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1997년 4월8일 오후 10시쯤,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홍익대에 재학중이던 조중필군이 온몸을 난자당한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갓 스물이 된 한국계 미국인 2명.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와 미국인 혼혈아 아서 피터슨이다. 처음엔 명백히 피터슨이 살해한 것으로 지목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사건은 이때부터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리와 피터슨 둘 다 철저하게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2명 중 1명은 범인이 확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둘 다 범인이 아닌 꼴이 돼버리고 만 것. 결국 두사람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사건은 영원한 미궁으로 빠진다. 과연 조군은 누가 죽였는가.

10여년 전에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든 홍기선 감독의 ‘이태원 살인사건’은 리와 피터슨, 영화 속 이름으로는 알렉스(신승환)와 피어슨(장근석)인 두 사람 가운데 범인이 과연 누군가를 밝히려는 척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에 의해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내몰릴 수 있는가이다.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보다 ‘당시 우리 사회는 정말 범인을 잡을 의지가 있었던 것일까’야말로 이 영화의 실체다.

영화는 두가지의 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나는 알렉스와 피어슨 두 사람 각자가 주장하는 범행 당일의 동선이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거나 반대로 또 한 사람을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는 박대식 검사(정진영)와 김 변호사(오광록)의 법정 공방, 곧 진실게임의 이면이자 심리적 갈등이다.

검사는 알렉스를, 변호사는 피어슨을 각각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만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계속될수록 두 사람, 특히 박 검사는 점점 더 회의에 빠지게 된다. 과연 범인은 진짜 범인인 것일까. 범인은 범인이 아니고, 범인이 아니었던 사람이 범인인 것이 아닐까. 나의 확신은 진짜 확신인 것일까. 미스터리로 빠져들어가는 사건만큼이나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미궁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실제 사건이 1997년 당시 집중적인 관심을 모은 배경에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돼 있는 불합리한 협정, 곧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주요한 요소로 작동했다. 거기에다 피어슨, 곧 피터슨의 아버지가 미군 사령관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점도 이 사건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같은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다소 줄이려 애쓴다. 그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사회심리적 요인들을 포착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라는 공간은 한국과 미국의 기묘한 경계이자 팽창함과 동시에 점점 종속되고 있는 한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 안에 놓여진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자식들. 어쩌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천박한 자본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건은 당연히 미제(未濟)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각자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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