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캘리포니아 사막 끝자락에 둥지 튼 ‘도봉산 태고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14번 간선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 온 58번 고속도로를 따라 다시 서쪽으로 자동차를 달리면 ‘사막의 협곡’이라는 길을 만난다. 이 흙길을 따라 들어가면 ‘태고사’라는 한글 안내표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미국내 한국 불교의 상징적 현장인 ‘마운틴 스피릿 센터’ 입구다. 테하차피라는 이 지역은 예부터 인디언 원주민들이 정기를 얻기 위해 찾던 곳. 모하비 사막을 지나온 뜨거운 바람 때문에 초목이 숲을 이루지 못한 채 드문드문 산을 덮고 있는 풍광은 옛 서부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 그대로다.

태고사 웹사이트(taegosah.org)를 찾아들어가 보면 오는 7월9일부터 여름수련인 하안거가 시작되며 동시에 49일 백중기도가 개시된다는 안내부터 눈에 띈다. 이 절에는 매주 일요일 수백명의 신도들이 찾는다. 인근 한국교민들도 많지만 신자의 90%는 미국 시민이라고 한다. 한국에서처럼 주말이나 휴가 기간을 이용한 수련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 가장 큰 중요한 사건은 불교가 서양으로 전파된 것”이라고 했지만 한·미관계 59년,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125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마 한국 불교의 미국 진출일지 모른다. 아직 그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간과되고 있지만 말이다.

◆ 캘리포니아 사막의 ‘도봉산 태고사’= 캘리포니아 사막의 끝자락에서 ‘도봉산 태고사’(영어명 Mountain Sprit Center)라는 한자간판의 대웅전을 마주하면 문득 ‘기나긴 인연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이곳에 한국 사찰이 들어선 것은 주지 무량스님(속명 에릭 버럴) 덕분이다. 바로 미국에 한국 불교의 씨앗을 뿌린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중 한 사람이다.

무량의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한국전 참전용사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는 문구가 새겨진 베레모를 쓰고 한국전 참전기념일 행사때마다 참여했지만 정작 그가 한국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의 자살 이후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방황 때문이었다.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무량스님은 미 동북부 로드 아일랜드 주의 프로비던스 젠(禪)센터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입문했다.

◆ 미 ‘뉴잉글랜드’의 한국 불교도량 = 프로비던스 젠센터는 숭산스님이 미국에서 처음 연 불교 포교장소였다. 1972년 처음 문을 열 때는 프로비던스시에서 가장 어두운 거리인 도일 애비뉴에 있었다. 지금 이곳 젠센터는 프로비던스 북쪽의 15마일 숲속에 한국식 사찰건물을 갖춘 도량으로 변했다. 현재 프로비던스 젠센터는 20여명의 미국인과 유럽인 ‘젠마스터’(선 사범)들이 후학들을 가르친다. 한국의 절처럼 새벽에 일어나 108배부터 시작하고 일반인들의 사찰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숭산스님이 뿌린 씨앗은 미국 매사추세츠 하버드대 근처뿐 아니라 예일대 근처의 뉴헤이븐, 캘리포니아 등 미국 내에서만 수십 군데에 이른다.

◆ 숭산스님과 제자들 = 숭산스님의 미국행은 우연의 연속인 것처럼 이어졌던 인연의 매듭을 따라 온 것이었다. 숭산은 원래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지만 일제시대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고 해방이후에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 철학적 고민을 거듭하다 불교에 입문했다. 일본을 거쳐 1972년 미국땅을 처음 밟은 숭산스님은 주디 베리라는 미국인 가족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영어를 익히고 자신은 불교를 가르쳐 주었다. 프로비던스 젠센터를 연 뒤 그의 포교는 이 도시의 명문 브라운대 종교학과 교수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숭산은 하버드대의 교수들을 상대로 불교를 강연했다. 이 때 감명을 받고 불교에 입문했던 제자가 바로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스님이었다. 현재 프로비던스 젠센터에만 20여명의 제자가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4년 입적한 숭산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미국과 전세계 도시에 100여개의 절, 젠센터, 포교그룹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미국불교도 생길 것”= 무량스님은 영문 불교소식지인 월드 부디스트 뉴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앞으로 미국내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한국불교, 중국불교가 있듯이 미국불교도 생길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지난 1994년부터 미국내에서 좋은 절을 짓기 위해 풍수지리도 살피고 외할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으로 땅도 사들였던 무량스님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평화의 종 누각을 완성하는 것이다.

“한국의 절에는 모두 범종이 있잖아요. 이곳에도 평화의 종을 만들어서 워싱턴 DC까지 소리가 울려퍼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한국어도 능숙한 무량스님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같은 예일대 동문이어서 익살을 좀 보탠 말이었다. 부시 선배님의 귀에도 평화의 종이 울려퍼지도록 하겠다는 바람인 듯했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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