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재선거가 8일 공시돼 아베 신조(安倍晋三),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아소 다로(麻生太郞) 3인이 입후보했다.

아베는 관방장관, 다니가키는 재무상, 아소는 외무상으로, 압도적인 인기를 뽐내고 있는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현 주요 각료이기 때문에 선거전은 고이즈미 개혁 계승자들간의 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싸움이라고는 해도 세 사람이 각기 이렇다 할 특징있는 정책들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거전은 고조되지 않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세 사람의 주장을 분류하려고 기를 쓰고 있지만, 독자들에게 그 차이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자민당을 부순다’는 기세를 보여줬던 고이즈미가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던 2001년의 총재선거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총재 후보를 둘러싼 자민당 의원들의 움직임이다. 고이즈미 정권은 그 탄생부터 비당원들에 의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원래 당내의 세력 관계-구체적으로는 파벌이 갖고 있는 의원의 수-에 의해 결정되어 온 총재라는 자리가 고이즈미 정권부터는 비당원 여론이라고 하는 새로운 요소에 의해 결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총재선거에서도 그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 사람의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린 20명의 의원들은 파벌이 다들 제각각이다. 그뿐 아니라 여론의 지지와 고이즈미 총리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여겨지는 아베에게 바싹 달라붙는 의원들이 많아 한때는 다니가키와 아소 두사람이 입후보의 최저 요건인 20명의 추천인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을 정도로 의원들은 ‘이기는 말’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 아베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북한의 납치 문제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보인 것과 젊고 신선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지 특별히 그만의 정치수법이나 정치이념이 평가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후보자 사이에 명확한 정책의 차이가 있으면 의원들의 지지 표명이 스스로의 정치 이념의 표명과 연결되지만, 현 시점은 이것도 아닌 상황이어서 승리마에 올라타야 하는 자민당 의원들의 고민은 깊다.

되돌아보면 고이즈미 정치의 독특함은 ‘이권의 당사자로부터 의견을 들어 이것을 조정한다’고 하는 종래의 패턴을 파괴해 이권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논의를 시켜 의사결정을 하게 함으로써 지지율을 높이고 정권 기반을 유지시켜 왔다는 점이다. 우정사업을 지지해 온 사람들-원래 이들이 자민당의 세력 기반을 형성해왔지만-에 대항해 고이즈미 정권은 ‘저항 세력’이라는 레테르를 만들고, 우정 민영화에 반대한 의원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선거 당시 ‘자객’이라고 불리는 대항 후보를 내세워 자민당의 압승을 가져왔다.

또 대중국 외교를 지지해 온 외무성의 관료를 ‘차이나 스쿨’이라고 부르면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한 중국의 항의에 강한 태도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참배를 하지 말라고 진언하는 재계 인사를 “장사와 정치는 별도다”고 비판함으로써 중국을 싫어하는 일반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왔다.

고이즈미 개혁의 후계자는 이러한 정치 수법을 계승하면서도 후보자로서 독자적인 색깔을 내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민당을 부수자’고 했던 고이즈미 정치와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벌써 우정민영화에 반대해 자민당을 탈당한 사람들을 복당시키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총재 후보도 있지만 그 결과, 종래의 자민당-그뿐 아니라, 반(反)고이즈미 입장에 서 있는 제일 야당인 민주당-의 정책과 어디가 다른지 모르게 되어 버리고 만다. 이것이 총재선거 분위기가 고조되지 않는 최대의 원인이다.

이미 아베가 의원표의 70% 이상을 확보하고 있어 1차 투표로 자웅이 가려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아베가 유리하다’는 소문을 증명하고 있는 것도 총재선거 분위기를 식히고 있다. 2001년에는 압도적인 열세를 뒤집은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하는 ‘캐릭터(게임의 주인공)’가 있었지만, 이번 총재선거에는 이 ‘캐릭터’가 빠져 있다. 고이즈미 정권을 낳은 부모의 한 사람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전 총리의 딸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전 외상이 “이번 총재선거에는 흥미가 없다.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일도양단에 잘라버린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당초 고이즈미 정권의 탄생은 자민당 내부의 역학보다는 중선거구제로부터 소선거구제로의 이행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원래 야당이 주장해야 할 것을 여당이 하겠다고 나서는 아슬아슬한 재주를 부림으로써-그 이상으로 제1 야당인 민주당이 반 자민당 세력을 결집하지 못했기 때문에-고이즈미 정권이 탄생했지만 그렇게 본다면 진짜 ‘뜨거운 싸움’은 자민당과 민주당의 정권 싸움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식은 싸움’은 ‘뜨거운 싸움’의 전초전인 것이다.

[[소노다 시게토 · 와세다대학원 동아시아태평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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