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20.2.14 금요일
강원 철원의 고석정에서 순담계곡으로 이어지는 한탄강 구간에 놓은 부교. 이쪽은 물살이 빠른 데다 급경사 지역이어서 부교를 놓기 전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부교를 따라 걷는다면 한 번도 보지 못한 한탄강 협곡 안쪽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철원군은 얼음트레킹 축제가 끝났지만 3월까지 부교를 놓아두기로 했다.


꽁꽁 언 강물 위 걷는 ‘한탄강 얼음트레킹’

올해는 포근한 날씨에 얼음 없는 축제

부교 띄워 연결한 7.5㎞ 코스 따라 걷고 걸어

송대소 앞 30m 직벽 주상절리 감탄


두루미·재두루미·쇠기러기·고니…

민통선 주변은 지금 7000마리 ‘철새 천국’

우아한 날갯짓 맨눈으로 보면 가슴 두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에 대한 공포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의 활동마저 위축되는 판에, 여행 따위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처음 강원 철원을 여행 목적지로 삼기로 했던 건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였습니다. 철원은 지금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지난 9월부터 비무장지대(DMZ) 안보관광과 생태관광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땅굴 견학도, 평화전망대도, 민통선 출입도 불가능합니다. 철원의 가장 큰 축제인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도 겨울 이상 고온으로 한탄강이 얼지 않아 적잖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습니다. 안타까움 속에 찾아간 길이었지만, 가보고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겨울 철원에 뜻밖의 새로운 경관과 가슴 뛰는 생명들, 그리고 굵직한 메시지를 품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해줄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작고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글로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


# 얼어붙은 강물 위를 걷는 일

강원 철원이란 지명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한겨울, 그것도 가장 추운 엄동 무렵이다. 두말할 것 없이 매서운 추위 때문이다. 철원은 춥다.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겨울철 기온이 평균 6~7도 더 낮다. 10도 이상 차이 나는 날도 적잖다. 해마다 겨울이면 철원에서 개최되는 ‘한탄강 얼음트레킹 축제’는 이런 추위 덕에 가능하다. 얼음트레킹은 혹한에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 강물 위를 걷는 트레킹이다.

축제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얼어붙은 강물 위를 누가 처음 걸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지나던 주민들은 어느 날 얼어붙은 강물 위로 발자국을 발견했다. 눈 덮인 얼음판 위에 선명한 발자국이 한 줄에서 두 줄로, 두 줄에서 세 줄로 늘었다. 이듬해 겨울에는 그 발자국이 여러 줄이 되고 겹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했다. ‘얼음판을 걷는 사람이 있나 보네. 나도 한 번 걸어볼까.’ 이렇게 주민들은 삼삼오오 얼어붙은 강 위를 걸었고, 해마다 그 숫자가 늘었다.

철원군은 처음에 ‘위험하다’며 얼음판을 걷는 이들을 극구 말렸다. 자칫 얼음이 깨지면 인명사고가 날 수 있었으니 왜 안 그랬을까. 경고판을 써 붙이고 통제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 고심 끝에 생각을 바꿨다. 접근을 막고 통제하고 단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코스를 안내하고 위험지역을 조사해 접근을 막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게 2013년이었다. 얼음의 두께를 재서 안전하다 싶으니 출입을 허용하고 얼음 위에 철심을 박아서 걷는 길을 안내했다. 위험지역은 끈으로 표시해서 접근을 막았다. 그해 1월 중순에 주민 1000명이 모여 지게작대기(장대)를 들고서 한탄강 얼음판 위를 걸었다. 미끄럼도 타고 노래도 부르며 하루 종일 놀다가 승일교 아래에 도착해서 떡국 한 그릇씩 나눠 먹었다. 그게 첫 축제의 시작이었다.


한탄강 전체 구간 중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협곡의 풍경을 보여주는 송대소 부근. 예년에는 꽝꽝 얼어붙은 수면 위를 걸었지만, 올해는 부교를 딛고 걸어야 한다. 부교를 걸으면 협곡의 주상절리를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 얼음 없는 얼음트레킹의 성공

한탄강 얼음트레킹은 꽁꽁 언 한탄강 위를 걷는 재미도 재미지만, 수직의 주상절리로 이뤄진 한탄강의 속살을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한탄강은 다른 강과는 전혀 다르다. 우선 너른 들판 아래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푹 꺼진 자리에 있다. 집이 있고 길이 있고 논이 있는 평지에서 수직 직벽을 이룬 저 아래쪽에 강이 흐르는 것이다. 땅을 U자형 조각칼로 푹 파낸 뒤 파인 땅 가장 낮은 곳으로 강이 흐른다고 생각하면 쉽다.

땅에도 나이가 있다. 화산활동으로 이뤄진 한탄강 일대 땅은 가장 젊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살. 철원 일대의 지형을 형성한 화산이 12만 년 전에 폭발했으니, 철원 일대 지형의 나이는 지구에 대면 젖먹이 수준도 안 된다. 화산이 폭발한 뒤 용암이 흘러내려 이룬 철원의 용암대지 위에 강물이 파고들어 흘렀다. 대지는 강물에 빠르게 침식했다. 저 아래 발밑으로 꺼진 한탄강과 수직의 협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여기, 한탄강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발밑 저 아래에 강이 있으니 평소의 한탄강은, 물러서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는 풍경으로만 익숙하다. 강으로 내려서 배를 타면 강변의 경관을 십분 즐길 수 있겠지만, 기이한 지형을 이룬 곳들은 직벽이라 내려설 수 없는 데다 물살도 급하고 곳곳에 바위까지 있어 배를 띄우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강물이 두껍게 어는 겨울만큼은, 꽁꽁 얼어붙은 강으로 내려가 한탄강과 직벽을 이룬 주상절리를 보고 만질 수 있다. 겨울 이상고온 현상으로, 올겨울 한탄강은 얼지 않았다. 군데군데 언 곳도 있었지만 사람이 올라서도 될 만큼의 두께는 아니었다. 얼음트레킹을 즐길 수 없는 조건. 그럼에도 축제는 치러졌다. 그것도 성대하게…. 축제가 치러진 열흘 동안 한탄강을 찾은 관광객이 자그마치 30만 명이나 됐다. 한탄강이 꽁꽁 얼었던 전년도보다 5만 명이 늘어난 숫자다. ‘얼음 없는 얼음트레킹’의 성공이다. 강은 여전히 얼지 않았고, 축제는 이미 끝났는데도 겨울 한탄강을 찾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대체 거기에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 강물 위에 띄워놓은 다리를 걷다

‘얼음이 없는 얼음트레킹’이 가능했던 건 한탄강에 띄워놓은 부교(浮橋) 덕분이었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태봉대교 아래서 출발해 송대소와 승일교를 거쳐 고석정과 순담계곡에 이르는 7.5㎞의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면서, 길이 끊기는 구간에 강에 부교를 띄웠다. 부력이 좋은 플라스틱을 이어붙여 바닥을 만들고 난간 줄을 친 부교가 놓이면서 비로소 얼지 않은 강물 위를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강이 얼었더라면 얼어붙은 강 위를 걷고 미끄럼을 타며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는 게 더 낫긴 했겠지만, 얼지 않은 강물 위를 부교로 딛고 걷는 맛도 못지않게 훌륭했다. 부교로 올라서자 얼어붙은 부교 주변 얼음이 우지직거리며 깨졌다. 아직 얼지 않은 겨울 강은 투명하게 바닥이 보였다. 부교 위를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내려서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 없었던 한탄강 협곡의 주상절리를 손으로 만져보고, 물살이 둥글게 깎아낸 화강암 바위 물소리를 들으며 부교 위를 걸어보는 건 얼음트레킹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한탄강 얼음트레킹의 전체 구간 중에서 인상적인 경관이 펼쳐지는 곳은 세 군데다. 송대소 일원과 고석정 주변, 그리고 순담계곡이다. 고석정이나 순담계곡은 빼어난 경관으로 기왕에도 알려진 명소지만, 한탄강이 굽이쳐 깊은 소(沼)를 이룬 송대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송대소 주변은 현무암 협곡이 자그마치 30m 높이의 직벽을 이루고 있다. 송대소 앞에 서 있으면 병풍처럼 수직으로 펼쳐진 거대한 주상절리 석벽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수심 20m가 넘는다는 송대소의 물 위에는 부교가 놓여 있다. 부드러운 S자 형으로 이어진 부교를 디뎌가며 강 위를 걷는다. 고개를 치켜들어 까마득한 직벽 위를 보니 현수교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6월 개장을 목표로 세워지고 있는 보행자 전용 인도교 ‘에코밸리 현수교’다. 길이 180m의 다리는 주상절리 협곡을 가로지르는데, 다리 중앙 부분 100m 정도의 구간은 강화유리로 바닥을 마감해서 송대소 협곡의 절경을 발아래로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란다.


철원은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안보관광과 생태관광이 모두 중단됐다. 민통선도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민통선을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길리에는 두루미를 비롯한 겨울 철새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올겨울 철원에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7000마리가 날아들었다. 개체 수 모니터링 관측 이래 최대란다.


# 철새를 보는 일이 가슴이 떨리는 이유

겨울 철원의 들판에는 지금 겨울 철새가 있다. 쇠기러기, 큰기러기, 두루미, 재두루미, 청둥오리, 쇠오리, 고니…. 수많은 철새가 철원에서 겨울을 난다. 먼 땅에서 날아온 생명이 평화롭게 겨울을 나는 곳이, 비릿한 쇳내 나는 분단의 접적 지역이다. 겨울 철새가 철원으로 날아드는 건 한탄강 주변이 150㎢에 달하는 평야 지대를 갖추고 있는 데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과 여울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통제선이 그어져 있어 인간의 간섭이나 위협이 적은 것이나 철새 보호를 위해 농민들이 볏짚과 먹이 등을 제공해준다는 점도 이유가 되겠다. 이런 조건들로 철원의 겨울 철새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철원의 겨울 철새를 대표하는 건 두루미와 재두루미다. 크기도 크거니와 우아한 자태가 단연 돋보인다. 지금 철원에는 줄잡아 7000여 마리에 달하는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찾아와 머물고 있다. 철원의 두루미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을 시작한 2013년 이래 최대 개체 수다.

사실 올겨울 철원에서 철새 보기를 단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철원을 비롯한 접적 지역의 민통선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됐기 때문이다. 땅굴견학이나 평화전망대 등 안보관광도 모조리 중단됐다. 민통선 너머 토교저수지 등 철새 도래지로 가는 탐조 투어도 중단돼 언제 다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민통선을 넘지 않은 곳에서도 철새를 볼 수 있을까. 본다고 해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면 그곳을 소개할 수 있을까.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지금 철원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보는 건, 참새 보기보다 더 쉽다. 고니, 쇠기러기나 청둥오리도 마찬가지다. 철새를 보려면 특별한 허락을 얻어 민통선 너머로 들어가거나 으리으리한 전문 장비가 있어야 하는 걸로 아는 이가 많다. 철새 탐조대가 있다고 해도 새와 너무 거리가 멀어서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울 거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렇기도 하고, 실제 그런 곳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철원에서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고니, 쇠기러기들이 한데 모여 있는 장관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고작 ‘새 따위를 보는 게 무슨 재미냐’고 생각한다면, “가서 보고 난 뒤에 얘기하라”는 답을 돌려주겠다. 야생의 두루미가 우아하게 날아와 먹이를 먹고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평소에 새에 털끝만큼의 관심조차 없었더라도 말이다. 천변의 억새밭에서 철새들이 온통 수런거리며 먹이를 먹는 모습도, 수백 마리가 넘는 두루미가 일제히 날아올라 비행하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그러므로 겨울 철새는, 철원을 겨울에 가야만 하는 또 하나의 충분한 이유다.


# 남의 땅에서 남의 전쟁으로 죽다

이번에는 뜻밖의 장소다. 철원에는 ‘포충사’가 있다. 뜻 그대로 ‘충(忠)을 기리는 사당’이다. 사당이 기리는 건 철원 출신의 김응하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과 마찬가지로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은 조선 광해군 때의 장군이지만, 그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철원사람들에게조차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의 이름이 희미한지는 그의 죽음을 따라가 보면 짐작이 간다. 비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했을 그의 죽음을 따라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후금(後金)이 강성해지면서 위기에 몰린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을 보내달라 요청했다. 광해군은 고심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도움을 줬던 걸 생각하면 마땅히 파병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이 희생됐고, 전란의 와중에 국토가 황폐해져 살아남은 이들도 부랑자로 떠돌고 있었다. 파병은 백성을 다시 끔찍한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병사를 보내야 했던 광해군은 파병부대 대장 강홍립에게 밀지(密旨), 그러니까 비밀 명령을 내렸다. 명나라 편에 서서 후금에 맞서 싸우는 척하다가 상황을 봐서 투항하라는 명령이었다. 광해군의 명령대로 강홍립은 첫 전투에서 패한 후금과 협상 끝에 무조건 투항했다.

강홍립 부대가 투항하고서 포충사의 주인공 김응하 장군은, 구원병으로 중국 요동지방의 전장에 투입됐다. 그는 과연 광해군이 강홍립에게 보낸 밀지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김응하 장군은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6만 명의 적군과 맞서 싸우다가 마흔 살의 나이에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는 밀지의 내용을 전혀 몰랐으리라. 불리한 전황에도 명령을 받들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장군은 그렇게 남의 나라 땅에서, 남의 전쟁에 휘말려서 죽임을 당했다. 억울한 죽음이었지만, 누구의 잘못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시대가 그랬고, 정세가 그랬다.

포충사에서 400년 전의 억울했으나 자랑스러웠던 사내의 죽음을 생각한다. 왜 그때, 굽이쳐 흐르는 겨울 강이 떠올랐을까. 단단한 얼음장 아래로, 때로는 격류로 겨울강은 도도하게 흐른다. 이런 비극이 어찌 그때뿐이었을까. 치열했던 전쟁이 지나간 땅, 쇳내 나는 무기들로 가득한 땅에서 그 비극 앞에다 위로의 술을 붓는다.


■ 여행정보

철원에 가면 헷갈리는 게 ‘어디가 철원군의 중심인가’이다. 어디일까. 철원에서 가장 번화한 건 철원읍이 아니라 ‘동송읍’이다. 철원읍은 6·25전쟁 전에 철원의 중심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됐으며 대부분 민통선 너머에 있다. 행정의 중심은 ‘신철원’이다. 철원군청이나 행정기관이 다 그곳에 있다. 규모는 동송의 절반 정도다.

철원에서 가장 추천하는 숙소는 고석정 관광지의 한탄 리버스파호텔(033-455-1234)이다. 한탄강을 발아래로 굽어보는 자리에 있다. 호텔에 게르마늄온천이 있다.

철원의 맛집으로는 신철원의 철원막국수(033-452-2589)가 첫손으로 꼽힌다. 60년 전통이라는데, 막국수 맛이 구수하다기보다는 새콤달콤한 쪽에 가까워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집이다. 동송의 내대막국수(033-452-3932)의 맛은 좀 더 묵직한 편이다. 신철원의 농가맛집 대득봉(033-452-2915)은 산나물 비빔밥으로 알려진 곳. 재배한 나물로 투박하게 차려 내는 밥상이 정겹다. 역시 신철원의 고향식당(033-458-0112)은 상호와는 다르게 지역에서 이름난 중국집이다.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짬뽕으로 철원의 식당으로는 드물게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철원식당(033-452-3049)은 내장을 듬뿍 넣고 끓인 순댓국을 내는데 냄새도 없고 맛도 깔끔하다. 민통선한우촌(033-452-6649)은 1층 매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2층 식당에 차림비(3000원)를 내고 먹는 이른바 ‘정육 식당’인데, 안심이나 채끝 1+ 등급이 100g당 1만 원 내외다.


■ 도피안사(到彼岸寺)

철원에서 가장 이름난 절집. ‘도피’로 읽는 게 아니라, ‘도’ ‘피안’ 이렇게 띄어 읽어야 한다. ‘해탈의 피안(彼岸)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도피안사에는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이 있다. 6·25전쟁이 지나고 한참 뒤에 발견됐다. 전쟁의 땅, 철원의 기원은 여전히 피안과 평화다.


철원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20년 2월 1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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