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터즈: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그에게 더 이상 할리우드 악동감독 따위의 별칭을 붙이기 어렵게 하는 작품이다. 타란티노는 이제 명백히 거장의 대열에 올라섰으며 그의 연출 기량은 최고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타란티노라는 인물이 역사와 정치, 각종의 문화적 인식이 얼마나 깊은지, 이 사람이야말로 세계 영화계의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저수지의 개들’에서 ‘데쓰 프루프’에 이르는 그의 전작 모두의 성과를 집대성한 작품이자 대표격 작품이다. ‘펄프 픽션’이나 ‘킬 빌1, 2’같은 영화도 이번 작품에 비하면 소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일단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만만치 않다. 외견상으로는 알도 중위(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특수부대 ‘개떼들’의 활약이 기둥을 형성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은 전체 이야기 가운데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처럼 중심이 주변이 되고 주변이 중심이 되는, 변증법의 미학이 돋보인다. 그래서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듯, 모두가 주인공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주요 캐릭터가 죽어 나가고 반면에 죽을 운명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는 끝까지 생존하는,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2시간 반에 이르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게 할 만큼 영화가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알도 중위와 ‘개떼들’보다 이야기의 중심에 보다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인물 각(角)은 독일 나치의 한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과 그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는 쇼샤나(멜라니 로랑)라는 유대인 여성이다. 이 둘의 운명적 관계는 오프닝 신에서 설명되는데, 한스가 프랑스의 한 농가에 찾아와 쇼샤나 가족을 몰살하는 장면은 학살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악마성 때문에 진정으로 소름이 끼친다. 쇼샤나는 이후 한스의 마수에서 벗어나 프랑스 한 작은 동네에서 정체를 숨긴 채 극장장으로 살아간다.

여기에 에피소드가 또 하나 겹치는데 쇼샤나의 극장에 독일 전쟁영웅 프리드리히(다니엘 브륄)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쇼샤나에게 홀딱 반한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영웅담을 담은 다큐멘터리 ‘조국의 영광’의 상영을 상부에 요청하게 되고 이 상영회에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뿐만 아니라 히틀러까지 참석한다는 비밀이 알려진다. 이 사실은 즉각 연합군에 전달되고 영국 정보부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암약하는 영국 스파이이자 유명 여배우인 브리짓 폰 해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에게 히틀러 암살 지령을 내린다. 알도 중위의 부대 ‘개떼들’에는 브리짓을 지원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바야흐로 이제 모든 등장인물들이 쇼샤나 극장에 모이게 되는 순간이다.

오프닝 신이 ‘정서적 잔혹함’ 때문에 소름을 끼치게 했다면 브리짓과 ‘개떼들’ 대원이 만나는 술집 신은 연출의 정교함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 10분가량의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타란티노는 자신이 얼마나 독창적인 인물인가를 여지없이 입증해 냈다.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의 엇갈리는 총격 신을 보다 업그레이드한 이 장면은 추후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기에 충분해 보인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