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디지털서울페스티벌 디지털 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시네마디지털서울필름페스티벌(CinDi)’은 당혹스러우면서도 유쾌하고, 충격적이면서도 지루한, 한마디로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는 영화제다. 올해로 3회째임에도 불구하고 ‘시네마디지털서울’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것은 그 어느 영화제에서보다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25일까지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는 공식 경쟁작 15편을 두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어김없이 논란과 논쟁, 양보할 수 없는 극단의 평가들이 이어졌다. 디지털 영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디지털 영화의 미래와 아울러 영화미학 자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이 다시 한번 화두로 떠올랐다. 디지털 시대에 그 누구라도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가 모두 다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지에 대해 새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당혹스러운’ 영화들은 우리가 기존 영화의 관습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니냐는 반성도 갖게 했다.

경쟁작 15편은 다양한 장르,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홍기선 감독이 ‘선택’ 이후 6년 만에 발표한 ‘이태원 살인사건’과 같은 극영화를 비롯해 중국 자오 리앙 감독의 ‘고소’ 등 다큐멘터리, 일본 ‘야나카의 황혼빛’같은 혼합장르의 작품, ‘도쿄 온리픽’와 같은 애니메이션 등이 포함됐다.

평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작품은 중국 리우 지아인 감독의 ‘옥스하이드2’. 한 가족의 만두 만들기에 대한 얘기를 다룬 이 영화는 133분의 러닝 타임 동안 단 9개의 신(scene)만을 선보인다. 등장인물은 감독 본인을 포함해 실제 자신의 부모까지 단 세 사람. 극단적으로 지루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도발적이며 발칙하게 느껴진다. 꼭 디지털 영화로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미학을 실험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첫 신 하나만으로 20여분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은 영화의 표현 방식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느끼게 된다. 단지 만두를 빚는 일가족의 모습에 불과한데도 기묘하게도 이들의 얘기에 빨려들어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대를 모은 ‘이태원 살인사건’ 역시 호오가 크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1996년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사건을 다룬다. 두 명의 용의자가 잡혔고 둘 중 한 명은 분명 범인인데도 두 사람 모두 무죄로 석방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미스터리와 심리 스릴러, 수사극을 오가며 긴장감을 높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내는데는 다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다큐멘터리 ‘고소’는 국제영화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논란과 기피의 대상이 됐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자오 리앙은 호주 멜버른영화제 상영을 거부하는 등 이곳저곳에서 마찰을 빚어 왔다. ‘고소’는 베이징(北京) 남부역 주변에 모여 사는 정치경제적 난민의 얘기를 다룬다. 최첨단 자본주의를 향해가는 중국사회의 극단적으로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는 작품으로 감독은 이 다큐 영상을 1996년부터 촬영해 왔다. 곤혹스러운 내용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용감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품이라는 평가와 지지를 받았다.

뛰어난 작품들 중간중간 범작과 태작, 수준 이하로 평가받은 작품들도 이어졌다. 인도네시아의 극영화 ‘푸구’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네마디지털서울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최고와 최악의 작품을 과감하게 공존하게 하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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