의 대숲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밝은 별이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 오래 별을 바라보았다. 치유와 힐링은 이렇게 하는 것이리라.

저물 무렵에 고야산에서 가야 할 곳이 또 있으니, 세 번째 명소인 ‘오쿠노인(奧の院)’이다. 고야산을 소개하면서 ‘일본인들은 누구나 죽어서 고야산에 묻히고 싶어 한다’고 했지만, 죽어 묻히고 싶어 하는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여기 오쿠노인이다. 일본어로 ‘오쿠(奧)’란 깊숙한 오지라는 뜻. 그 뜻처럼 오쿠노인은 고야산 깊이 숨어 있다.

오쿠노인에는 고보대사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 그러나 오쿠노인의 매력은 사당이 아니라, 들머리에서 오쿠노인에 이르는 2㎞ 남짓한 참배 길에 있다. 수령 수백 년이 넘는 아름드리 삼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는 도저히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묘소와 비석이 즐비하다. 이끼로 뒤덮인 묘석 수만 대략 20만 기에 달한다. 죽어서 고보대사 곁에 묻히면 극락왕생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이런 진기한 묘지를 만들었다.

무덤을 가로지르는 오쿠노인 참배 길을 굳이 저녁 시간에 가보길 권하는 건 길 양쪽에 늘어선 석등에 켜지는 등불 때문이다. 석등의 노란 불빛은 푸른 어둠이 내린 참배 길을 한층 더 경건하고도 신비롭게 만든다. 오쿠노인에는 당대를 호령하던 명문가의 오래된 묘도 있고, 근래에 만든 기업의 묘도 있다. ‘울지 않는 두견새’라는 화두에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지론을 가졌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묘석도, ‘죽여야 한다’고 여겼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묘석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묘석이 모두 여기 오쿠노인에 있다. 일본 굴지의 대기업 파나소닉의 가족묘도, 아사히(朝日)신문 5대 시장의 묘도 오쿠노인에 있다. 다들 그저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가 극락왕생을 기대하며 이곳에 묻혔다.

마지막으로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오쿠노인에는 임진왜란 침략에 앞장선 가문이나 2차 세계대전 참전 일본군의 묘석이 적잖다. 묘비를 읽다 보면 불편함을 넘어서 분노까지 치밀기도 한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한 무사 가문이 세운 공양탑 앞에 문화재 지정 푯말과 함께 ‘일본군은 물론이고 적군인 조선군 전사자들의 영령까지 위로하는 탑’이라며 이를 ‘일본 무사도의 박애 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해 놓았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는 ‘박애 정신’ 운운하는 게 제정신인가. 머리 숙일 무덤도 있지만, 침을 뱉을 죽음도 있다.


불국토를 이룬 와카야마현 고야산의 모습을 모았다. ① 템플스테이 절집에서 내온 아침 밥상 ② 곤고부지 처마에 새긴 용 문양 ③ 템플스테이로 머문 절집의 옷을 입힌 불상 ④ 노란 등불이 켜진 저녁의 오쿠노인 참배 길.


# 고야산의 밤 풍경과 템플스테이

단조가란과 오쿠노인도 그렇지만, 고야산은 당일치기 관광객이 다 사라지고 적막해진 저녁 무렵의 분위기가 가장 매력적이다. 어둠이 내리고 나면 경건한 기운이 산중의 종교 마을을 감싼다. 조명을 받아 더 선명해진 거대 사찰의 전각을 지나 오래된 절집 사이로 난 굽은 골목을 걷다 보면 순간 수백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절집 마당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온통 별로 가득하다. 이렇듯 평화롭고 고요한 밤을 고야산에서 보내고 싶다면, 숙소를 고야산에 정해야 한다.

고야산의 117개 절집 중에서 52개가 숙박객에게 숙소를 내어준다. 우리로 치면 ‘템플스테이’다. 숙소마다 방의 크기나 시설이 다르고, 내어주는 음식도 다르다. 고급 호텔에 버금가는 저녁과 아침을 차려주는 호텔 수준의 숙소가 있는가 하면,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사용하는 저렴한 방도 있다. 저렴한 방이라도 사찰의 분위기가 운치 있고 관리도 깔끔해서 아침 식사 포함, 7만 원 정도의 비용이 아깝지 않다. 고기나 생선류가 들어가지 않은 사찰식 아침 식사를 포함한 절집 ‘혼카쿠인(本覺院)’의 하루 템플스테이 요금은 7560엔(약 7만7500원)이었다.

말이 템플스테이지 숙박객에게 강제되는 건 없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면 새벽 예불에 참석할 수도 있고, 경전 필사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방에는 TV까지 있다. 다른 절집의 템플스테이에서는 식사에 곁들일 술을 팔기도 하고,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전 6시에 참석한 예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스님 여럿이 음계를 오르내리며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 외는 독경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 벚꽃이 비단처럼 산에 감기다

고야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지(靈地)이자 순례길이 속하는 산이 오사카와 이웃한 나라현에도 있다. 고야산에서 험준하고 좁은 산길을 따라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요시노산이다. 나라현이라면 도심의 공원과 사슴, 그리고 사찰이 전부라 생각하기 쉽지만, 나라현 남쪽에는 뜻밖에도 요시노산을 비롯한 험준한 산지와 맑은 계곡이 있다. 일본의 100대 벚꽃 명소로 꼽힐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인기가 높지만, 대도시에서의 접근성이 떨어져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잘 닿지 않는 곳이다.

요시노산은 고대 일본에서 신이 사는 장소로 여겨졌던 기이산 북쪽 끝에 솟아 있다. 일찍이 요시노산에서는 고대 산악사상에 불교와 도교가 가미된 ‘슈겐도(修驗道)’가 태동했다. 슈겐도는 심산유곡에 들어가 기암의 절경 속에서 금욕적 불교 수행을 하는 종파를 말한다. 슈겐도가 교세를 확장하면서 산 아래 마을에서는 해발 455m의 요시노산에서 시작해 1719m의 오미네산(大峰山)을 오르는 통과의례가 유행처럼 번졌다. 오체투지처럼 산행의 고통을 이기며 종교적 금욕을 실천했던 것이다.

요시노산에서는 그러나 종교나 역사를 따라가는 건 아니다. 금욕도 절제도 필요 없다. 요시노산은 오로지 ‘벚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요시노산이 비단옷을 입은 듯 산 전체가 벚꽃을 휘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화려하던지 그 앞에 서면 탄성보다는 ‘탄식’이 먼저 나온다.

요시노산에 벚꽃이 많은 건 텐무(天武) 일왕이 요시노산에 벚꽃이 만개한 꿈을 꾸고 나서 벚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아 이 산에 심었기 때문이다. 이후 요시노산에는 수많은 벚나무가 심어졌다. 해마다 봄이면 산 전체에 심어진 3만 그루 남짓의 벚나무가 개화하는데, 시차를 두고 꽃이 피어서 요시노산에서는 3주 동안이나 벚꽃을 볼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산 아래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2주 동안 요시노산 일대는 벚꽃의 바다를 이루리라.

순례자들이 드나들던 사찰과 신사가 즐비한 요시노산의 ‘갈 지(之)’자의 길에 흐드러진 산자락의 벚나무들도 아름답지만, 산 중턱의 하나야구라(花矢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산중 마을의 풍경이야말로 압권이다. 아직 벚꽃 개화율이 40%에도 못 미친다는데도 마을 전체가 만개한 벚꽃들로 포위당하다시피 했다. 벚꽃이 만개해 꽃잎이 눈처럼 휘날릴 때 이곳에 서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그 감격을 느낄 기회가 남아 있다. 인천공항에서 오사카까지도, 오사카에서 요시노산까지도 그리 멀지 않다.


■ 가는길 먹을 것 묵을 곳

고야산(高野山)은 와카야마(和歌山)현에 있고, 요시노산(吉野山)은 나라(奈良)현에 있지만 오사카(大阪)에서 그리 멀지 않다. 렌터카를 빌려 찾아가는 게 가장 편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고야산까지는 열차와 케이블카를 갈아타고 간다. 오사카 난바(難波)역에서 난카이센(南海線)을 타고 중간에 하시모토(橋本)역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타고 고쿠라쿠바시(極樂橋)역까지 가서 레일 위의 열차를 철제 로프로 끌어올리는 케이블카를 타면 고야산에 닿는다. 고야산에서는 버스로 이동하면 된다. 요시노산 아래 요시노역까지는 오사카에서 열차로 단번에 이어진다. 오사카아베노바시(大阪阿部野橋)역에서 긴테쓰(近鐵) 특급 열차를 타고 1시간 20분 안쪽에 요시노역에 도착한다. 로프웨이와 버스, 도보 등으로 요시노산 일대를 돌아볼 수 있다. 벚꽃 절정 시즌에는 혼잡을 이유로 버스운행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고야산에서 난카이 특급을 타고 하시모토역을 경유해 열차를 두 번 더 갈아타고 요시노산까지 바로 갈 수 있다. 이렇게 가면 3시간쯤 걸린다. 렌터카로 간다면 1시간 30분쯤 걸리는데 깊은 산속으로 이어지는 길이 워낙 좁고 험해서 능숙한 운전자라도 손에 땀이 날 정도다.

고야산이나 요시노산 모두 오사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지만, 고야산에서는 사찰에서 묵는 ‘템플스테이’인 슈쿠보(宿坊)숙박을 경험하는 게 좋겠다. 슈쿠보협회 인터넷 사이트(www.shukubo.net)에서 숙박이나 식사 정보를 확인하고 예약도 할 수 있다. 영문판 사이트도 있다.

요시노산 인근에서 벚꽃 시즌이나 단풍시즌에 숙소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구한다 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와카야마·나라=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9년 4월 1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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