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공동연구 손호철-조희연교수 좌담
“대안을 꿈꾸지 않는 사회는 동력을 잃은 사회다. 과연 이 시대의 대안들이 온당한 경쟁의 구조에서 논의되고 있는가.”
일단의 학자들이 4년전 이 질문을 던졌다.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동연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재인식’ 프로젝트의 화두다. 현대사가 산업화, 민주화, 시민사회 확장이라는 지향점 속에서 진행돼 왔다면, ‘지금쯤’ 새로운 발전 동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취지. 이들은 경제(자본주의), 정치(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분야로 나눠 연구성과를 2년마다 책으로 엮어내고 있는데, 최근 이들의 두번째 연구성과로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과 민주주의 동학’을 펴냈다.
이 책은 현대사의 전개과정을 ‘담론(談論·discourses)’분석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까지 사회변동사를 각 계층·계급·세력이 벌인 담론 경쟁의 구조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과거사에 대한 가치평가에 있지 않다. 대안사회로 진전하기 위해 각 정치·사회 세력들간에 발전적인 경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가 관심사다.
세계화와 반세계화, 신자유주의 논쟁,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찬반, 대북관을 둘러싼 갈등 등 첨예해진 최근의 사회 논쟁은 바람직한 소통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이 대립의 구도는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을 두고, 공동연구자인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치학)와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사회학)가 마주앉았다. 좌담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강대 손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조희연〓왜 이 시기에 담론분석이 유효한지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담론은 체계화된 언술(言述)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진 객관적인 ‘지식체계’다. 그것에 동의하는 집단들이 해석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현대사를 지배층과 저항층간에 벌어진 투쟁의 과정으로 보면, 이는 담론의 각축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이승만 정부는 반공주의를 지배담론으로 내세워 통제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개발주의 담론으로 혁신시키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설파해 국민적 동의를 구했지만 저항에 부딪친다. 쉽게 말하자면 박정희는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고 했는데, ‘그러면, 밥만 먹고 사느냐’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데올로기 분석도 하나의 담론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허구성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그것이 담론 분석과 다른 점이다.
손호철〓이데올로기 비판에서는 주로 무엇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이뤄지지만 담론 분석은 왜 그런 이데올로기가 생산·유통·재생산되는지 과정을 분석한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치면,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고 실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80년대말까지 는 반공-개발주의 담론이 지배담론으로, 민주주의(혹은 분배주의)가 저항담론으로 대립의 축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87년 이후 이 대립축에 포섭돼 있던 자유주의가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탈냉전적 시장 자유주의(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시민단체), 수구냉전적 보수(통칭 보수단체), 개혁적 자유주의(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3자구도로 본다. 다시 말해 담론을 생산·유통하는 주체가 보수·자유·진보로 분화한 것이다.
조희연〓그것이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 불어온 담론지형의 최대변화다. 다층화가 일어난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흔히 ‘보·혁구도’라고 하는데, 적확하지 않은 말이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를 둘러싼 거시담론들이 형성됐지만 하부에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생태주의, 페미니즘, 국가주의 등 다양한 하부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성향도 보수단체의 세력화부터 사회민주주의, 급진적 좌파, 자유주의 등 다층적이다. 종합해보면 자유주의가 독자지형을 갖게 된 것이다. 아마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이 이 자유주의에 부합한 인물일 것이다.
손호철〓담론의 분화는 곧 세력의 분화를 의미한다. 그 특징을 보면, 우선 한국 사회가 지배-저항의 획일적인 양자 대립구도에서 삼분 대립구도로 변화했다. 또한 거대단일담론이 해체됐다. 그것이 다층화의 내용일 것이다. 성(性)의 문제에서 보면 진보라는 민주노총이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수구적 보수세력의 정치화도 주목해야할 분화 현상이다. 그들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전투적인 저항주의로 변신했다. 인권은 과거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던 것이지만, 지금은 남북문제를 겨냥한 수구의 담론이 돼버렸다. 언론자유 역시 보수적 언론의 활용빈도가 더 많다. 인공기 소각문제에서는 보수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장세우고 있다.
조희연〓지금의 거대담론은 세계화이다. 현 지배블록(세력)은 세계화 담론을 새롭게 통합하는 과정에 있다. 처음 정식화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부는 이를 실질적으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이들의 세계화 담론은 과거에 자신들이 대항했던 근대화(개발주의)담론을 연장하는 ‘제2의 근대화론’이다. 보수적 담론에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결합한 것이다. 세계화 문제를 어떻게 쟁취하느냐에 따라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잡게 돼 있는데, 김영삼·김대중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담론으로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이다.
손호철〓지금의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세계화를 이어가고 있다. 키워드는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와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과거 근대화, 개발독재가 지금은 국제경쟁력 독재가 된 것이다. 여기에 저항하는 담론은 반세계화와 대항세계화가 형성되고 있다. 반세계화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국민국가적인 방어를 의미하고, 대항 세계화는 과감하게 그 전선을 넘어서서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를 하자는 것이다. ‘민족은 없다’거나 ‘국사해체’ 등이 그런 흐름일 것이다.
조희연〓노무현 대통령은 담론 생산자로서, 예전의 권위적 집권 형태나 언술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행위는 있지만, 탈권위적 담론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
손호철〓담론과 토대가 불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일례로, 대선 후보때 담론은 “반미면 어떠냐”고 했는데, 지금은 “해보니 안되더라”는 불일치였다. 지금은 담론형성이 실패한 탓을 언론 시스템에 돌리고 있다. 국정 홍보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내용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의 실패다.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개혁적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타협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경제 정책, 노사관계 정책 등이 그랬다. 그러면서 언론에 대해서만 비타협적이다. 그러면 정부의 담론에 동의하는 설득의 커뮤니티가 생기지 않는다. 담론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
조희연〓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담론의 생산·유통과 경쟁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담론적인 의사소통이 성숙해야만 대안사회로 가는 길이 보인다.
손호철〓보충한다면, 담론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인공기 소각’이 잘됐다, 잘못됐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지를 보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건강한 담론상황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고, 주요 의제설정의 기능을 보수적인 언론들이 갖고 있는 불공정 경쟁상태라고 봐야 한다. 담론구조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그런 조건에서 다양한 정치노선들이 국민 설득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정리〓오승훈기자 oshun@munhwa.co.kr
“대안을 꿈꾸지 않는 사회는 동력을 잃은 사회다. 과연 이 시대의 대안들이 온당한 경쟁의 구조에서 논의되고 있는가.”
일단의 학자들이 4년전 이 질문을 던졌다.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동연구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재인식’ 프로젝트의 화두다. 현대사가 산업화, 민주화, 시민사회 확장이라는 지향점 속에서 진행돼 왔다면, ‘지금쯤’ 새로운 발전 동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취지. 이들은 경제(자본주의), 정치(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분야로 나눠 연구성과를 2년마다 책으로 엮어내고 있는데, 최근 이들의 두번째 연구성과로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과 민주주의 동학’을 펴냈다.
이 책은 현대사의 전개과정을 ‘담론(談論·discourses)’분석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까지 사회변동사를 각 계층·계급·세력이 벌인 담론 경쟁의 구조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과거사에 대한 가치평가에 있지 않다. 대안사회로 진전하기 위해 각 정치·사회 세력들간에 발전적인 경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가 관심사다.
세계화와 반세계화, 신자유주의 논쟁,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찬반, 대북관을 둘러싼 갈등 등 첨예해진 최근의 사회 논쟁은 바람직한 소통구조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이 대립의 구도는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물음을 두고, 공동연구자인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치학)와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사회학)가 마주앉았다. 좌담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강대 손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조희연〓왜 이 시기에 담론분석이 유효한지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담론은 체계화된 언술(言述)로 논리와 설득력을 가진 객관적인 ‘지식체계’다. 그것에 동의하는 집단들이 해석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현대사를 지배층과 저항층간에 벌어진 투쟁의 과정으로 보면, 이는 담론의 각축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이승만 정부는 반공주의를 지배담론으로 내세워 통제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개발주의 담론으로 혁신시키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설파해 국민적 동의를 구했지만 저항에 부딪친다. 쉽게 말하자면 박정희는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고 했는데, ‘그러면, 밥만 먹고 사느냐’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데올로기 분석도 하나의 담론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허구성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그것이 담론 분석과 다른 점이다.
손호철〓이데올로기 비판에서는 주로 무엇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이뤄지지만 담론 분석은 왜 그런 이데올로기가 생산·유통·재생산되는지 과정을 분석한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치면,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고 실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80년대말까지 는 반공-개발주의 담론이 지배담론으로, 민주주의(혹은 분배주의)가 저항담론으로 대립의 축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87년 이후 이 대립축에 포섭돼 있던 자유주의가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탈냉전적 시장 자유주의(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시민단체), 수구냉전적 보수(통칭 보수단체), 개혁적 자유주의(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3자구도로 본다. 다시 말해 담론을 생산·유통하는 주체가 보수·자유·진보로 분화한 것이다.
조희연〓그것이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 불어온 담론지형의 최대변화다. 다층화가 일어난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흔히 ‘보·혁구도’라고 하는데, 적확하지 않은 말이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를 둘러싼 거시담론들이 형성됐지만 하부에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생태주의, 페미니즘, 국가주의 등 다양한 하부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치성향도 보수단체의 세력화부터 사회민주주의, 급진적 좌파, 자유주의 등 다층적이다. 종합해보면 자유주의가 독자지형을 갖게 된 것이다. 아마 최장집(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이 이 자유주의에 부합한 인물일 것이다.
손호철〓담론의 분화는 곧 세력의 분화를 의미한다. 그 특징을 보면, 우선 한국 사회가 지배-저항의 획일적인 양자 대립구도에서 삼분 대립구도로 변화했다. 또한 거대단일담론이 해체됐다. 그것이 다층화의 내용일 것이다. 성(性)의 문제에서 보면 진보라는 민주노총이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수구적 보수세력의 정치화도 주목해야할 분화 현상이다. 그들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전투적인 저항주의로 변신했다. 인권은 과거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던 것이지만, 지금은 남북문제를 겨냥한 수구의 담론이 돼버렸다. 언론자유 역시 보수적 언론의 활용빈도가 더 많다. 인공기 소각문제에서는 보수단체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장세우고 있다.
조희연〓지금의 거대담론은 세계화이다. 현 지배블록(세력)은 세계화 담론을 새롭게 통합하는 과정에 있다. 처음 정식화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부는 이를 실질적으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이들의 세계화 담론은 과거에 자신들이 대항했던 근대화(개발주의)담론을 연장하는 ‘제2의 근대화론’이다. 보수적 담론에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결합한 것이다. 세계화 문제를 어떻게 쟁취하느냐에 따라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잡게 돼 있는데, 김영삼·김대중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담론으로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이다.
손호철〓지금의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세계화를 이어가고 있다. 키워드는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와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과거 근대화, 개발독재가 지금은 국제경쟁력 독재가 된 것이다. 여기에 저항하는 담론은 반세계화와 대항세계화가 형성되고 있다. 반세계화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국민국가적인 방어를 의미하고, 대항 세계화는 과감하게 그 전선을 넘어서서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를 하자는 것이다. ‘민족은 없다’거나 ‘국사해체’ 등이 그런 흐름일 것이다.
조희연〓노무현 대통령은 담론 생산자로서, 예전의 권위적 집권 형태나 언술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행위는 있지만, 탈권위적 담론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
손호철〓담론과 토대가 불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일례로, 대선 후보때 담론은 “반미면 어떠냐”고 했는데, 지금은 “해보니 안되더라”는 불일치였다. 지금은 담론형성이 실패한 탓을 언론 시스템에 돌리고 있다. 국정 홍보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내용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의 실패다. 노무현 정부는 사실상 개혁적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타협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경제 정책, 노사관계 정책 등이 그랬다. 그러면서 언론에 대해서만 비타협적이다. 그러면 정부의 담론에 동의하는 설득의 커뮤니티가 생기지 않는다. 담론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
조희연〓우리가 주목하는 점은 담론의 생산·유통과 경쟁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담론적인 의사소통이 성숙해야만 대안사회로 가는 길이 보인다.
손호철〓보충한다면, 담론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인공기 소각’이 잘됐다, 잘못됐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지를 보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건강한 담론상황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고, 주요 의제설정의 기능을 보수적인 언론들이 갖고 있는 불공정 경쟁상태라고 봐야 한다. 담론구조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그런 조건에서 다양한 정치노선들이 국민 설득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정리〓오승훈기자 oshun@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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