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앨범 ‘여자…’로 컴백톡 쏘는 산나물이 그리워지는 계절, 모처럼 창문을 활짝 열고 바깥 봄바람을 맞이하고 싶은 오전 한 때라면 이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깨끗한 정수같고, 비단곁 처럼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 박혜경(34).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가 오랜만에 대중음악계에 돌아왔다. 그의 귀환에 귀를 쫑긋 세우는 이들이라면 십중팔구 봄날에 제격인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때문일 것이다. 대중의 욕구에 부응이라도 하듯, 박혜경은 80, 90년대 사랑받았던 히트곡 10개를 산뜻한 리듬감으로 재해석한 리메이크 음반 ‘여자가 사랑할 때’를 내놓았다. 특이한 건 전부 남자가 부른 수록곡을 재해석했다는 점.

“정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좀 늦을 것 같아 리메이크를 먼저 냈어요. 선곡하고 보니 전부 남자곡이어서 부르기 쉽지 않았어요. 리메이크는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많이 얻어먹거든요. 호호.”

타고난 맑은 목소리에 감춰진 박혜경 음색의 특징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데 있다. 가수라면 필수품 같은 바이브레이션은 그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고, 일부러 꺽는 ‘뽕끼’적 기교도 없다. 그런데도 단순하고 직선적인 음색에서 깊은 울림을 발견하는 건 뜻밖의 성과다. 그건 그가 노래를 어떻게 표현하고 해석하는지 제대로 꿰뚫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 원래 노래방에 잘 안가요. 남의 노래 부르는게 싫어서죠. 저만의 노래에 대한 자부심같은 게 있어서 소위 유행하는 창법을 따라하기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새 앨범의 수록곡들엔 지금까지 박혜경표 보컬과는 사뭇 다른, 어느 정도 ‘타협’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대중적인 룰이 엿보인다. 심한 바이브레이션은 아니지만 옛 곡에 대한 존중같은 의미로 약간의 기교를 집어넣었다. 그는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게 절충한 면이 있다”면서 “‘뽕’ 발라드에서 세련됨을 함께 추구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아름다운 이별’(김건모) ‘너에게’(윤상) ‘사랑과 우정사이’(피노키오·타이틀곡) 등 일련의 곡들은 대개 보사노바 리듬을 타고 귀에 촉촉히 젖는다. 살랑거리는 목소리와 약간 들뜬 리듬이 모나지 않게 안착된 느낌. 원곡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편곡된 ‘I Believe’(신승훈)는 동화속 요정이 속삭이는 듯하다. 박혜경은 “‘I Believe’나 ‘아주 오래된 연인들’ 처럼 라운지 느낌이 나는 곡들을 소화하기가 가장 까다로왔다”고 했다.

“앞으로 리메이크 할 기회가 더 있다면 오래된 세미 트로트를 팝처럼 재해석하는 작업과 산울림이나 양희은 선배의 노래를 동요처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 나름의 색깔을 가장 잘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층 더 젊어진 외모와 짧게 자른 머리로 나타나 인터뷰에 응한 박혜경. “늘 피터팬 처럼 있고 싶어요. 나이 먹어도 귀여운 여자라는 평가를 계속 받고 싶죠.” 외모 만큼이나 산뜻하고 젊은 그의 음악이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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