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서 대마초를 한번 피웠다가 적발돼 파리로 도피하는 화가 ‘성남’을 맡은 그를 21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영호와의 대화는 의외의 유쾌한 골목으로 빠질 때가 많았다.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면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나서 참 재밌다”와 같은 코멘트, 블로그를 통해 부인에게 써 주는 낭만적인 글에 대한 이야기, 사극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바람이 몰려다니는게 눈에 보인다는 파리의 낮, 음악과 연기의 유사성. 그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이어졌다.
-성남은 속된말로 참 ‘찌질한’ 인물이다. 배우로서는 이런 역할이 싫거나 공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처음에는 찌질한 남잔지 몰랐다. (웃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한다는게 좋아서 한거다. 감독이 ‘너밖에 안나올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일기체 형식이니까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한신 빼고 다 나온다.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이고 시나리오나 영화 외부 요건에 휩쓸리거나 흔들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형식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는 감독이니 배우는 거기 들어가보고 싶어진다.”
-자신의 모습과 성남의 모습이 비슷한 점이 있는가.
“일단 난 여자한테 말을 더듬지는 않고, 비닐 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으니까, 이건 다르다. 화장실에서 운동하는 모습은 내 진짜 버릇이다. 성격은 다르고 행동은 비슷한 듯하다. 제안을 받은 후 감독과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끊임없이 물어봤다. 성남은 그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 인물이고 여기에 감독이 좋아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50대 50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성남은 어떤 사람인가.
“한 마디로 철딱서니다. (웃음) 세상물정 모르고 감성에 움직이는 예술가다. (소심하지만) 그림에 대한 자의식은 강하고. 파리에서 이방인으로 지내야하는데 유일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첫 애인과 유정(박은혜)이 정도인거다. 이해가 된다. 평생 그림만 그리다 대마초로 걸리니까 어쩔줄 몰라 도피하는 마음. 낯선 파리에서 유일한 안식처가 유정이 아니었을까.”
-파리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겠다.
“파리에서는 바람이 신나게 달린다. 바람이 막히는 대한민국 도시와 달리 파리에서는 아주 작은 골목에도 바람이 신나게 돌아다닌다. 바람이 떼로 몰려 다니는 것 같다. 골목에 서 있으면 백인 바람, 흑인바람, 동양인 바람, 말바람, 개바람이 신나게 뛰어 다니고 비둘기가 10마리씩 떼지어 하늘을 오른다. 외신기자들도 파리에 대한 기억을 많이 묻더라.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성남이 맴돌던 동네 카페, 지하철역정도가 기억이 나고. 영화보면서 새삼 ‘바람이 부는 도시였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강행군이었겠다.
“힘든 점도 있었는데 열심히 찍다보니, 어느새 다 찍었더라. 담배를 못피우는데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아 고생했다. 공항에서 노숙자랑 실랑이하는 첫 장면에서 30번 촬영을 해서 담배 30개피를 피워야했다. 찍고 한 4시간 기절해 있었다. 사람이 담배로 죽을 수도 있겠더라. (웃음)”
-연기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지.
“무대에서 라이브한 것과 비슷하게 (김영호는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연극 음악을 만들다 연기를 시작했다)짜릿할 때가 있다. 몰입해서 나를 완전히 잊고 다른 사람이 돼 있다. 파리에서 촬영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현관 비밀 번호가 생각이 안나더라. 파리에 대한 별 기억이 없는 것도, 그때는 내가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은 ‘네가 무당이냐’고 하지만 정말 그럴 때가 있다.”
전영선기자 azulid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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