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서 파리로 도피하는 화가 ‘성남’ 役|김영호배우 김영호(41)는 “레드카펫이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이게 영화의 한장면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28일 개봉)으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을 경험한 소감이다.

영화에서 대마초를 한번 피웠다가 적발돼 파리로 도피하는 화가 ‘성남’을 맡은 그를 2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영호와의 대화는 의외의 유쾌한 골목으로 빠질 때가 많았다.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나서 참 재밌다”와 같은 코멘트, 블로그를 통해 부인에게 써 주는 낭만적인 글에 대한 이야기, 사극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바람이 몰려다니는게 눈에 보인다는 파리의 낮, 음악과 연기의 유사성. 그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이어졌다.

-성남은 속된말로 참 ‘찌질한’ 인물이다. 배우로서는 이런 역할이 싫거나 공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처음에는 찌질한 남잔지 몰랐다.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한다는게 좋아서 한거다. 감독이 ‘너밖에 안나올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일기체 형식이니까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한신 빼고 다 나온다.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이고 시나리오나 영화 외부 요건에 휩쓸리거나 흔들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형식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는 감독이니 배우는 거기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자신의 모습과 성남의 모습이 비슷한 점이 있는가.

“일단 난 여자한테 말을 더듬지는 않고,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으니까, 이건 다르다. 화장실에서 운동하는 모습은 내 진짜 버릇이다. 성격은 다르고 행동은 비슷한 듯하다. 제안을 받은 후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끊임없이 물어봤다. 성남은 그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인물이고 여기에 감독이 좋아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50대 50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성남은 어떤 사람인가.

“한 마디로 철딱서니다. (웃음) 세상물정 모르고 감성에 움직이는 예술가다. (소심하지만) 그림에 대한 자의식은 강하고. 파리에서 이방인으로 지내야하는데 유일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첫 애인과 유정(박은혜)이 정도인거다. 이해가 된다. 평생 그림만 그리다 대마초로 걸리니까 어쩔줄 몰라 도피하는 마음. 낯선 파리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유정이 아니었을까.”

-파리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겠다.

“파리에서는 바람이 신나게 달린다. 바람이 막히는 대한민국 도시와 달리 파리에서는 아주 작은 골목에도 바람이 신나게 돌아다닌다. 바람이 떼로 몰려 다니는 것 같다. 골목에 서 있으면 백인 바람, 흑인바람, 동양인 바람, 말바람, 개바람이 신나게 뛰어 다니고 비둘기가 10마리씩 떼지어 하늘을 오른다. 외신기자들도 파리에 대한 기억을 많이 묻더라.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성남이 맴돌던 동네 카페, 지하철역정도가 기억이 나고. 영화보면서 새삼 ‘바람이 부는 도시였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강행군이었겠다.

“힘든 점도 있었는데 열심히 찍다보니, 어느새 다 찍었더라. 담배를 못피우는데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아 고생했다. 공항에서 노숙자랑 실랑이하는 첫 장면에서 30번 촬영을 해서 담배 30개피를 피워야했다. 찍고 한 4시간 기절해 있었다. 사람이 담배로 죽을 수도 있겠더라. (웃음)”

-연기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지.

“무대에서 라이브한 것과 비슷하게 (김영호는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연극 음악을 만들다 연기를 시작했다)짜릿할 때가 있다. 몰입해서 나를 완전히 잊고 다른 사람이 돼 있다. 파리에서 촬영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현관 비밀 번호가 생각이 안나더라. 파리에 대한 별 기억이 없는 것도, 그때는 내가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은 ‘네가 무당이냐’고 하지만 정말 그럴 때가 있다.”

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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