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사 김성준 사장은 “설비를 구입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신도시개발계획이 확정됐다”며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주 여부에 대한) 지침이 없어 비싼 설비를 되팔아야할지 가동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근의 제조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로봇부품 제조업체인 무진의 임채정 사장은 “보상비도 알려주지 않고 새로 이전할 산업단지의 분양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든 설비가 가동중단된 상태에서 폐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6월 정부의 신도시개발계획이 발표된 후 동탄면 1818만㎡(550만평)에 입주한 400여개 중소업체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어떤 기업들이 남을지 어떤 기업들이 이전해야 할지 지침이 없어 10개월째 갈팡질팡이다. 그렇다고 눈딱감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장을 이전할 수도 없는 실정.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적용받고 있는 이 곳 화성시에선 입주신청 후 허가를 받기까진 1년여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공장총량제’라는 규제와 더불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이 지역 400여 중소제조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화성시 관계자는 “ 지난 2월부터 기업존치심의위원회를 꾸려 존치시킬 기업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며 “하지만 언제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태철 일산정공대표는 “지가상승과 개발제한 규제에 묶여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언제 나올지 모르는 정부의 개발계획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난감해했다.
유형무형의 각종 규제가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어려워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관련기사 12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규제혁파’를 외치는 구호소리가 높지만 아직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규제는 종전과 큰 차이가 없다. 학계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규제개혁에 대한 체감지수는 5점만점에 공무원이 3.59점에 이르지만 정작 대기업 임원들은 2.88점에 그치고 있다. 규제기관과 규제대상간 괴리감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는 그동안 작고 효율적인 정부보다는 ‘큰 정부’를 지향해온 국정철학과 무관치 않다. ‘큰 정부’를 내걸고 공무원 수를 계속 늘리다보니 결국 불필요한 규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표면적으로는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내세우면서도 근원적인 해결책 없이 건수위주의 잔가지치기에 그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양적인 규제개혁은 표면적으로는 규제감소를 가져오는 듯하지만 정작 부담이 큰 규제가 그대로 지속될 경우 기업들의 비용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각종 규제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시장경제 아래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시대정신에 뒤떨어진 규제, 공무원들의 이해관계·무사안일에 따른 부적절한 유무형의 규제는 시장의 실패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실패를 초래하고 나라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태윤(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신속하고 획기적인 규제개혁 없인 글로벌 경쟁체제하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화성 = 송길호·음성원기자
khs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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