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국 국립과학기술원은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심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부제는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뉴욕타임스는 보고서를 인용해 “세계적 유해 기상현상이 인류의 턱밑까지 다가왔지만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논평했다. 온난화 경고로 짐작했다면 틀렸다. 책의 주제는 ‘한랭화’였다. 1945~1968년 북반구 지표면의 평균 온도가 섭씨 0.28도 떨어진 것이 한랭기 도래를 걱정하게 된 단초다.

2004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지난 2000년 동안 지구가 가장 더웠던 시기는 로마제국과 중세시대였고, 그때는 지금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았는데도 지금보다 더 더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의 코미디언은 아예 이렇게 비튼다. “1만5000년 전에 빙하가 녹은 것은 네안데르탈인들이 사상 최초로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해서가 아니었다.”(빈스 에버르트,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온난화가 과연 파국을 부르는지, 이산화탄소가 그 멍에를 다 뒤집어써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설(異說)이 존재한다. ‘기후 회의론자’들은 로마·마야제국이 온난기 때 번성했고 한랭기 때 붕괴했음을 상기시킨다. 지난 수십 만년에 걸쳐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온이 오른 후에 상승했을 뿐 기온이 오르기 전에 상승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는다.

회의론자들은 온난화 이론이 끔찍한 재앙을 예시하면서도 그 메커니즘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서 종교와 결부짓는다. 사실 해수면 상승, 지옥불 같은 더위, 전염병 창궐 등은 성경을 떠올릴 만하다. 그러고 보니 탄소 배출권 거래도 중세의 면죄부 거래와 닮았다. 이 분야 ‘성인’ 반열에 오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스스로가 ‘영적 행동’임을 언급한 적도 있다.

많은 이설의 공격 속에서도 온난화론은 살아남아 정통 교리로 굳어졌다. 힘은 더 커졌다. 이단(異端)으로 찍히면 국제 사회에서 파문을 각오해야 한다. 선진국·개도국이 따로 없고, 좌·우 이념도 뛰어넘는다. 7일 시작된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105개국 넘는 정상들이 얼굴을 내밀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쟁하듯 믿음 서약과 헌금 약속을 내놓는 경건함 뒤편에서 자국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세속적 계산이 치열하다.

[[김회평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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