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이 인체에 해롭다고 하는데 정말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 건영아파트 604동 103호에 사는 주부 김명옥(金明玉.39)씨는 생전 가지 않던 병원을 요즘 가끔 찾는다. 96년 이곳으로 이사온 후 평소 건강하던 김씨의 목에 갑자기 갑상선 종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후 김씨는 머리위로 지나가는 고압선만 쳐다보면 왠지 기분이 찜찜하고 불안해진다. 갑상선 종양이 혹시 고압선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있다.

김씨의 더 큰 걱정거리는 아이들 건강문제. 불곡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 두 아들이 고압선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불곡초등학교 역시 고압선과 인접해 아이들이 하루 24시간 전자파에 노출돼 있다. 김씨는 고압선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진 방에 아이들을 재운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34만5천볼트 고압선이 머리위로 지나가는 바람에 성남시 구미동 1만2천여가구 주민들은 몇년째 심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내내 전자파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혹시 발생할 재난으로 높이 80m 철탑이 아파트를 덮치기라도 할 경우 끔찍한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과천에서 안성으로 연결되는 신성남 송전선로인 이 고압선은 동아아파트와 라이프아파트 등 아파트 밀집지역을 아파트와 최단 이격거리 13m로 통과하고 있다.

이곳에 송전탑이 세워진 것은 93년 7월. 분당신도시가 들어서면서 한국토지공사의 요구로 인근 서현지역에 있던 송전선로를 구미동으로 이전설치하게 됐다.

한국전력공사는 구미동 2.8㎞ 구간(철탑 6기)에 34만5천볼트 2도체 2회선 송전선로를 이설한후 아파트입주가 시작되기전인 95년 1월 송전선로를 산업자원부의 승인 없이 4도체 2회선으로 무단증설하고 구간거리도 구미동 골안사 입구에서부터 경부고속도로 금곡인터체인지까지 3.1㎞(철탑 10기)로 늘리는 공사를 산업자원부 승인도 없이 불법으로 강행했다.

이에 따라 구미동 주민들은 95년 ‘특고압 송전철탑 철거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전자파 문제 ▲재난시 송전철탑 붕괴와 감전 등에 의한 주민피해 ▲서울공항과 인접한 문제점등을 들어 한전과 토지공사에 송전선로를 지중매설할 것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갔다. 성남시의회도 지난 2월 ‘분당 고압송전선 지중화를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전이만 의원)를 구성,관계부처를 방문하는 등 7월까지 특위활동을 벌이며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책임져야할 한전과 토지공사는 이미 체결된 ‘합의각서’를 이행하지 않는 등 팔짱만 끼고 있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92년 9월 토지공사는 송전선로 이설에 따른 민원 유발이 없도록 사전에 충분한 홍보와 예방대책을 강구하고 민원사항이 발생할 경우 이를 처리해야 한다고 한전과 합의각서까지 체결했으나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회피하기에 급급해하고 있이다.

또 한전측은 송전선로를 지중화하기 위해서는 2천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역시 ‘엉터리로 산정했다’고 주민들은 비난했다. 성남시가 삼성건설 등 4개 업체에 의뢰, 구미동 송전탑 지중화에 따른 사업비를 조사한 결과, ▲삼성건설 7백65억원 ▲LG건설 7백76억원 ▲현대건설 1천3백24억원 ▲대한전선 1천3백36억원 등으로 나타나 한전측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송전철탑 지중화 문제가 진척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최근 주민 1만1백24명의 서명을 받아 지중화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토지공사 분당사업소의 권익만 과장은 “송전탑의 소유·관리주체인 한전에서 송전선로를 지중화여부와 소요 사업비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안이 나와야 지원가능한 범위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전 송전공사부 이준한 과장은 “국회에 계류중인 청원심사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심의결과에 따라 해결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그러나 지중화는 사업비와 사업기간이 과다하게 소요되고 지금 선로에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수도권팀=백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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