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펀-천사의 비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제작자로 나섰다고 해서 화제를 모은 공포 스릴러 ‘오펀-천사의 비밀’은 매력과 짜증을 오가는 작품이다. 베라 파미가와 피터 사스카드 등 B급이긴 하지만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압축적이지 못하고 다소 중언부언한다는 점으로 보면 여지없이 ‘2% 부족함’이 느껴진다.

세 번째 아이를 유산으로 잃은 후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는 콜먼 부부, 곧 케이트(베라 파미가)와 존(피터 사스카드)은 새로운 아이를 입양함으로써 그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9살짜리지만 비상한 느낌이 드는 소녀 에스더(이사벨 펄먼)를 만난 이들은 단박 이 아이에게 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입양돼 집으로 들어 온 이사벨은 순식간에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든다. 에스더는 가족 한명 한명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점차 에스더의 끔찍한 과거와 그 비밀을 알게 된 케이트는 아이에게 맞서려고 하지만 남편 존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온몸을 전율케 하는 사건에 맞서 집안을 구하는 인물은 남편이 아니라 늘 아내다. 남자는 눈앞에 가려진 베일을 벗지 못하고 전전긍긍, 끙끙대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졸도를 하거나 먼저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이 영화에서도 남편의 모습이란 이 시대 졸렬한 남자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지만 늘 모성은 강하다. 여성이기에 앞서 아이들의 엄마는 자신 앞에 연쇄살인마가 있든, 꼭지가 완전히 돈 사이코 살인자가 있든 결국엔 당당하게 아이와 가정을 지켜낸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올바른 여성주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영화관람의 주도권을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잡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오펀-천사의 비밀’ 역시 그 같은 공식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과를 어느 정도 뻔히 예상할 수 있지만 마지막 반전은 나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점에서 참신성이 있다. 하지만 그 반전이란 게 좀 더 효과적이 되기 위해서는 앞의 전개가 좀 더 속도감이 있고 인물들간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강해야 한다. ‘오펀’은 파국과 반전이 있기까지 온 가족이 속수무책으로 에스더에게 당하고 사는 모습만 보여준다. 그만큼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선하고 바보 같은 가족 대 극악하면서도 영리한 에스더’간의 이분법 구조로 돼 있다는 얘기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이해하기는 편할 수 있어도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자꾸 시계를 보게 만든다.

에스더의 출신이 러시아나 에스토니아로 설정돼 있는 점도 눈에 거슬린다. 미국은, 그것이 사람이 됐든 문화가 됐든 혹은 그 무엇이 됐든, 외부로부터 이식된 무엇에 대해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것도 9·11의 여파일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9·11같은 참사가 벌어진다는 것을 우매한 미국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할리우드는 나 아닌 타자에 대한 공포를 줄곧 그리지만 그게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오펀’은 평온했던 가정을 누군가가 뒤흔든다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커티스 핸슨 감독이 1992년에 만든 ‘요람을 흔드는 손’과 비슷하다. 새삼 ‘요람을 흔드는 손’이 꽤 괜찮은 수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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