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지옥 충무로에서 가장 감각적인 제작자로 이름을 날렸던 고 정승혜 프로듀서의 유작 ‘불신지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한국 공포영화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수작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 이용주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2003년 ‘4인용 식탁’과 ‘장화, 홍련’ 등 수작들이 한창 쏟아져 나왔던 공포영화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작품들처럼 ‘불신지옥’은 공포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결국 우리들이 저질러 놓은 무엇에 의해 생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공포란 불가지(不可知)나 불가항력(不可抗力)의 무엇이 아니라 다분히 사회구조적이며 인간관계의 잘못에 의해 파생되는 부산물이란 것이다.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희진(남상미)은 어느 날 밤 동생 소진(심은경)으로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감기 고열로 동생의 전화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희진은 곧이어 아침에 걸려 온 엄마(김보연)의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동생이 하루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급히 집이 있는 소도시의 아파트로 달려간 희진은 이후 하루하루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된다.
위층에 사는 한 여자가 그녀의 눈앞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늘 음산해 보이던 아파트 경비가 하룻밤 사이에 독극물을 잔뜩 먹은 채 시체로 발견되는 등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실종됐다고 신고한 탓에 희진을 만나게 되는 형사(류승용) 역시 곧 그녀를 둘러싼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몸서리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희진의 옆집 여자(장영남)도 곧 목매 자살하고 1층에 살던 무당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제목은 ‘불신지옥’이지만 거기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불신에 대한 얘기보다는 맹신에 대한 얘기가 더 강한 작품이다. ‘불신지옥’이 아니라 ‘맹신지옥’인 셈이다. 영화는 자신의 믿음을 기계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려 할 때, 그럼으로써 믿음이 획일화되기 시작할 때, 믿음을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도구로만 사용할 때,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닌 것이다.
영화 속 엄마는 늘 희진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다그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엄마에게 희진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미 나에겐 지금이 지옥이야. 이것보다 더한 지옥이 어디 있겠어?!” 골치 아픈 사건에 휩싸이는 형사는 마음속에 지금 병으로 죽어 가는 아이 지은이가 공포다. 병실에서 만나는 아이는 늘 그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대고 그는 그런 아이를 곧 퇴원하게 될 거라며 달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지은이, 아빠 믿지?”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오히려 깊은 불신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불신지옥’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골격과 비명을 지를 만큼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장면들을 리드미컬하고 균형 있게 이어 붙인다. 신들린 동생 소진의 불가해한 표정과 눈초리 등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을 만큼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하고 무섭게 기억되는 것은 주변 어른들의 탐욕에서 비롯돼 이 어린아이에게 행해진 악행이다.
거기에 덧붙여진 엄마의 잘못된 믿음은 세상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셈이 됐는데 끊어질 듯 촘촘히 이어지는 이 이야기들은 영화 속 광경이 결코 허구가 아닌 실재의 것임을, 혹은 언제든 실제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불신지옥’은 공포영화가 그 어떤 장르의 영화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때의 작품들처럼 ‘불신지옥’은 공포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결국 우리들이 저질러 놓은 무엇에 의해 생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공포란 불가지(不可知)나 불가항력(不可抗力)의 무엇이 아니라 다분히 사회구조적이며 인간관계의 잘못에 의해 파생되는 부산물이란 것이다.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희진(남상미)은 어느 날 밤 동생 소진(심은경)으로부터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감기 고열로 동생의 전화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희진은 곧이어 아침에 걸려 온 엄마(김보연)의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동생이 하루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급히 집이 있는 소도시의 아파트로 달려간 희진은 이후 하루하루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된다.
위층에 사는 한 여자가 그녀의 눈앞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늘 음산해 보이던 아파트 경비가 하룻밤 사이에 독극물을 잔뜩 먹은 채 시체로 발견되는 등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기 때문이다. 동생이 실종됐다고 신고한 탓에 희진을 만나게 되는 형사(류승용) 역시 곧 그녀를 둘러싼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몸서리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희진의 옆집 여자(장영남)도 곧 목매 자살하고 1층에 살던 무당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제목은 ‘불신지옥’이지만 거기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불신에 대한 얘기보다는 맹신에 대한 얘기가 더 강한 작품이다. ‘불신지옥’이 아니라 ‘맹신지옥’인 셈이다. 영화는 자신의 믿음을 기계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려 할 때, 그럼으로써 믿음이 획일화되기 시작할 때, 믿음을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도구로만 사용할 때,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닌 것이다.
영화 속 엄마는 늘 희진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다그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엄마에게 희진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미 나에겐 지금이 지옥이야. 이것보다 더한 지옥이 어디 있겠어?!” 골치 아픈 사건에 휩싸이는 형사는 마음속에 지금 병으로 죽어 가는 아이 지은이가 공포다. 병실에서 만나는 아이는 늘 그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칭얼대고 그는 그런 아이를 곧 퇴원하게 될 거라며 달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지은이, 아빠 믿지?”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오히려 깊은 불신의 그림자가 떠오른다.
‘불신지옥’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골격과 비명을 지를 만큼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장면들을 리드미컬하고 균형 있게 이어 붙인다. 신들린 동생 소진의 불가해한 표정과 눈초리 등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을 만큼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하고 무섭게 기억되는 것은 주변 어른들의 탐욕에서 비롯돼 이 어린아이에게 행해진 악행이다.
거기에 덧붙여진 엄마의 잘못된 믿음은 세상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셈이 됐는데 끊어질 듯 촘촘히 이어지는 이 이야기들은 영화 속 광경이 결코 허구가 아닌 실재의 것임을, 혹은 언제든 실제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불신지옥’은 공포영화가 그 어떤 장르의 영화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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