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업그레이드된 국립극단의 ‘태’ 국립극단(예술감독 오태석)의 국가 브랜드 연극 ‘태(胎·23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2280-4115)’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974년 오태석 극본, 안민수 연출로 초연한 ‘태’는 1976년 미국 뉴욕 라마마극장, 1986년 아시안게임 등 끊임없이 무대에 오른 현대희곡의 명작으로 평가됩니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새롭게 해석, 과연 죽음을 뛰어넘어 존속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여기에 핏줄을 잇기 위한 박팽년 가(家)의 가정 비극이 더해집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픽션이 가미된 탄탄한 극적 구조에다 핏줄을 이으려는 절절한 한국적 모성 본능과 제의적 성격을 씨줄과 날줄로 해 시적으로, 서사적으로 얽어낸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 창단 50주년인 2000년 ‘다시 보고 싶은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돼 예술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국립극단의 고정레퍼토리로 자리잡았습니다. 지난해에는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뽑혀 오태석 예술감독이 ‘죽음의 의미’를 강조해 새롭게 연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평가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지적은 작품 전체가 이야기 구조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었죠. 외국인 관객을 지향하는 국가브랜드인데 구체적인 역사에 너무 매달려 외국인이 과연 이 작품을 즐길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이같은 비판을 수용, 이번 공연에는 관현악 주자 3명이 무대에 들어오고, 김금미씨가 절절한 구음을 직접 부르는 등 라이브 음악으로 청각적 효과를 높였습니다. 또 무대도 앞으로 끌어내고 전체에 옹이목을 깔아 먹물을 입히는 등 시각적인 느낌을 한층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사육신에 좀 더 능동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등 캐릭터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세조역을 맡은 김재건씨는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선보였고, 장민호, 백성희씨 등 원로배우들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의미를 또렷이 부각시켰습니다. 아들을 잃은 종부역을 맡은 이승옥씨의 한국 어머니 연기도 관객의 누선을 자극했습니다. 문영수, 김종구, 이상직, 서상원씨 등 넉넉히 연극 한편을 이끌어가는 주역급 배우들의 앙상블도 오 감독의 독특한 감각과 잘 어울렸습니다.

오 감독의 연극은 매일매일이 다릅니다. 이 작품 역시 아직 완성이 아닙니다. 매일 달라지고 있지요. 오 감독은 지난해 국가브랜드 ‘태’를 시작하면서 “3년 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와 전혀 달라진 이번 작품을 보면서 완성본이라고 할 수 있는 내년 ‘태’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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