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개명 신청자는 2003년 4만8860명, 2004년 5만340명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2005년 7만2833명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만9567명에 달했다. 개명에 성공한 사람도 2005년 5만3674명에서 지난해 9만8710명으로 대폭 늘었다. 불과 3년 만에 2배로 늘어난 수치다. 개명이 늘면서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소와 개명 절차를 대행하는 법무사사무소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백운학 백운학작명소 대표는 “과거에는 신생아 이름을 지으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손님의 30%는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명이 크게 늘어난 데는 팍팍한 세상살이를 이름변화로 극복해보려는 다수 시민들의 절박한 사회·경제적 욕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과거에는 어감이 좋지 않거나 ‘미자’, ‘순자’ 등 일본식 이름이 개명 대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름과 함께 운명을 바꿔보려는 성명학적 이유가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지난달 ‘박보윤’으로 개명을 신청한 박현경(여·31)씨는 “2년 전 아버지가 수술이 잘못돼 돌아가시고, 지난해에는 여동생도 많이 아파 가족들이 힘들었다”며 “사주를 보러갔더니 내 이름 때문이라고 해서 개명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최근 ‘김수민’으로 개명을 신청한 대학생 김희진(여·22)씨도 “내 사주에는 흙기운이 약해서 이름에 흙 토(土)자 기운을 보충해줘야 한다고 해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며 “20여년간 사용한 이름을 버리자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이름이 사주에 좋다니까 취업도 잘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명에 엄격한 원칙을 적용해오던 법원도 시민사회의 이같은 개명 욕구를 반영, 개명요건을 크게 완화시켜 왔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11월 판결을 통해 범죄 은폐나 법적 제재 회피 등의 불순한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하도록 했다. 또 미성년자도 부모 도움 없이 개명을 신청할 수 있게 했고, 호주와 가족이 한꺼번에 이름을 고치는 것도 허용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명을 제한해 허가율이 10%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90%에 달한다”며 “재판부에서 신청자의 소명자료를 철저히 분석해 범죄 연루 사실이 없다면 허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재순 한빛법무사사무소 사무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 개명 신청이 늘면서 개명만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법무사도 생겨났다”며 “최근에는 신청자가 밀려 일손이 달릴 정도”라고 말했다.
손재권·한동철기자 gjac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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