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확인 비행물체(UFO)처럼 우리 곁에 날아왔다. 너무도 색다른 유형의 스타일과 모습이 그토록 낯설면서도 동시에 매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사실이다.그가 만든 앨범의 제목도 ‘나와 함께 내 별로 가자(Let’s go to my star:그녀의 앨범 제목)’고 은근하게 속삭이고 있다.아니다.그는 타임머신을 타고 불시착한 듯한 느낌도 준다.그가 보여주는 패션, 음악과 춤 또한 과거의 것인지 미래의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첨단의 테크노 음악에 국악풍의 아쟁과 꽹과리 소리가 가미되었고(그 유명한 음악 ‘와’에는 아쟁 연주, ‘GX 339-4’에는 꽹과리 소리를 넣었다), 리듬과 속도에 따라 움직이는 사이보그적 춤에 태극권법의 동작, 부채와 도포자락의 너풀거림을 접합시켰다.
누군가는 80년 광주에서 잃어버린, ‘꽃잎’ 같은 그 소녀가 맞다고 주장했다(사실 그는 96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에 깜짝 발탁됐던 주인공이다). 어쨌거나 그가 발산하는 매력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섰고,금기를 무시한 전략은 현재까지는 주효한 듯 보인다.
과연 여릿한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파워는 섬뜩하리만큼 강력했다. 목소리는 김건모와 비견할만하다든지 문화적 충격으로 보자면 ‘제2의 서태지’가 아니겠느냐고 떠드는 평론가들의 말도 과장이 아니다. 10대 영화배우에서 가수로 전업한 뒤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N세대의 새로운 우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정현은 이렇게 말한다.“나를 규정하지 말아달라. 나는 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남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하고 싶은대로 하는, 오직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는 충분히 N세대의 전형이다.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이미지는 무엇이었나요?
“외계인 이미지였어요. 지구인들에게 ‘나의 별’로 같이 떠나자고 하는 거죠.”
-그 별에서도 제일 중요한 문제는 다소 통속적인 ‘사랑과 배신’인가 봐요. ‘와’나 ‘바꿔’의 가사, “이미 난 네 여자야” “사랑했으니 책임져” 등은 다소 구태의연해요. 멜로디와 리듬은 최첨단 테크노인데, 가사는 트로트, 뭔가 어색하지 않나요? “담고 싶은 내용이라면 뭐든 담는 거죠. ‘와’나 ‘바꿔’에는 사랑 메시지를 담은 거구요. 가사는 마음에 들어요. 중요한 건 리얼리티인데,그 가사는 리얼하다고 봐요. 그리고 타이틀 곡인 경우 쉬운 가사가 좋죠. ‘GX 339-4’ ‘I Love X’ 등은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았죠.”
-‘와’같은 곡은 테크노를 흉내낸 댄스음악일 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대중적인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죠.제가 테크노를 접한 건 4년 전 유럽에서였죠. 유럽의 경우 테크노가 처음엔 유행처럼 왔다가 몇년 뒤에는 정착이 돼서 클럽마다 테크노 음악이 나오고 있고, 미국도 비슷해요. 제가 음반을 준비할 때쯤 우리나라에도 테크노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더군요. 그게 음악 장르로 자리잡으려면 좀더 대중적이고 쉬운 곡부터 들려줘야겠다고 판단했어요.”
-쉽다고 좋은 건가요?
“마니아들 입장에선 비판적이겠지요. 저는 인도 음악, 쿠바 록, 동유럽 음악, 아프리카 음악도 즐겨 듣지만 외국에 나가야 접할 수 있죠. 마니아들은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듣는다거나 해서 여러 음악을 접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90%의 사람은 그러지 못해요.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죠.”
-테크노의 전도사 역할을 자청했군요.
“원래 처음 녹음할 때는 오리지널 테크노 음악이었는데, 모니터 결과 사람들이 못 받아들인다는 걸 알았죠.대부분 반응이 ‘이게 뭐야?’하더군요.저도 사실 이번 음반에 만족은 못해요. 50점짜리 음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GX 339-4’, ‘Ca tient moi’ 같은 곡은 제 색깔이 분명한 곡이어서 마음에 들어요.”
-음반 판매량도 40만장이 넘었고, 가수로서도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드라마·광고·DJ까지 손을 대는군요.
“다 열심히 하고 싶어요.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제 욕구 충족 때문이겠죠.”
-한달만에 PCS016·태평양화학·롯데제과 등의 CF에 출연, 광고 개런티만 5억원 넘게 받았다던데.
“연예인을 돈 벌기 위해서 하지는 않죠. 돈과 상관 없어요. 그냥 좋아서 하는 거죠.당신도 엄마 좋아하시죠? 제가 엄마 좋아하는 것처럼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스타가 된 느낌이 어때요?
“‘난 스타다’는 생각 안 해요. 제게 스타라는 자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죠.”
-섹시하다는 말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그 문제를 여성의 성상품화 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전혀 없어요. 제가 보여주고 싶은 스타일의, 입고 싶은 옷을 입을 뿐이죠. 상품화라는 말,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에요. 페미니즘이요? 그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죠.다만 제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만 생각해요.”
-그동안 꽤 많은 구설수에 올랐는데, 신문·방송·PC통신에 대한 불만은 없나요?
“언론에서 잘못 하면 연예인들은 상처 많이 받는 건 사실이에요. 연예인을 도구로 생각하거나 그들을 이용해 신문을 판다거나 하는 것,나쁜 일이죠. 하지만 신경 안 써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새 뮤직 비디오를 구상중이에요. 한 순진한 여자가 바람둥이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후, 그 남자를 죽이는 내용인데, 청순 가련하고 착한 여자와 도발적이고 무서운 악녀, 그 양면성을 연기해 보려구요. 2집은 5월쯤 낼 예정인데, 제가 만든 곡을 더 많이 넣을 생각이에요. 테크노·R&B·힙합 다 좋아하지만, 장르를 다 떠나서 그때그때 제가 하고 싶은 거 할래요. 어느 하나를 고집하고 싶진 않아요. 대중성보다는 음악성을 향상시키는 데 더 신경 쓸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