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러버 할리우드 최고의 청춘스타 애슈턴 커처의 ‘S러버’는 한마디로 ‘아찔한’ 영화다. 매력남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들(idol)’스러워서 청소년 영화배우로 느껴졌던 커처가 섹스 장면을 보여줘서만은 아닌 듯싶다. 표현수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수입사가 슬쩍 흘린 홍보문구만으로도 8가지 체위가 나온다는데 영화를 본 사람들 기억엔 그 이상이다. 20대의 커처와 과감한 섹스신을 벌이는 40대 앤 헤이시의 농염한 육체란! 영화란 때론 이렇게 머리보다는 몸으로 먼저 느끼게 하는 맛을 준다.
‘S러버’의 줄거리는 간단한 듯하면서도 간단치 않다. 겉으로는 ‘번쩍번쩍’ 가벼운 척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혼돈과 방황의 의식, 그 내면에 대한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관객이라면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영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와 ‘아메리칸 지골로’가 떠올려지는 이 영화는 어쩌면 두 작품을 절묘하게 뒤섞어 2000년대판으로 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1969년 영화로 더스틴 호프먼과 존 보이트가 주연을 맡았으며 ‘아메리칸 지골로’는 1980년 폴 슈레이더 감독이 만든 영화로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창남(娼男)에 대한 얘기다. ‘S러버’ 역시 말이 좋아 ‘작업남’이지 사실은 돈 많은 여자에게 얹혀 사는 ‘몸 파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니키(커처)는 귀여운 외모에 뛰어난 ‘침대 기술’로 뭇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다. 베벌리힐스 갑부급 여자들만을 상대로 떠돌며 살아가는 그가 새로 만나게 되는 중년여성은 사만다(헤이시). 사만다에게 얹혀 초호화 빌라에서 지내면서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며 살아가던 니키는 어느 날 카페 웨이트리스인 헤더(마가레타 레비에바)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청순하리라 믿었던 헤더가 사실은 그 이상으로 돈을 좇아 남자를 전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S러버’는 꽤 심각한 사회의식을 부담 없는 이야기, 곧 섹스 이야기로 끌고 간다. 하지만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커처의 미끈한 몸매가 아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욕망이다. 커처라는 ‘육질남’이 대변하는 LA라는 공간, 곧 미국식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곳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게 하며 점점 더 큰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 안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다 할 가치를 상실한 채 떠돌며 살아간다. 영화 속 니키는 화려함을 추구하며 쿨(cool)하게 살아가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 빡빡한 자본의 굴레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는, 지금의 무기력한 청춘을 상징한다. 베벌리힐스가 됐든 아니면 여기가 됐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자신의 몸뚱이를 파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 니키가 마냥 한심하고 얄미워 보이면서도 끝내 미워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니키가 냉장고에서 죽은 생쥐를 꺼내 어항에 넣어주고 그걸 한입에 덥석 삼키는 황소개구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입에 먹어치우는 절대 약육강식의 사회. 하지만 그 안에서 정작 자신은 뭘 먹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이들. 그래서 빠져드는 소비와 탐닉의 세계. ‘S러버’는 달콤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오히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S러버’의 줄거리는 간단한 듯하면서도 간단치 않다. 겉으로는 ‘번쩍번쩍’ 가벼운 척하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혼돈과 방황의 의식, 그 내면에 대한 성찰(!)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관객이라면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영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와 ‘아메리칸 지골로’가 떠올려지는 이 영화는 어쩌면 두 작품을 절묘하게 뒤섞어 2000년대판으로 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1969년 영화로 더스틴 호프먼과 존 보이트가 주연을 맡았으며 ‘아메리칸 지골로’는 1980년 폴 슈레이더 감독이 만든 영화로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창남(娼男)에 대한 얘기다. ‘S러버’ 역시 말이 좋아 ‘작업남’이지 사실은 돈 많은 여자에게 얹혀 사는 ‘몸 파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니키(커처)는 귀여운 외모에 뛰어난 ‘침대 기술’로 뭇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다. 베벌리힐스 갑부급 여자들만을 상대로 떠돌며 살아가는 그가 새로 만나게 되는 중년여성은 사만다(헤이시). 사만다에게 얹혀 초호화 빌라에서 지내면서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며 살아가던 니키는 어느 날 카페 웨이트리스인 헤더(마가레타 레비에바)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청순하리라 믿었던 헤더가 사실은 그 이상으로 돈을 좇아 남자를 전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S러버’는 꽤 심각한 사회의식을 부담 없는 이야기, 곧 섹스 이야기로 끌고 간다. 하지만 데이비드 매켄지 감독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커처의 미끈한 몸매가 아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욕망이다. 커처라는 ‘육질남’이 대변하는 LA라는 공간, 곧 미국식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곳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뭔가를 소비하게 하며 점점 더 큰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 안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다 할 가치를 상실한 채 떠돌며 살아간다. 영화 속 니키는 화려함을 추구하며 쿨(cool)하게 살아가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 빡빡한 자본의 굴레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의 없는, 지금의 무기력한 청춘을 상징한다. 베벌리힐스가 됐든 아니면 여기가 됐든,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자신의 몸뚱이를 파는 일밖에 남아있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 속 니키가 마냥 한심하고 얄미워 보이면서도 끝내 미워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니키가 냉장고에서 죽은 생쥐를 꺼내 어항에 넣어주고 그걸 한입에 덥석 삼키는 황소개구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입에 먹어치우는 절대 약육강식의 사회. 하지만 그 안에서 정작 자신은 뭘 먹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이들. 그래서 빠져드는 소비와 탐닉의 세계. ‘S러버’는 달콤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오히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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