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내가 원하던 것을 마음대로 그려 볼 수 있는 캔버스와 같았습니다. 학교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짜는 일은 며칠간 밤을 새워도 재미있었습니다.” 입시위주의 획일적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던 18세의 한 컴퓨터 천재가 어엿한 소프트웨어사 사장으로 변신, 세계 곳곳의 업체로부터 구매 제의를 받고 있는 제품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 2월 대구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한 李相協(이상협)군. 보름전 화이트미디어사를 설립한 李군은 1년여 동안 개발한 ‘칵테일97’로 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4월상을 수상,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李군의 이번 정보통신부장관 대상 수상은 벌써 세번째. 95년 전국 PC경진대회와 96년 전국 소프트웨어 작품 공모대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칵테일97’은 비디오와 사진 각종 음향을 CD롬 등에 담아주는 멀티미디어 저작프로그램. 현재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파워포인트, 매크로미디어의 디렉터, 어시메트리스의 툴북 등이 1백만∼2백만원대에 팔리는 데 비해 이 제품 가격은 7만9천2백원이다.

값이 싸다고 제품을 얕보면 오산이다. 외국사 제품의 기능을 그대로 제공하면서도 이들 제품보다 훨씬 정교한 색상을 구현하고 1백만가지 이상의 배경효과를 낼 수 있어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지에서 수출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이같은 성공에는 현행 교육제도 안에서는 살리기 어려웠던 자신의 장점을 끝까지 발전시킨 李군 본인의 노력과 그런 자식을 믿어준 부모의 이해와 지원이 큰몫을 했다.

국민학교 4학년때 마련한 8비트짜리 PC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공부와 담을 쌓고 컴퓨터에만 몰두했던 李군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국규모의 각종 컴퓨터 경진대회를 휩쓸었다. 컴퓨터앞에 앉아 있느라 결석을 밥먹듯이 했던 그에게 어쩌다 참석하는 수업시간은 컴퓨터와 함께 할 밤을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이같은 증상은 더욱 심해져 李군은 아예 학교가기를 거부했다. 어머니 李賢珠(이현주.43)씨는 “상협이가 어려서부터 유별나 제도교육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니까 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설명한다. 지능지수 1백45로 마음먹고 공부했을 때는 전교 4등이었던 성적이 고3때 반에서 46등으로 떨어지자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아버지 李大洙(이대수.48·한일물산대표)씨도 컴퓨터를 부수며 공부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컴퓨터와 살고 컴퓨터와 죽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한 부모는 ‘자식을 망친다’는 주위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李군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3때는 3개월밖에 학교에 가지 않았고 수능시험도 보지 않은 李군은 그간의 수상경력을 인정받아 9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특례입학한다.

“KAIST라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병역특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더 큰 매력”이라고 말하는 李군은 “창의성의 발현을 꺾는 입시교육 아래서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같은 소프트웨어 천재들이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창업과정에서 벤처자금을 얻으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가는 곳마다 듣는 대답은 고등학생한테는 투자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며 “아이디어와 프로그램 자체를 평가해 투자하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아직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회사운영에 애로가 많다”는 李군은 “앞으로 멀티미디어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 화이트미디어사를 세계적인 소프트웨어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02-718-8322 <金修眞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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