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타임스 Ⅰ·Ⅱ / 폴 존슨 지음, 조윤정 옮김 / 살림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인간은 역사를 통해 지난 시절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존재일까. 이 같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70여년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격동의 현대사다. 저자의 사관(史觀)은 첫 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제1장의 제목은 ‘상대주의 시대’다. 이어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소제목 아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현대 세계는 1919년 5월29일에 시작되었다.”
1919년 5월29일은 어떤 날인가. 이날은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일식 촬영을 통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증명한 날이다. 그렇다면 왜 이날 ‘현대 세계’가 시작됐다는 말인가. 저자는 상대성 이론이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으로 세계를 이해해 왔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모든 가치 척도가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함께 도덕적 무정부 상태를 불러왔다. 상대성 이론과 상대주의를 혼동한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어진 마당에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20년대에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은 모두 동일한 메시지를 퍼뜨렸다. 그 메시지는 세계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이는) 개인적인 책임감과 19세기 문명의 중심이었던 객관적인 도덕 규범에 대한 의무감의 토대를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구질서가 종말을 맞고, 방향을 잃은 세계가 상대주의적 우주 속을 떠도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역사에서도 이제 ‘필연은 없다’. 이 말은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려니와 저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다. 역사는 온갖 악당들이 무대에 올라와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그것도 전혀 우연한 기회를 붙잡아 한 막의 주인공이 됐을 뿐인, 어릿광대들의 난장판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저자에 따르면, “레닌이 역사의 무대에서 위대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전개 과정에 대한 그의 이해력 덕분이 아니라, 역사가 제공하는 예상치 못한 기회를 잡는 민첩성과 정력 덕분”이었으며 “레닌은 모든 반대 세력을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지만, 레닌이야말로 기회주의자”였다. 심지어 “파시즘은 실로 마르크스주의의 이단이며, 레닌주의는 이단의 변형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규정한다. 한마디로, 레닌과 아돌프 히틀러는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쯤으로 평가된다.
저자의 사관에 동의하든말든, 책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기존의 연대기식 서술방식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현대사를 풀어나간다. 기전체와 편년체를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 서술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한 줄로 엮으며,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을 마구 휘저어놓는다. 저자가 펼쳐놓은 그물망에선 어떤 인물도 영웅이 될 수 없으며, 악당마저도 희화화된다.
히틀러는 낭만적이고 예술가적인 성향이 독일인의 기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야망이 크고 허영심이 많은 나르시스트였으며, “바람의 냄새를 맡기 위해 콧구멍을 벌름거릴” 정도로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친 마하트마 간디는 ‘해방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적 기인’으로 묘사된다. “간디의 기행은 신성한 기인을 숭배하는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가르침은 인도의 문제나 인도의 소망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발한 인물평과 독특한 역사 해석에도 불구하고 책은 흥미 만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현대사를 다룬 역사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들이 가감없이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역사서, 저서, 전기, 일기, 개인 서한, 통계자료, 이제야 접근이 허락된 정부의 비밀문서를 총동원하고 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구석구석 헤집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사의 거센 풍랑 속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왠지 허탈한 느낌이 들 것이다. 1, 2권을 통틀어 무려 1400여장에 걸쳐 풀어놓은 현대사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의 역사이며, 그 어떤 정의나 법칙도 관철되지 않는 오로지 우연의 역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인간의 어리석음’만을 확인할 뿐이다. 특히 이념이나 이상을 내세워 인류의 삶을 개조하려는 건 오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따라서 ‘역사란 인류의 오만을 위한 강력한 해독제’라는 저자의 주장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20세기가 끝나면서 인류는 분명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파멸적인 실패와 비극을 가능케 했던 근본적인 악―도덕적 상대주의의 등장, 개인적인 책임감의 소멸, 유대 기독교적 가치의 거부, 인간이 지적 능력을 통해 우주의 모든 신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이 사라져가는 과정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21세기가 과거와 달리 인류에게 희망의 시대가 될 수 있을지는 여기에 달려 있다.” 이 얼마나 지독한 비관적 회의주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