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관 지하 1층에서 나란히 전시 중인 현대조각가 정현, 20세기 초 정학교와 18~19세기 이인문의 작품은 마치 동일 작품의 드로잉, 회화, 입체작품처럼 유사하다. 침목 아스팔트 등을 소재로 특유의 에너지를 인체의 형상으로 표현해온 정현의 조각은 괴석과 난죽을 묵직하게 담아낸 정학교의 ‘죽석도(竹石圖)’와 빼닮아, 고서화가 현대조각의 드로잉처럼 여겨질 정도다. 또한 봄을 기다리는 듯한 정현의 조각은 한겨울에 매화를 찾아가는 이인문의 ‘심매도(尋梅圖)’와도 겹쳐진다.
공자의 역사서 이름을 내세운 ‘춘추’전을 마련한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광주, 부산, 서울 등지에서 막을 올리는 비엔날레의 계절을 맞아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독자성·정체성을 모색해 보는 기획”이라고 밝혔다. 9, 10월 두 달 동안 계속되는 ‘춘추’전에는 현대작가 11명이 작업한 회화, 조각, 영상, 설치작품이 고서화와 짝을 이루며 장르, 기법의 차이를 초월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뿌리를 드러낸다. 화랑측과 작가 간의 협의를 거쳐 주제 등이 통하는 고서화와 현대미술의 짝짓기가 이뤄진 것.
신관 지하 2층에 전시된 정선의 ‘박연폭포’와 이세현의 ‘비트윈 레드’도 이번 전시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폭포의 물길을 두 배로 늘려 힘찬 폭포의 위세를 묘사한 정선의 ‘박연폭포’는 군대에서 경험한 야간투시경 속 붉은 풍경을 되살린 이세현의 풍경화와 나란히 걸려,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진경’의 의미를 주목하게 한다,
한 척의 배가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는 한계륜의 영상설치는 18~19세기 김유근의 수묵산수도와 더불어, 무위자연과 은일의 정서라는 공감대를 보여준다. 또한 붓으로 한 획 한 획 단숨에 그린 송현숙의 그림과 18세기 윤순의 초서가, 천장에 매달린 리경의 인물설치 작품은 김정희의 행서와 나란히 전시, 현대미술에 깃든 전통 서체의 영향을 실감케 한다.
이 밖에 세필로 촘촘하게 메운 김홍주의 그림과 조선 후기 대원군의 난 그림은 단순함에 깃든 작가의 인생 역정과 더불어 강한 에너지의 공통분모를 일깨운다. 전시장에 나란히 전시 중인 정주영-정선 등의 작품도 시대를 초월해 우리 미술의 공통적인 정서를 담아낸다.
한편 무수한 선으로 묘사된 목욕탕 풍경에 작가 자신인 양 나체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영빈의 그림은 19세기 여인 초상화와 짝지워져 있다. 현대 젊은 작가의 그림에서 터럭 하나도 다르게 그리지 않으며 인물의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을 짚어낸 것.
이 밖에 신학철, 윤석남, 이용백의 작품도 고려 불화 등 작자 미상의 고서화와 한 흐름에서 한국미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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