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주만에 500만 돌파 해운대 일대를 쓸어버리는 쓰나미의 모습으로 기세등등, 흥행 수위를 달리고 있는 재난영화 ‘해운대’는 사실 대규모의 해일을 보여주는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성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인 척, 촘촘히 짜 놓은 드라마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해운대’는 영화란 역시 볼거리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역설하는 작품이다. 충무로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감독 중 한 명인 윤제균은 ‘해운대’를 재난영화가 아니라 홈드라마 형으로 만들어 승부수를 던졌다. 개봉 2주 만에 500만명을 넘은 흥행지수는 그의 전략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나도록 쓰나미의 전조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해운대를 둘러싼 자잘한 일상들을 엮어 내는 데 주력한다. 윤제균의 장점은 다양한 캐릭터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되 기계적으로 결합시키지 않고 때론 이를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면모로 엮어 냄으로써 ‘현실의 인간’들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는 데 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늘 희극적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생활 환경은 그리 넉넉하거나 풍요롭지 않다. 사람들의 일상은 그래서, 지리멸렬한 인상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상하게도 늘 희망과 웃음이 떠돈다. 윤제균 영화의 미덕은 바로 그것, 곧 자연스러운 ‘서민성 = 진정성’의 미학에 있는 것이며 그의 영화가 그렇고 그런 장르영화에 불과한 듯 보이면서도 늘 다수의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릇 재난영화란, 가공할 자연재해나 크나큰 인재의 위협 앞에서 이를 극복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선보인다. 하지만 ‘해운대’에는 이렇다 할 영웅이 없다. 모두 다 평범하다 못해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대함은 평범함 속에서 찾아진다. 윤제균은 비교적 정밀하고 균형 있게 인물들의 ‘평범함 = 위대함’을 배치하려고 애쓴다.

윤제균이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쓴 대목은 아들 오동춘(김인권)의 면접시험을 위해 구두를 사러 가는 어머니의 행적이다. 해운대를 쓸고 지나간 쓰나미의 잔해 속에서 구두 한 짝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한 컷은 윤제균이 영화를 통해 늘 무엇을 얘기하려 애쓰는지 보여준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이지만 영화 속 어머니처럼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는 한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아무리 초대형 쓰나미가 몰아치더라도 세상은 꼭 다시 복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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