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중국의 수뇌부로서는 6년 반만인 이번 방문을 일본과 중국의 양 총리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평했으며 일본 언론들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원 총리가 무엇보다도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은 12일에 열린 국회연설 내용이다. “중·일 국교정상화 이래,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은 몇 차례나 역사문제에 대한 태도를 밝히고, 침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국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발언에서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중국 수뇌부의 의지를 느낀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는 방일 전부터 드러났다. 4월4일 일본 16개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원 총리는 “이번 방일을 얼음을 녹이는 여행으로 만들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원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역사 인식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양국 수뇌부 사이에 논의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방일 직전 만난 중국과 한국의 수뇌부가 역사 문제를 이야기했다는 뉴스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러한 몇 개의 요인이 합쳐지면서, 원 총리의 일본 방문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얼음이 생기게 된 것은 국내 여론을 등에 업은 양국의 수뇌부가 각각 ‘강한 일본’, ‘강한 중국’을 연출해 자국 내 내셔널리스트들의 지지를 얻는다는, 일종의 ‘내셔널리즘 게임’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냉정한 국익은 옆으로 제쳐둔 채, ‘혐일(嫌日)’, ‘혐중(嫌中)’이라는 감정에 근거한 언설이 지배하면서 특히 인터넷상에서 이러한 논의가 널리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재계에 “정치와 장사는 다르다”고 일갈하는 것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포퓰리즘 외교’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 측면이 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현재까지 포퓰리즘 외교를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내각 지지율 저하에 허덕이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지지율 하락의 타개책으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이용한다면, 일본 정부의 역사 문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원 총리는 중국 국내에서 격렬한 비판에 노출될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에는 지금도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과 중국 시사주간지 ‘랴오왕둥팡저우칸(瞭望東方週刊)’이 2007년 3월에 공동으로 실시한 ‘일·중 대학생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신은 일본(중국)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물음에 “신뢰할 수 없다”고 답한 중국인 학생은 전체의 85.2%로 일본측의 68.2%보다 17% 포인트나 높게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일 불신감을 부추기는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중국인 학생들은 다시 분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략적 호혜관계’라고 하는 이번 방일의 키워드는 공중에 떠 버리고 말 것이다.

핵심은 일본과 중국 양국이 녹기 시작한 얼음을 완전하게 녹일 때까지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가에 달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원 총리의 방일에서 그 정도의 깊은 의견교환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위 조사에서 “원자바오 총리의 방일로 인해 일·중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일본인 대학생이 31.7%였던데 비해 중국의 경우 62.6%에 달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강한 중국인 학생들이 이 정도까지 높은 기대를 표명한 원 총리의 방일을 의미없이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베 총리가 두는 ‘다음 한 수’에 따라 녹기 시작한 얼음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얼음이 정말 녹을지 어떨지는 양국의 향후 움직임 여하에 달려 있다.

[[소노다 시게토 · 일본 와세다대학원 동아시아태평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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