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년 전에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홍기선 감독의 ‘이태원 살인사건’은 리와 피터슨, 영화 속 이름으로는 알렉스(신승환)와 피어슨(장근석)인 두 사람 가운데 범인이 과연 누군가를 밝히려는 척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내몰릴 수 있는가이다.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정말 범인을 잡을 의지가 있었던 것일까’야말로 이 영화의 실체다.
영화는 두가지의 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나는 알렉스와 피어슨 두 사람 각자가 주장하는 범행 당일의 동선이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거나 반대로 또 한 사람을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는 박대식 검사(정진영)와 김 변호사(오광록)의 법정 공방, 곧 진실게임의 이면이자 심리적 갈등이다.
검사는 알렉스를, 변호사는 피어슨을 각각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계속될수록 두 사람, 특히 박 검사는 점점 더 회의에 빠지게 된다. 과연 범인은 진짜 범인인 것일까. 범인은 범인이 아니고, 범인이 아니었던 사람이 범인인 것이 아닐까. 나의 확신은 진짜 확신인 것일까. 미스터리로 빠져들어가는 사건만큼이나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미궁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실제 사건이 1997년 당시 집중적인 관심을 모은 배경에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돼 있는 불합리한 협정, 곧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주요한 요소로 작동했다. 거기에다 피어슨, 곧 피터슨의 아버지가 미군 사령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점도 이 사건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같은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다소 줄이려 애쓴다. 그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사회심리적 요인들을 포착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라는 공간은 한국과 미국의 기묘한 경계이자 팽창함과 동시에 점점 종속되고 있는 한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 안에 놓여진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자식들. 어쩌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천박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건은 당연히 미제(未濟)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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