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4.24 수요일
충남 공주의 계룡산 아래 절집 갑사로 드는 오솔길. ‘오리숲길’이라 불리는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마중 나오는 게 언덕 위에 올라앉은 범종루다. 절집으로 드나드는 오리숲길에는 신록이 한창이지만, 법당 주변에는 이제 막 수채화 물감 같은 연두색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벚꽃이 지고 난 뒤에는 ‘신록’입니다. 신록의 명소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마곡사입니다. ‘춘(春)마곡, 추(秋)갑사’. 봄에는 마곡사가, 가을에는 갑사의 경관이 빼어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곡사나 갑사 모두 충남 공주에 있는 절집입니다. 두 곳 모두 종교적인 무게감보다는, 풍경으로 훨씬 더 많이 알려진 곳이지요. 여기에다 공주 계룡산 계곡의 절집 동학사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인 절집 신원사를 보탭니다. 이렇게 꼽은 공주의 절집 네 곳은 저마다 다른 봄날의 정취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절집도 좋지만, 공주에 간 김에 이 네 곳을 한꺼번에 다 돌아본다면 더없이 좋은 봄 여행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가을보다 봄, 갑사의 신록

오래전 국어교과서에는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실려 있었다. 눈 오는 어느 겨울날, 계룡산의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도중에서 만난 남매탑에 전해오는 이야기와 그 감상을 적은 수필이다. 중년이 넘은 나이라면 계룡산 갑사나 동학사에서 그 글이 먼저 떠오르리라. 글에는 오누이 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의 전설이 나온다. 전설의 등장인물은 호랑이와 스님,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 이야기는 이렇다. 호랑이가 자신을 구해준 스님을 위해 여인을 물어왔다. 여인은 이내 스님을 사랑하게 됐지만 스님이 불제자라 혼인할 수 없어 의남매를 맺고 둘은 수도에 전념했다. 둘이 죽은 뒤에 그들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남매탑이란 얘기다.

남매탑이라 불리는 두 탑의 공식명칭은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이다. 둘 다 보물이다. 오누이의 전설에도 불구하고, 두 탑은 높이도 다르고 기법과 양식도 크게 다르다. 하나는 백제 탑의 전통을, 다른 하나는 신라 탑의 양식을 보여 준다. 아무리 양보해도 같은 시대에 같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유다. 설화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역사적 사실과 설화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설화 쪽이 훨씬 더 끌리긴 하지만 말이다.

전해지는 것과 실제 체감이 다른 건 ‘춘마곡, 추갑사’란 얘기도 마찬가지다. ‘춘마곡, 추갑사’는 ‘봄에는 마곡사가, 가을에는 갑사가 좋다’는 얘기다. 수필을 쓴 이가 오래전의 겨울에 가서 그렇지, 이즈음의 봄날에 갑사에 갔다면 남매탑 대신에 갑사 강당 앞의 거대한 벚나무가 우산처럼 피어 올린 벚꽃이나, 갑사까지 가는 길에 펼쳐지는 눈부신 연두색 신록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가을에는 갑사’라고 하는 건 가을 단풍이 그만큼 짙고 화려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갑사의 봄 정취’를 몰라보고 하는 얘기다. 봄날의 갑사 벚꽃이 얼마나 화려한지, 갑사의 단풍나무 신록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지를 말이다.

갑사로 드는 숲길을 ‘오리숲길’이라 부른다. 5리, 그러니까 2㎞의 오솔길 구간이 숲으로 가득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갑사의 화려한 벚꽃은 다 지고 말았지만,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이어지는 오리숲길은 지금 신록과 함께 흐드러진 황매화로 온통 가득하다.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으로 드는 숲길에는 수령 150년 이상 되는 고목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아래로 연두색 이파리의 노란 황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초록과 노랑이 이렇게도 잘 어울리는지가 새삼스럽다. 황매화는 5월 초까지 오리 숲길을 환하게 밝힌다.

갑사는 육십갑자의 으뜸을 뜻하는 ‘갑(甲)’ 자를 쓰고 있으며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전각을 거느린 당당한 절집이지만, 뜻밖에도 마곡사에 딸린 말사다. 이른바 ‘수말사(首末寺)’라 해서 말사 중의 으뜸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봄풍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충남 공주의 마곡사. 산문을 지나 오색 연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극락교를 건너가면 머리 위로 연등이 별처럼 떠 있다. 나무에 솜씨 있게 매어놓은 연등은 절집의 정취를 더욱 화려하게 한다.


# 춘(春)마곡, 그 이름값을 하다

갑사를 말사로 거느린 마곡사는 물길을 끼고 있는 짙푸른 계곡의 숲길을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그동안에는 절집의 턱밑인 천왕문 앞까지 주차한 차량이 늘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지난해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뒤부터 산문 밖에 주차장을 두고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몰고 들어온 차들을 위한 주차장도 절집 한쪽에 만들었다. 그 정도만 해도 마곡사 가는 길이 한층 운치 있어졌다.

이즈음 마곡사는 ‘춘(春)마곡’이란 이름값을 한다. 오래된 솔숲 속에 피어난 진달래가 마치 그림 속의 풍경 같다. 신록과 봄꽃도 좋지만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매단 화려한 연등도 마곡사의 봄 풍경 중 하나다. 연등은 사천왕문에서 법당으로 들어가는 돌다리 부근에 매달아 놓았는데, 형형색색의 연등이 절집 풍경과 이리도 잘 어울릴 수 없다. 소담스러운 연꽃 모양의 연등이 단청을 배경으로 매달려 있으니 마치 허공에 핀 꽃 같다. 해마다 연등을 거는 솜씨가 더 좋아지는 듯하다.

마곡사에서는 법당 현판을 유심히 보자. 대광보전 현판의 글씨는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솜씨. 심검당은 송하 조윤형, 심검당 옆의 마곡사 현판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모두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던 이들이다. 영산전의 현판은 세조의 글씨다. 김시습을 보러 마곡사를 찾은 세조가 결국 만나지 못하고, 영산전의 현판 글씨와 자신이 타고 간 가마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마곡사에 머물던 김시습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짐을 챙겨 부여의 무량사로 훌훌 떠났다던가.

공주 마곡사에서는 한때 그곳에 은거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자취도 있다. 백범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장교를 죽여 사형선고를 받고 옥살이를 하다 탈옥했다. 삼남으로 잠행하던 김구는 이곳 마곡사에 이르러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하고 3년 동안 사미로 일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김구 선생은 마곡사를 다시 찾아 경내에 향나무를 심었다. 그때 심은 향나무가 응진전 옆에서 자라고 있다.

마곡사에서는 봄기운이 가득한 날에 진달래꽃을 발치에 두른 고즈넉한 솔숲길을 걷는 맛을 빼놓을 수 없다. 마곡사를 두르고 있는 오래된 소나무의 청량한 솔숲은 가히 ‘명품 솔숲’이라 부를 만하다.

마곡사의 솔숲에 놓인 3개 코스의 ‘솔바람 길’도 좋지만 거기보다 마곡사의 산내암자 은적암과 백련암을 둘러볼 것을 권한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적암의 잔디마당도 좋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백련암의 아름다운 해우소도 인상적이다.


# 벚꽃 지고 고즈넉해진 동학사

▲ 갑사 경내 안쪽의 비밀스러운 느낌의 계곡. 물소리가 청량하다.

계룡산에는 동서남북으로 4개의 절터가 있다. 서쪽에 갑사가 있고, 동쪽에는 동학사가 있다. 남쪽에는 신원사가 있다. 북쪽에도 원래 구룡사라는 절이 있었다지만 오래전에 폐사됐다. 계룡산 서쪽 갑사 얘길 했으나 이제 동쪽 동학사 차례다.

동학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비구니 강원. 비구니의 경 읽는 소리가 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어우러진다는 절집이다. 절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어 이름이 ‘동학사(東鶴寺)’였다는 얘기와, 고려 충신 정몽주를 이 절에 모셔 정몽주가 정립한 학문인 ‘동방이학(東方理學)’에서 이름을 딴 ‘동학사(東學寺)’였다는 설이 있다. 동학사에는 세조 3년부터 단종을 비롯해 안평대군과 금성대군, 사육신 등을 모셔 제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학사는 6·25전쟁 때 모두 불타 옛 자취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동학사 법당은 모두 1960년대 이후 중건된 것이다.

봄날의 동학사는 수도처라기보다는 행락지에 가깝다. 동학사 입구에 늘어선 벚나무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벚꽃축제가 열린다. 중부권 최대의 벚꽃축제로 꼽히는 ‘계룡산 벚꽃축제’다. 워낙 꽃이 좋아서 축제 기간에는 몰려든 행락 인파로 가득하다.

봄날의 벚꽃은 동학사로 들기 한참 전인 박정자 삼거리까지 마중 나온다. 얼핏 사람 이름처럼 들리지만, ‘박정자’란 일대에 살던 밀양 박씨 일가가 땅의 기운을 지키기 위해 심은 느티나무가 능히 ‘정자(亭子)로 삼을 만한 크기로 자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4.5㎞ 도로변은 봄이면 벚꽃 터널로 장관이다. 여기 벚꽃은 다른 벚나무와는 다르게 가지에 촘촘하게 피어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지역의 비슷한 크기 벚나무보다 훨씬 더 꽃이 조밀하고 탐스럽다. 아쉽게도 지금은 벚꽃도 다 졌고, 열흘 전에 축제도 끝났다.

하지만 동학사 가는 길은 흐드러진 벚꽃이 다 지고 난 뒤부터가 진짜다. 행락객이 물러가고 한적해진 봄날의 계곡을 따라서 타박타박 흙길을 걷는 맛이 그만이다. 동학사로 오르는 동학사계곡의 신록은 ‘계룡 8경’의 다섯 번째 경치로 뽑혔을 정도로 이름났다. 신록과 물소리를 따라 걷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흰 이마를 한 계룡산의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양지 쪽의 봄볕은 따갑지만, 그늘을 이룬 계곡은 서늘하다. 차가운 공기가 싱그럽기 이를 데 없다.

절집 가는 길은 등산로와 겹쳐 있고, 행락객들에게는 공원의 산책로처럼 쓰인다. 곳곳에 벤치도 놓여 있는 건 그래서다. 입구 매표소에서 동학사까지는 1.5㎞ 남짓. 계곡을 끼고 관음암, 길상암, 문수암 등의 작은 암자들을 지나 동학사까지 길이 이어지는데, 아무런 부담 없이 뒷짐 지고 느긋하게 소요할 수 있는 길이다.


# 신원사의 고즈넉한 봄 풍경

▲ 물과 어우러진 봄 신록이 아름다운 송곡소류지. 동학사와 가깝다.

계룡산의 영험함 때문일까. 계룡산 남쪽 자락의 신원사로 가는 길 주변에는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굿당과 점집이 있다. 굿당과 점집들이 내다 건 붉은 간판에서 어쩐지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굿당과 점집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천주교의 기도원도 많다. 이렇듯 수많은 종교가 산자락으로 밀려 들어와 있으니 계룡산이 발산한다는 영적인 기운이 실제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신원사는 계룡산 자락에 있지만, 그다지 알려진 절집은 아니다. 절집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이름나기로도 동학사와 갑사, 마곡사 같은 절집의 명성에다 대면 어림도 없다. 알려지지 않아서 신원사는 고즈넉하다. 봄꽃이 화사하게 터졌을 때도 그렇다. 절집 앞 너른 공터의 버스 종점 낡은 점방도, 절집 아랫마을 사하촌도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채 고요하다.

신원사는 벚꽃이 만개했을 때의 정취를 최고로 친다. 법당 앞마당에는 두세 아름이 넘는 둥치의 거목 벚나무들이 당당하게 서 있는데, 이 커다란 벚나무에 꽃이 가득 피어났을 때의 경관은 황홀할 정도다. 아쉽게도 마당에 온통 구름처럼 피어난 벚꽃은 이제 다 지고 없다. 대신 꽃 지고 난 벚나무에는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연둣빛 신록이 번져가는 중이다.

신원사 경내에서 유독 늦게 피어나는 붉은 춘백은 이제야 꽃잎을 분분히 날리면서 지고 있다. 봄꽃이 지는 게 별로 아쉽지 않은 건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지 끝에 이파리들이 초록 물을 흠뻑 들인 것처럼 신록으로 빛나고 있고, 법당 앞마당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오색 연등이 하나둘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 명성황후의 기도가 깃든 곳

▲ 계곡 한쪽에 들어선 동학사. 좁은 대웅전 마당에 연등이 촘촘하게 걸렸다.

신원사 경내 한쪽에는 솟을대문의 한옥건물이 있다. 한눈에도 여느 절집의 법당과는 다른 양식의 건물이다. 여기가 바로 계룡산의 산신을 모시고 제사를 올리던 중악단(中嶽壇)이다.

조선 시대 조정은 영험하다고 믿었던 묘향산과 계룡산, 지리산에 제단을 두고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묘향산을 상악(上嶽), 계룡산을 중악(中嶽), 지리산을 하악(下嶽)으로 삼아 각각 상악단과 중악단, 하악단을 설치했던 것이다. 중악단은 3개의 제단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계룡산에서 산신을 모시던 제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이듬해에 세운 중악단은 조선 중기 미신타파 목적으로 폐지됐으나, 조선 말기에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명성황후가 제단을 새로 지었다. 명성황후는 여기를 방문해 기원을 올렸다.

조선 말엽 계룡산은 왕실에 금기의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계룡산 신도안이 조선 왕조에 이어 들어설 새 왕조가 800년 동안 도읍할 땅이라 예언한 ‘정감록’ 때문이었다. ‘조선이 망하고 정 도령이 세운 나라가 800년을 갈 것’이라는 정감록의 예언이 두려웠던 대원군은 정감록을 다 불태우고, 아예 계룡산 출입을 금지했으며 계룡산의 신당과 굿당들도 죄다 헐어 버렸다.

그런데 대원군의 며느리 명성황후는 달랐다. 시아버지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뒤에 계룡산 연천봉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명성황후는 조선왕조의 대를 잇고자 기도했다. 기도의 효험이었을까. 명성황후는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왕위를 이은 순종이다. 그리고 5년 뒤에 지금의 자리에 중악단을 짓고 해마다 산신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중악단에서 기도했던 명성황후는 무학대사의 조언으로 계룡산신의 힘을 빌려 조선을 건국했던 태조 이성계를 생각했으리라. 되돌아보면 안타까웠던, 혹은 부질없었던 봄날의 꿈이었다.


■ 여행정보

공주는 뜻밖에도 분식, 그중에서도 ‘면(麵)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발달했다. 교육도시였던 전통 때문으로 풀이한다. 호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이 즐겨 먹기로는 분식만 한 게 없다. 공주의 분식 중 대표메뉴는 단연 칼국수. 공주의 칼국수 명성은 대전까지 퍼져나가 대전 시내에 ‘공주 칼국수’ 상호를 붙인 식당이 적잖다. 그렇다고 ‘공주 칼국수’라 이름할만한 정형은 없다. 붉은 국물도, 뽀얀 국물도 있고, 전골식을 끓이는 것도, 한 그릇씩 담아내는 것도 있다. 갖은 해물로 낸 육수에 쫄깃한 면발이 인상적인 유가네칼국수(041-856-1053)는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맛집. 초가집(041-856-7997), 고가네(041-856-6476) 등도 칼국수로 이름난 곳이다.

공주에는 짬뽕 맛집도 있다. 일찌감치 외지사람들로부터 공주를 대표하는 짬뽕으로 평가받아온 동해원(041-852-3624)은 진하고 강한 국물 맛이 인상적인 짬뽕을 낸다. 반면 공주사람들은 화교가 운영하는 계룡면 ‘장순루’(041-857-3498)의 고추 짬뽕을 최고로 친다.

금강을 끼고 있는 반포면 창벽로 인근에는 장어구이로 이름난 집이 많다. 어씨네본가(041-852-7372)는 장어구이로 소문난 집이다. 굵은 장어를 석쇠에 초벌해 숯불 화로째 내온다. 갑사 가는 길목의 ‘갑사가는 길’(041-853-1300)은 장어구이도 내지만, 참게탕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칼칼한 참게탕 국물이 훌륭하다. 새이학가든(041-855-7080)은 쇠고기와 대파를 넣고 푹 끓여낸 국밥을 내는데, 60년 전통의 이학가든에서 갈라져 나온 집이다.

신원사만 빼고 마곡사와 갑사, 동학사 절집 앞에는 산채 정식 등을 내는 식당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여기나 저기나 비슷한 맛이라 딱히 식당을 고르지 않아도 푸짐한 나물 밥상을 받을 수 있다. 시래기를 넣은 청국장에다 파전을 놓고 달큼한 밤막걸리를 곁들인다면 좋겠다.


공주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9년 4월 2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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