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국의 사회학자 두 명과 일본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고려대의 윤인진 교수와 연세대의 한준 교수다. 윤 교수는 와세다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 연구보고회 참가를 위해, 한 교수는 연세대 BK21 사업의 일환으로 대학원생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일본을 방문한 그들과 술을 마시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것 외에도 몇가지 기쁜 일들이 있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한 나는 이번에 윤 교수가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돼 ‘다음에 서울에서 함께 시합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이것으로 한국 방문에 새로운 즐거움이 하나 추가된 것이다. 또 내가 한국가수 신승훈, 나의 아내가 임형주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한 교수는 그들의 사인이 담긴 CD를 선물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이 칼럼도 신승훈의 새 앨범 ‘더 로맨티시스트(The Romanticist)’를 들으면서 쓰고 있다.

“스포츠나 음악이 뭘 할 수 있느냐”고 말하지 말라. 스포츠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 준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며 때때로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강한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스포츠나 음악이 국경을 넘을 때,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국경은 그 의미를 바꾸게 된다.

우리학교 대학원 학생 중에는 중국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의 진행을 맡고 있는 여학생이 있는데, 그녀는 이전에도 베이징(北京)의 중국국제방송을 통해 중국 청취자들에게 일본의 음악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5년 만에 비슷한 내용의 방송을 재개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방송을 통해 신청곡을 모집해도, 청취자로부터 반응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왜 신청이 없는 것일까. 여러가지로 조사해본 결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재임 기간에 중국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 음악이 거의 사라져 버려 청취자들이 일본 음악과 접할 기회가 없었다는 게 그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중국관계의 냉각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치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해 일반 국민들간의 악감정으로까지 발전한 지금, 양국 국민들의 상호인식은 어떻게 하면 호전될 수 있을까. 며칠 전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와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일본 방문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왕대사는 여러가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원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역사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편이 좋은가, 아니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은가. 총리가 무엇인가를 말한다면 이에 불만을 가진 일본인들이 인터넷에서 과격하게 비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급하지 않으면, 이번엔 중국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한 편에 유리하고 다른 한 편에 불리한 문제들은 인생에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제로섬(zero-sum)’의 상황으로, 정원이 정해진 입학 시험에서의 경쟁이나 영토 싸움 등이 그 전형적인 경우다. 역사 문제도 자주 제로섬 게임이 되기 쉽고, 이것에 교과서 문제나 영토 문제가 관련되기 시작하면 해결 방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데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서로 유리하게 되는 ‘윈-윈(win-win)’의 상황도 도처에 존재하고 있지만, 제로섬 발상에 중독이 되면 모든 것을 제로섬 게임으로 봐버리기 십상이다. 과격한 인터넷 여론은 그 대표적인 예다.

관계가 냉각되고 있을 때야말로, 윈-윈의 상황을 만드는 문화의 힘을 다시 봐야 한다.

내가 한 교수와 한국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한 일본 여성이 눈을 빛내면서 “한국에서 오셨나요? 이병헌의, 배용준의 그 한국에서 오셨군요?”라고 말을 건네왔다. 중국인에게 있어 일본의 이병헌이 존재할까? 일본인에 있어 중국의 배용준은 누구일까? 일본과 중국 국민들이 이 물음에 곧바로 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양국은 관계 냉각화의 함정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소노다 시게토 / 일본 와세다대학원 동아시아태평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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