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생도대장을 지낸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를 고별 방문한 김 장관은 후배들에게 “내 생애 최고의 자리가 국방장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애 최고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다. 나는 그것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삶의 화두를 던졌다. 김 장관은 후배 생도들에게 “여러분은 자유의지에 따라 군문에 들어선 만큼 자기만의 특징적인 능력을 갖추고 일에 집중하는 진정한 프로가 되어 달라”고 주문했다.
평소 말을 아끼는 편인 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경황이 없는 데도 연도의 시민들이 저를 불러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더니 여기저기서 폰카를 들이대며 ‘장관님 손 흔들어 주세요’라며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청해 다시 손을 흔들었다”면서 “제가 인기는 좀 있는 편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시민들이 등산로에서 김 장관을 만나면 자연스레 악수를 청하고 기념사진을 찍거나 사인 요청을 할 정도다. 이러한 임기 말 국방장관의 이상적인 인기 과열현상은 사회학적 연구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김 장관은 주한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던 평택미군기지 이전 합의를 비롯, 국방개혁2020 법률안 국회통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협상,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연장, 레바논 동명부대 유엔평화유지군(UNIFIL) 파병 등 굵직굵직한 국방현안들을 원만히 해결했다. 그가 나서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자 해결사적 기질의 김 장관에게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은 “김 장관은 재임 기간 많은 도전에 직면했고 이를 훌륭하게 해결했다”면서 지난 15일 미 국방부가 다른 나라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훈장인 ‘미 국방부 공로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 장관을 곁에서 죽 지켜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역대 국방장관 중 최고의 덕장이자 지장으로 평가받는 게 인기의 진정한 이유일 것”이라며 “국방장관의 브랜드 가치가 치솟아 국방부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를 업그레이드시킨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로, 이것이야말로 김 장관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관님 인기와 이미지가 너무 좋아 차기 국방장관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것 같은데요.
“국방장관은 인기를 얻기 위해 맡는 직종이 아니며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방장관은 국방 정책 수행능력을 통해 국민에게 평가받아야 하며 절대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김 장관 스스로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키가 커서 남들 눈에 잘 띄는 편이지요(웃음). 굳이 말하자면 장관직을 맡으며 사람들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하고, 오픈 마인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은.
“특별히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서해 NLL 재설정을 둘러싸고 언론에서 ‘국방장관 낙마설’이 거론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 책임자를 만나 제가 필요 없으면 언제든지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참여정부에서 대장 승진과 육군참모총장, 장관까지 맡은 제가 물러난들 무슨 불만을 가질 까닭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책임자는 문책이나 낙마를 아예 검토한 적도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때 협상이 꼬이자 회담장 겸 대표단 숙소인 송전각 초대소에서 혼자 김수희의 ‘애모’를 피아노로 치며 마음을 가다듬은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심정은. 특히 북한에 가기 전에 최악의 경우 ‘빈손으로 돌아가면 사표를 쓰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같은 도전을 어떻게 돌파했는지요.
“먼저 해명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국방장관이 무슨 예술가인 양 피아노까지 잘 치는 것으로 보도돼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독수리타법 정도로 조금 치는 편인데…. 장관 재직 시 제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난관을 헤쳐나간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수진은 군사전략상 절대 좋은 전술이 못되지요. 전쟁에서 유능한 사령관은 배수진을 절대 선호하지 않으며 자주 쓸 전술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세’가 중요한데 세가 달릴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것이 배수진입니다.”
―군사전략가로서 미래전에 대비해 택해야 할 전략은.
“미래 군사전략뿐 아니라 기업 생존전략에서도 기동전이 중요합니다. 기동전은 전쟁(기업) 상황의 변화를 주도해 주도권을 장악할 뿐 아니라 주는 자극에 따라 상대방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만 적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7일 고별 방문 때 육사와 더불어 7군단장 시절 인연을 맺은 경기 여주군 점동면 오순절 평화의마을 중증장애인과 정신지체아들을 만났는데, 기독교와는 언제 인연을 맺었는지요.(김 장관은 차 안에 찬송가를 낮게 틀어놓고 다닐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1984년쯤 대대장 시절 후원자의 도움으로 영내 교회를 건립하게 된 것이 종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장애인 등을 돕는 일을 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신학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김 장관은 27일 육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프로가 될 것을 주문하면서 군 생활의 몇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베토벤 마니아’로 소문난 김 장관은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 음악 전반에 조예가 깊었던 당시 조영길 국방장관의 영향을 받아 베토벤 음악의 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베토벤 음악 이미지, 리듬 등 베토벤의 모든 것을 집중 공부해 지금은 베토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사단장 시절에는 장병들에게 손자병법 교육을 많이 시켰는데, 자신부터 손자병법을 솔선수범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손자병법 13편 3619자를 달달 외웠을 정도다.
육사 생도 때 축구선수로 뛰며 합숙훈련을 하느라 소대장 교육 수업을 빠뜨린 적이 있었던 그는 소대장 시절 박격포 조포훈련을 하면서 병사들로부터 못다 익힌 소대장 교육을 밤을 새우며 받았다. 김 장관은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도 배워서 프로가 돼 달라”고 후배들에게 주문했다. 김 장관은 국방부 직원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그는 부하들 앞에서 한번도 짜증을 내거나 면박을 주지 않으면서도 업무지침을 명확히 내려 직원들이 스스로 분발하도록 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김 장관과 같이 근무한 기간은 행복한 추억”이라고 말한다. 한 국방부 고위 인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고개 한번 빳빳하게 치켜들었다고 하룻밤 새 인기가 올랐다는 생각은 오해이며 국무위원들 사이에서도 김 장관의 인기가 높았다”면서 “김 장관은 주변에 적이 없는 편이다. 화려한 단어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단어로 진솔하고 꾸밈없이 상대방을 설득해 남의 미움을 사는 적이 없었다 ”고 ‘인간 김장수’를 평했다.
김장수 장관은 누구
김장수 국방장관은 1996년 1군사령부 작전처장 시절 강릉 잠수함사건으로 50여일간 집에 못 들어가면서 작전을 지휘했다.
온화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업무에 대해 빈틈이 없으며 부하 직원들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는 덕장형. 육군 참모총장 재임 시절 부하들의 신망이 두터워 국방개혁 2020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로 국방장관에 전격 발탁됐다.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숙이지 않는 소신행보로 ‘꼿꼿장수’ ‘소신장관’ 등의 별칭을 얻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광주(60) ▲광주일고 ▲육사 27기 ▲9사단 대대장 ▲7사단 5연대장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육사 생도대장 ▲1군사령부 작전처장 ▲6사단장 ▲합참 작전기획부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인터뷰 = 정충신 사회부차장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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