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와 열정의 가수 윤복희(55)씨가 50년 무대인생을 결산하는 공연 ‘꾼’을 준비한다. 반세기 동안 배우로, 가수로, 패션리더로 살아온 윤씨는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도록 축복해준 팬들에게 감사한다. 아쉽지만 이 공연이 나의 가수 은퇴공연”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여섯살 때 ‘부길부길쇼’를 이끌던 부친 윤부길씨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처음 섰다. 이후 미8군 무대 등에서 인정받았고, 1960년 내한한 재즈거장 루이 암스트롱과 공연, 큰 주목을 받는다.

^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76년 귀국해 뮤지컬 배우로서 40여편의 작품에 출연, ‘한국 뮤지컬의 대모’라는 영예로운 호칭도 얻었다. ‘딴따라’라는 호칭이 가장 좋다는 윤씨는 스스로를 “사랑과 노래 없으면 못 사는 여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주 프랑스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비견되곤 한다. 가수 유주용씨에 이어 남진씨와의 결혼 등 거리낌없는 사생활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윤씨는 “이제는 제대로 된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전했다. 이번 ‘꾼’ 공연은 9월 4,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후 부산·광주 등 지방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멋 모르는 꼬마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50년 동안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금까지 지켜봐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무대를 준비했다.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가수활동은 은퇴하려 한다. 이후에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매력이 느껴지는 뮤지컬 무대에 전념할 것이다.”

―이번 ‘꾼’ 공연은 어떤 내용인가.

“50년 결산이니 압축적으로 많은 걸 보여 드리고 싶다. 1부는 ‘웃는 얼굴 다정해도’ ‘여러분’ 등 히트곡과 스탠더드 팝 음악을 재즈스타일로 편곡해 소박하게 부를 예정이다. 2부는 내가 출연했던 ‘빠담 빠담 빠담’ 같은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3부는 오케스트라 반주로 고스펠 노래를 부를 생각이다.”

―반세기 동안 가수·연극배우·뮤지컬 배우를 해왔다. 어떤 것에 가장 애착을 느끼는가.

“나는 가무극단에서 노래·춤·연기를 함께 배우고 자란 사람이라 그 어느 한쪽만 하면 불편하다. 나에게 춤·노래·연기는 하나다. 3박자를 겸비해야 제대로 된 광대이자 ‘딴따라 연예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합적인 호칭이자 예술인의 끓는 피가 느껴지는 ‘광대’나 ‘딴따라’라는 말이 훨씬 편하고 좋다. 내가 노래 부를 때 제스처가 지나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연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사실 최근에는 가수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한마디로 방송국 간부들과 정부의 윗사람들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었다. 연예인을 쉽게 생각하고 무조건 정부행사에 부르는 게 싫어서 버텼다. 꾼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도 가사를 바꾸라는 간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마이크를 던지고 나왔더니 그 이후엔 부르지 않더라.”

―올 하반기에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투여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에서 장기공연 될 예정이다. 토착 뮤지컬인으로서 걱정이 되진 않는가.

“오히려 선진 뮤지컬 시스템에서 많은 것을 배우리라 본다. 뮤지컬 하나 올리는 데 미국에서는 3년 정도 준비하는 데 우린 3개월 안에 모든 것을 끝내는 게 관행이다. 그러니 날림 공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쉬운 것은, 로열티를 주고 원형 그대로 수입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해석 없이 외국 뮤지컬을 그냥 그대로 공연하면 우리 뮤지컬의 창작력은 고사한다.”

―‘요즘 문화예술들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폭력적이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마전, 한 친구가 요즘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 아스피린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사회를 반영하는 게 예술이지만 오늘의 대중문화는 사회의 잔혹하고 끔찍한 면들을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시대가 골치 아프면 예술은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한다. 똑같이 머리가 아파서는 안된다. 예술가들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1967년 무릎위 20㎝ 짜리 미니스커트를 입고 미국에서 귀국하던 장면은 우리 풍속사의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귀국할 때 그런 사회적 신드롬을 기대한 것인가.

“그냥 애인(전 남편이자 가수였던 유주용)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은 것이다. 결국 그 사람하고 결혼했으니까 성공한 셈이다. 사람들이 나를 미국 문화의 상징처럼 보는데 사실 난 커피도 못 마시고, 겨울이면 버선 신고 사는 토종 한국인이다.”

―개그맨 김영철씨가 윤복희씨가 노래하는 모습을 과장되게 묘사해 인기를 끌었다.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TV를 잘 안 봐서 몰랐는데, 어느날 그 후배가 직접 저의 분장실에 와서 인사하며 흉내내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저는 우습기보다는 ‘내가 저렇게 혐오스럽게 노래하나’라고 생각했다. 코미디니깐 약간 ‘오버’하는 것이고, 어쨌든 후배니깐 귀엽게 생각됐다. 작년에 KBS 2TV ‘개그 콘서트’에 직접 나가 김영철씨랑 ‘여러분’을 함께 불렀더니 관객들이 포복절도했다.”

―최근 뮤지컬에서 노래할 때 랩을 해본 적은 없는지.

“어렸을 때 엄청 빠르게 가사를 읊는 ‘장타령’을 아버지에게서 배운 적이 있다. 그게 한국적 랩이라고 본다. 요즘은 해본 적 없다. 후배 가수들에게 하고픈 말은 립싱크 좀 그만 하라는 것이다. 숨이 차서 춤추며 노래 못한다는 이야긴 그만큼 훈련이 안되었다는 말이고, 영혼이 담긴 노래를 관객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모든 뮤지컬 가수들이 춤추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빤히 보고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

―9월 공연을 끝낸 뒤 계획은.

“내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6개월 정도 무대의상 전문 교육기관에서 특수 무대의상을 공부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무대의상을 직접 만들어 입고 공연했기에 누구보다도 무대 의상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특수 무대의상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 기간을 제외하곤 매년 그래왔듯이 뮤지컬 무대에 설 것이다. 더 장기적으로는 뮤지컬의 제작자와 아트디렉터를 할 계획이다.”

/우승현 기자 noyoma@munhwa.co.kr

관련기사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