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같은 의문은 진화론과 인류학, 심리학 등을 통틀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와 바로 연결돼 있다. 이 질문, 즉 ‘본성(nature) vs 양육(nurture)’논쟁은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는 논쟁과 함께 인류의 3대 논쟁이자 미스터리로도 불린다. 우리는 왜 각각 개성을 지녔을까. 유전자의 차이대로 그렇게 타고나서?
각각의 부모가 다르고 자라난 환경이 달라서? 저자는 “둘 다 아니야!”라고 자신있게 도리질한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 해리스는 이미 8년 전에 쓴 ‘양육 가설(The Nurture Assumption)’에서 양육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최근의 심리학 이론들을 뒤집은 바 있다. 단적으로, 만약 부모의 양육방식이 아이의 성격을 결정한다면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성격은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가? 집에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금방 알 것이다.
책에 따르면, 유전자설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동일하므로, 그들의 차이를 유전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두 가지 이론을 절충한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이론도 다를 게 없다. 외신으로 전해져 우리도 알고 있는, 이란의 랄레흐 비자니와 라단 비자니 자매(오른쪽 사진)는 스물아홉의 일란성 접착쌍생아였는데, 2003년 두 사람은 분리 수술 도중 사망했다. 수술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미리 의사가 알려 주었지만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 살기 위해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 “우리는 붙어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사람입니다.” 수술을 앞두고 라단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들은 유전자도, 자란 환경도 같았지만 성격은 놀라울 정도로 판이했다.
저자는 주로 스티븐 핑거 등 진화심리학들의 성과에 기대서, 그렇다면 무엇이 ‘개성’을 탄생하게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답변을 준다. 스티븐 핑거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출판사 소소·2007)에서 “마음은 단일한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으로 구성된 하나의 체계로, 각 기관은 심리적 기능 또는 마음 모듈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쉽게 얘기하면, ‘마음은 우리 조상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적으로 진화 설계된 기관들의 연산 체계’라는 것이다.
개성도 마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개성을 형성하는 것들은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성향인 ‘관계 체계’ ▲자신이 속한 사회규범과 관습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는 성향인 ‘사회화 체계’ ▲사회의 다른 성원들과 경쟁하려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앞지르려는 ‘지위 체계’ 등 인간에게 사회에 적합한 성향을 부여하는 3가지다.
아기가 성장발육을 거치고, 사회화하고, 개개인이 저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획득해 가는 방법은 이러하다. 아기는 생후 첫해의 절반이 가기 전에 자기 삶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때그때 다르게, 적합한 방식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한 살이 되면 관계 체계는 전력가동을 한다. 아기의 마음에는 이미 ‘인물정보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2, 3살이면 아이들은 자신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고,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게 된다. ‘범주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범주의 규범을 따르고 자신의 사회범주를 다른 범주보다 선호하기 시작한다. 성장하면서 범주화는 인종이나 종교, 팀원 등으로 맥락이 다양해지고, 각기 다른 거기에 맞는 규범에 행동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맞추어간다.
개인적 사회 범주화는 아이들에게 누가 자신의 동지이며 또한 누가 경쟁자인지를 규정해준다. 그들은 집단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자신이 집단의 다른 성원보다 우월하기를 바란다.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힘의 우위를 통한 정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상당 부분이 남의 의중을 읽는 메커니즘에 의해 제공된다. 이 메커니즘은 관계 체계를 위해 진화해 왔지만 지위 체계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사회적 파트너에게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진화해왔다. 예컨대 일란성 쌍둥이더라도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둘을 구분하기 위해 별개의 인물정보를 만들며, 이는 둘에게 각기 다른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장기적인 행동수정을 통해 비슷해지기도 하지만, 경쟁자들과 경쟁하는 갖가지 방법을 통해 서로 달라진다. 그 결과 지구상의 누구도 똑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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