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데뷔 차인표배우 차인표(42)씨가 소설가로 데뷔했다. ‘잘가요, 언덕’. 지난해에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더니, 이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을 다룬 소설로 대중과 소통을 하려한다. 그는 이미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몇 안되는 연예인들 중 한 사람이다. 아동구호단체인 ‘컴패션(Compassion)’에서 부인 신애라씨와 함께 자원봉사활동을 펴고 있고, ‘컴패션밴드’를 조직해 후원 결연을 돕기 위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어느덧 ‘불편한 소수’의 삶을 응시하는 대표적인 스타로 인식돼버렸다. 그 열정이 타고난 천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남모르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어쩌면 소설가 김탁환씨가 추천사에서 지적한 대로 그는 ‘타인의 불행을 제 일처럼 먼저 깊이 아파하는 재능’을 지녔을지 모른다.

현자가 일러준대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본성이 발현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본성 대로 살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더구나 대중에게 공개된 연예인의 삶을 살면서, 남의 일에 아파하기란 쉽지 않을 터다.

차씨는 지난 25일 AM7과 인터뷰에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한 순간의 눈물이 아니라 평생 지고 가야할 마음”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불미스런 일들로 우울한 연예계에 대해서도 “후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사소한 일이라도 나누고 위로하는 기회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가 소설가로 데뷔한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미안함과 감사하는 마음이 반반이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된데 우선 감사한다. 하지만 내가 연예인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너무 쉽게 책을 출간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미안함을 느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취재했는가.

“2007년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나눔의 집’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사진작가 조선희씨가 할머니들에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게 하고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영정사진이었다. 모두 여덟 분이었는데, 차례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분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30년이 지나면 세상이 그 분들을 기억할까. 내가 갖는 관심이 미약하지만 끝까지 책을 써서 알려줘야 하겠다고 그 때 결심했다.”

―아동구호활동이나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소설을 보면 타인들에 대한 일관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본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진정 불쌍히 여기려면 그들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순간의 눈물이 아니다. 평생 지고 가야할 마음이다. 실천이 없다면 헛말이 된다. 다만 사람마다 불쌍히 여기는 대상에 관심을 갖는 방식이 각자 다른데 나의 경우 그 대상들을 위해 영화작업에 참여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책을 쓴 것이다.”

―연예계에도 장자연씨의 자살사건 등 함께 아파해야할 비극적인 일들이 많다.

“선배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 연예인의 삶을 산지 16년이 됐는데, 사실 그 동안 대중이 나를 고용한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너무 해준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사소한 일이라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는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나누고, 위로하는 문화가 성숙되려면 준비가 필요한 것 아닌가.

“아동구호와 관련한 일로 아프리카, 몽골 지역 등에 가보면 한국인은 ‘걸어다니는 희망’이 된다.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이제 남을 돕는 나라의 반열에 올랐으니, 한국인은 그들에게 자신들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한국인은 거기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다만, 경쟁 일변도로 가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우려스럽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12년 동안 성적 잘받기 경쟁만 벌인다. 그런 환경에서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 그 분위기에 위로하는 사회, 나누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하면 통하겠는가. 나눔, 배려, 위로하는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글쓰기 작업을 병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소설은 가슴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쓰는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엉덩이로 썼다. 내가 너무 모르는게 많았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 일본군의 계급, 서식했던 동식물, 백두산 호랑이의 실재여부 등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실성을 보강하기 위해 백두산도 다녀왔다.”그는 ‘잘가라 언덕’외에도 장,단편 소설을 몇편 써두었다고 했다. 그중 장편소설의 가제는 ‘하소연’이다. 그는 “언제 출간할지는 결심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승훈기자 osh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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