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2.1.13 목요일
아직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곳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팬데믹의 와중이라 그런 걸까. 태국 푸껫 북쪽 팡아만 일대의 기막힌 경관을 보여주는 자연 전망대 ‘사멧낭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호젓하다.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가 앉은 한 관광객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침 볕이 번지는 장엄한 풍경과 마주하고 있다.


푸껫은 태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휴양지입니다.
바닥이 환히 비치는 비취색 바다, 야자나무가 늘어선 그림 같은 해변, 근사한 최고급 리조트, 다채로운 나이트 라이프, 맛있는 음식….
‘우리가 남국의 휴양지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이 푸껫에는 있다.’ 이렇게 쓰고 다시 읽습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요.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채 세 번째 겨울을 건너가는 지금,
우리가 가지 못했던 푸껫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무사할까요. 달라진 건 어떤 것일까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달라지고 있는 여행을 살피러 자가격리를 무릅쓰고 푸껫을 다녀왔습니다.


# 코로나 시대, 푸껫의 안부를 묻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태국은 세계 8위의 관광대국이었다. 한 해 40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맞았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관광부문에서만 3600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관광이야말로 뜨겁게 불붙은 국가의 성장엔진이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코로나19로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작년 9월 태국의 국제선 항공편 승객은 전년 대비 95%가 감소했다. 태국의 호텔 투숙률은 9%까지 떨어졌다. 전무후무한 기록. 호텔 방 100개 중 91개가 빈 채로 영업했다는 얘기다.

푸껫에 머무는 동안 리조트에서, 식당에서, 카페에서, 시장에서 팬데믹의 와중에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건너왔는지를 들었다. 태국이 관광대국이라지만 방콕이야 나라의 수도이니 관광 말고도 다른 성장동력이 있고 일자리가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순전히 관광으로만 먹고살았던 푸껫의 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던 지난해 봄부터 여름 사이에 푸껫에서 가장 붐비는 파통 해변의 호텔들조차 대부분 문을 닫았다.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새벽녘까지 휘황찬란했던 방라로드의 유흥가는 불이 꺼졌다. 저녁마다 관광객을 불러모으던 ‘판타시’ 쇼나 ‘사이먼’ 쇼는 진작 중단됐고, 푸껫에서 가장 이름난 쇼핑센터 ‘정실론’도 영업을 중단했다. 길거리의 노점상도, 해변의 호객꾼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해변을 끼고 한 집 걸러 있었던 마사지숍도 모두 문을 닫았다. 종업원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휴양객들로 북적이던 해변 관광지가 한순간에 철거를 앞둔 재개발단지처럼 텅 비어버렸다. 어쩌다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불 꺼진 유령마을처럼 변한 푸껫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돌아갔을 정도였다.

태국 정부는 텅 빈 관광지를 내국인들로 채우기 위해 여행자들에게 여행보조금을 지급하는 ‘라오 티우 유이 칸(We travel together)’ 등의 지원책을 마련해 내국인들의 국내여행을 유도했다. 그러나 씀씀이부터 비교가 되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은 태국여행에 평균 1543달러(약 184만2000원)를 썼지만, 태국인들은 이의 10분의 1에 불과한 평균 152달러(18만1500원)를 썼을 뿐이다. 관광이 무너지니 푸껫의 경제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다시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오지 않고는 관광지 경기를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푸껫 남부 카타노이 해변 언덕에 들어선 더 쇼어 카타타니 호텔의 풀빌라 객실. 1박에 40만 원을 넘지 않는다.


# 푸껫을 다시 보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한 ‘푸껫 샌드박스’는 고심 끝에 태국 정부가 선보인 제도다. 섬이란 지리적 조건을 활용해 푸껫을 ‘격리의 완충지대’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쉽게 말해 우선 푸껫 주민들의 백신 예방접종률을 끌어올리고 리조트나 관광지의 방역 시스템을 강화하고 난 뒤에, 푸껫에서만큼은 입국자의 격리를 면제해주는 방식이다.

푸껫 샌드박스 도입으로 백신 예방접종을 완료하고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면 외국인 관광객도 격리 없이 푸껫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 푸껫에 일주일 머문 뒤 음성 판정을 받으면, 내국인과 동일하게 취급받아 그때부터는 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제한 없이 이동할 수 있다. 푸껫의 코로나 대응력을 높여서 외국인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이 같은 방식은, 푸껫을 외국인 관광객 유치의 관문이자 격리 면제의 해방구처럼 활용하자는 의도였다. 이 방식은 성공적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실제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태국 대표선수들은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대부분 푸껫을 경유했다. 방콕이나 다른 도시로 돌아가면 격리를 피할 수 없으니, 우선 푸껫으로 입국해 일주일 동안 격리 없는 휴가를 즐긴 뒤 귀가했다.

푸껫 샌드박스의 성공에 힘입어 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63개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방콕을 포함한 태국 내 17개 지역의 격리 없는 방문을 전격 허가했다. PCR 검사(테스트)를 한 뒤에 자유롭게 여행(고)하라는 ‘테스트 앤드 고’ 프로그램의 시작이었다. 푸껫 취재를 위해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태국 내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지난해 12월 21일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하지만, 푸껫 샌드박스 프로그램만큼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앞으로 샌드박스 프로그램을 푸껫 외에도 코사무이, 코피피, 꼬따오 등의 섬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물론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진정 추세를 보이면 테스트 앤드 고 프로그램도 재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푸껫의 문은 지금도 열려 있는데, 문제는 우리나라다.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외국에서 들어오면 예외 없이 10일 격리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꼼짝없이 격리해야 한다. 격리 원칙이 완화된다면 가장 유력한 여행목적지로 떠오를 곳은 푸껫이다. 6개월째 안정적으로 푸껫 샌드박스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는 데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지역 내 감염과 외국인 관광객을 관리하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다.


푸껫 카말라 해변의 인터콘티넨털 푸껫리조트의 수영장과 해변. 조용한 휴가를 즐기기에 딱 좋은 리조트다.


# 지금 푸껫에 가고 싶은 몇 가지 이유

지금 푸껫의 해변 리조트는 한가롭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조트들도 객실 가동률이 50%를 겨우 넘는 정도다. 손님이 적어서가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라 최소한의 직원들로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어서다. 푸껫 샌드박스 시행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지만, 거기에 맞춰 곧바로 객실 가동률을 높이고 직원을 충원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언제 또 악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감염이 확산해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 손님은 끊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가동을 늘린 객실과 충원한 직원이 고스란히 경영의 부담이 되기에 적정 객실 가동률과 적정 직원 수를 유지하며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고충이야 리조트 사정이고, 덕분에 투숙객들은 푸껫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한적하게 리조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전보다 리조트 숙박요금이 훨씬 더 싸지기도 했다. 항공료가 오르고, PCR 검사비라는 추가 지출이 발생해 전체 여행비용은 크게 늘었지만, 그나마 위안은 리조트 숙박요금이 떨어졌다는 것. 같은 비용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에 묵을 수 있다. 푸껫 카말라 해변의 최고급 리조트인 인터콘티넨털 푸껫리조트의 숙박요금은 1박에 250달러(29만9000원) 남짓. 마이카오 해변의 리조트 살라 푸껫의 근사한 풀빌라도 비슷한 가격에 묵을 수 있다. 카론 해변의 센타라그랜드비치리조트는 1박에 100달러(12만 원) 수준이다. 이즈음이 연중 가장 날씨가 좋은 푸껫의 성수기라는 걸 감안한다면, 쉽게 볼 수 없었던 ‘좋은’ 가격이다. 체크인·체크아웃 시간도 과거에 비해 유연한 편이다.

관광객으로 가득했던 이름난 관광지들은 한결 여유롭다. 패키지 여행자들로 북적거렸던 산호섬은 텅 비다시피 했다. 산호섬에는 여러 해변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축에 속하는 카홍 해변 백사장에 수백 개가 넘는 비치의자를 놓아뒀지만, 관광객이 서른 명이나 될까 싶었다. 한적하다 못해 썰렁할 지경이다. 레스토랑 운영을 겸하며 해변을 관리하는 듯한 주인에게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적해서도 그렇지만, 지금 푸껫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018년 6월부터 3년 6개월 동안 환경 보호를 위해 엄격하게 폐쇄됐다가 지난 1일 개방한 피피레섬의 마야베이 때문이다. 눈부신 바다색을 가진 마야베이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비치’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곳. 사전에 방문 신청을 해야 하며, 하루 관광객 수는 4125여 명으로 제한되고 한 번에 375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


# 경건한 아름다움…사멧낭시

여기다 또 한 곳, 푸껫 북쪽 팡아만의 기막힌 경관을 보여주는 자연 전망대 ‘사멧낭시’를 보탠다. 사멧낭시는 바다 위에 석회암 특유의 둥글둥글한 형상으로 떠 있는 섬을 멀찌감치서 내려다보는 언덕이다. 일출 무렵의 풍경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감동적인데, 아직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붐비지 않는다. 언덕 아래에 주차장이 있고, 거기서 돈을 받고 관광객을 태워주는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비포장 길을 따라 1㎞쯤 올라가면 사멧낭시다.

사멧낭시에 오르면 저 멀리 발아래로 먹을 찍어 그린 것 같은 섬이 떠 있다. 사멧낭시의 전설에서 섬은 젊은 스님으로 의인화된다. 섬을 마주 보는 자리에 있는 사멧낭시는 보살, 그러니까 여자다. 스님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너려고 치맛단을 걷어 올린 보살의 형상이 사멧낭시라는 얘기다.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곳이라 그럴까, 아니면 팬데믹 때문일까. 사멧낭시에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태국인이 훨씬 더 많다. 태국인에게 “사멧낭시의 스님과 보살 전설이 사랑 얘기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얘기를 듣고 봐서 그럴까, 아침 볕이 쏟아지는 사멧낭시 일대의 경관이 종교적 장엄함으로 빛나는 듯했다.

다시 문을 연 마야베이, 새로 발견한 사멧낭시. 여행이 허락된 뒤에 푸껫을 여행목적지로 권하고 싶은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불편했던 건 푸껫의 최대 유흥가인 파통 해변의 방라로드 풍경이다. 방라로드에서는 경찰의 안내에도 관광객 중 상당수가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했다. 열에 아홉은 서양인 관광객이다. 나이트클럽과 바마다 마스크를 벗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고 있다. 떠들썩하게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다른 때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팬데믹을 경험한 뒤에는 이런 풍경을 보는 마음과 생각이 다르다. 늘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태국인들이나 다른 관광객들은 방라로드를 멀찌감치 피해간다. 팬데믹에도 이곳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은 무책임한 관광객들의 고립된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껫 파통 해변의 방라로드. 유흥업소마다 마스크를 벗고 밀집해 앉아 술을 마시는 서양인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 팬데믹이 바꾼 여행에 대한 생각

팬데믹은 여행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로소 여행의 욕망과 소비 너머의 ‘책임’을 생각하게 됐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해 ‘선한 일’을 택하거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여행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다. 다시 푸껫에 가게 된다면, 과거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일들을 찾아보지 않을까.

푸껫에서 코로나 직전까지 ‘코끼리 케어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코끼리 트레킹을 하거나 코끼리 쇼를 보는 대신 은퇴했거나 다친 코끼리와 함께 놀아주고 먹이도 주고, 목욕도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과거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인기 있었던 코끼리 트레킹은 이국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별생각 없이 선택했던 투어다.

코끼리 트레킹은 밧줄과 사슬 그리고 매질과 야만적인 학대로 만들어진다. 관광객을 태운 조련사는 코끼리를 조종하기 위해 ‘불훅(Bullhook)’이란 쇠갈고리로 코끼리의 정수리를 쉴 새 없이 찍어댄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과정의 학대는 더 참혹하다. 대표적인 것이 두세 살쯤 된 코끼리를 어미와 강제로 떨어뜨려 놓고 가혹한 훈련과 매질을 반복하는 ‘파잔’이란 의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육사들은 코끼리의 야생성을 없애고 복종을 가르친다. 순전히 관광 수입을 위해서다.

이런 트레킹이나 쇼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코끼리 케어 프로그램은, 나이 들어 은퇴했거나 다친 코끼리를 시설에서 보호하면서 코끼리와 함께 진흙목욕을 하고 먹이도 주고,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다. 비용은 코끼리 트레킹 요금의 2∼3배가 넘는데 수입의 일부를 코끼리 보호 프로그램에 기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 보니 최근 푸껫 곳곳에 비슷한 시설이 늘었다.

문제는 실제 코끼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와 달리 동물 보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곳들도 있다는 것이다. 윤리를 가장해 실제로는 철창에 가두고, 매질하며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턴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도 관광객을 태우거나 쇼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는 옹호론도 있다. 사람마다 의견이 엇갈리는 건 동물 보호에 대한 기준이나 감정이입의 정도, 폭력에 대한 민감도가 저마다 다른 탓도 있겠다.


# 여행이, 더 나은 일이 될 수 있을까

▲ 카오프라테우 국립공원의 재활센터에서 철창 너머로 마주친 긴팔원숭이. 이곳에서는 포획돼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 등을 하다가 구출된 긴팔원숭이를 보호하고 있다.


푸껫 북동쪽에 카오프라테우 국립공원이 있다. 특별한 경관이나 지형 때문이 아니라 울창한 열대림에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방패폭포다. 사실 폭포는 시시하다. 규모도 크지 않고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폭포 바로 아래서 큰 뱀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곳을 추천하는 건 폭포로 이어지는 열대림 입구에 ‘긴팔원숭이 재활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긴팔원숭이 재활센터는 태국의 비정부기구(NGO)가 운영한다.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는 건 생포돼 구경거리로 전락하거나 구걸 따위를 하는 데 동원됐던 긴팔원숭이들이다. 십중팔구는 열악한 환경에서 병에 걸리거나 다친 채 발견된 원숭이들이다. 긴팔원숭이들은 이곳에서 치료와 보호를 받으면서 야생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응훈련을 한다.

재활센터에서는 긴팔원숭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함께 놀 수 없다. 심지어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 천막으로 반쯤 덮인 철창 안에 있는 긴팔원숭이를 숨죽이며 먼발치서 구경하는 게 고작이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원숭이를 본다기보다 원숭이가 사람을 본다. 긴팔원숭이들은 경계심이 유난히 강하다. 열댓 마리 긴팔원숭이의 이름과 이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적어놨는데, 무자비한 학대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들의 경계심이 이해가 된다.

이곳에서 6장짜리 사진엽서를 100밧(약 3600원)에 사면 사흘 동안 긴팔원숭이 한 마리를 먹이는 데 드는 돈을 댈 수 있다. 250밧(8900원)짜리 티셔츠 한 장을 사면 일주일 동안 긴팔원숭이를 먹일 수 있다. 1800밧(6만4000원)을 내면 ‘입양’이란 지위를 주는데, 4개월 동안 긴팔원숭이 한 마리의 치료비용을 대는 셈이다.

코끼리는 크기가 커서, 원숭이는 인간과 닮아서 그나마 보살핌을 받는다. 다른 동물보다 유독 감정이입이 잘되는 덕이다. 그러나 공감해야 할 것이 코끼리와 원숭이뿐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여행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이나 학대를 안겨주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 여행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긴 고통 속에서 우리가 깨닫게 된 사실 중의 하나다.

푸껫을 여행하면서 생각한 건 이런 것들이다. 다시 여행이 시작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이 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이 모두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슬람 공동체 마을 ‘방롱빌리지’를 찾아가 지역주민들과 교감하며 공예품을 함께 만들어보고 파인애플 농장과 고무나무 채취 현장을 방문하고, 코코넛을 따서 주민들과 함께 디저트를 만들어 먹는 로컬여행을 경험했다. 팬데믹 이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단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다면, 앞으로 여행은 ‘좀 더 나은 일’이 되지 않을까.


■ 푸껫에 바다만 있는 건 아니다.

푸껫의 방롱빌리지는 올해로 20년째 관광객 대상의 로컬투어를 해왔다.보통 반나절짜리 투어인데, 파인애플을 수확하고, 고무를 채취하고, 코코넛으로 디저트를 만들어 먹는다. 배 타고 나가서 썰물의 바다를 걷는 체험도 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알게 된 두 가지 사실. ‘파인애플은 1년 2개월을 자라야 수확하는데 한 나무에 딱 하나의 열매만 열린다.’ ‘고무나무는 심은 지 6년 만에 고무를 채취할 수 있다.’


푸껫(태국)=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22년 1월 13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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