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무실에 일단의 일본인들이 찾아왔다. 사단법인 후라노(富良野)관광협회 구로이와 다케오(黑岩岳雄) 회장, 소운교(層雲峽)관광협회 나카지마 신이치(中島愼一) 사무국차장과 아사히카와(旭川)시 상공관광부 관광과 아사리 고(淺利豪) 주사 등이었다. 홋카이도(北海道) 관광사업 관련 민관 인사들이다.

이들은 사전 약속도 없이 ‘쳐들어’왔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예의와 격식은 잊지 않았다. 먼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며 불쑥 찾아온 것에 양해를 구했다. 각각 떡, 화과자 등 맛보다 모양이 더 예쁜 일본 먹을거리도 하나씩 가져왔다.

찾아온 이유를 물었더니 홋카이도 관광을 많이 와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렇게 한국의 모든 언론사를 다 다니는 것이냐고 묻자 그들은 “아사히카와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 기자가 일하는 신문사를 돌고 있다”며 본사의 누구누구 기자의 이름을 댔다. 그가 언제 어떻게 취재를 했고, 어떤 기사가 났다며 소상한 기록까지 외우고 있었다. 이들은 아사히카와시 동물원이 투명한 수조 밑으로 관람객 통로를 마련, 백곰이 먹이를 찾아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등 홋카이도의 명소를 소개했다. 이같이 지방 공무원과 관광협회가 함께 해외시장에 효율적 공세를 취하는 것을 보며 일본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에 관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10여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문화세미나에서다.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한국을 잘 아는 듯한 프랑스인이 “한반도가 왜 통일이 안되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말도 달리고 해서 ‘잘 모른다’고 했더니,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어디냐”고 말을 돌렸다. ‘미국’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미국을 갖고 노는 나라가 꼭 하나 있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웃으며 ‘북한’이라고 답하고 함께 웃었다. 그는 이어 “미국 다음에 힘센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가 프랑스 사람이어서 ‘프랑스?’라고 아부를 한 번 한 뒤 ‘독일? 러시아? 중국?…’등으로 열거했더니 그는 “일본”이라고 콕 찍으면서 일본의 국민총생산이 유럽연합(EU) 전체와 맞먹는다고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이어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꼭 하나 있는데 어느 나라인지 아느냐”고 물어 ‘남한’이라고 답하고 또 함께 웃었다.

그는 “세계 제1의 파워인 미국을 갖고 노는 나라와 제2의 파워를 우습게 아는 나라가 통일이 되면 세계 정세가 어떻게 되겠느냐. 스테이터스 쿠오(Status

quo·현상 유지)를 위해 한반도의 통일은 어렵다”고 웃으며 말했다. 함께 웃기는 했지만 한국인의 약간 지나치다 싶은 자존심에 대한 가시가 들어 있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농담이었다.

최근 매년 파업을 하는 현대자동차에 비해 58년째 무분규인 도요타자동차를 비교하는 기사가 나왔다. 도요타라는 이름이 미국에 거부감을 주는 것을 우려, ‘미국에 수출하자(Let’s export US)’라는 의미의 ‘렉서스(Lexus)’외에는 아무것도 노출되지 않는 도요타의 치밀한 전략을 알고는 그들의 철저한 실용주의에 소름이 끼쳤다.

힘센 일본은 힘을 더 키우기 위해 이렇게 아사히카와시나 도요타처럼 민관, 노사가 함께 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시장을 중심으로 각국에 전방위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살인적인 고유가 상황의 경제위기는 아랑곳없이 종교계까지 가세,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3개월째 이어지고, 노동계는 ‘생산에 타격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최근의 상황에 대해 한 원로학자는 “100년 전 구한말, 60년 전 광복후와 똑같은 상황”이라며 “이것이 한국의 한계”라고 한탄했는데 그것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김승현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부장]]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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