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요메이(陽明)문고에 소장된 그림 ‘과거은영연도(科擧恩榮宴圖)’는 1580년(선조 13) 선조가 성균관에 친히 와서 치렀던 비정기 시험인 알성시(謁聖試)의 급제자를 위해 베풀어줬던 연회를 그린 기록화다. 3칸짜리 건물 안에 연회를 주관한 영의정 박순 등 시험관 6명이, 건물 밖 기단 오른쪽과 왼쪽에는 이항복 등 문과급제자 12명과 무과급제자 38명이 각각 앉아 주악에 맞춘 기생의 춤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에서 당시 흥겨웠던 연회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은영연이 끝난 다음 날 문·무과 급제자는 모두 문과 장원 집에 모여 왕에게 사은례를 드렸고, 그 다음 날에는 무과 장원 집에 모인 뒤 성균관 문묘에 나가 알성례를 드렸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들은 대과·소과를 막론하고 사흘에서 닷새 동안 시가행진을 했다. 1533년(중종 33) 알성시에서 문익공 정광필의 손자 정유길이 장원급제를 하자 임금이 일등 풍악을 내려 기생 수백 명에 둘러싸인 채 집까지 왔다고 한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조선 양반의 일대기를 옛 그림과 옛 글로 재구성한 책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관직 진출의 통로였던 과거시험을 다룬 장이다. 고려대 박사과정을 수료한 역사학도인 저자는 김홍도의 ‘평생도’ 등 옛 그림을 토대로 과거를 치르는 양반이 거치게 되는 소소한 과정부터 시험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에피소드를 펼쳐보인다. ‘옛 그림에서 만난 우리무예풍속사’ 등을 펴냈을 정도로 전통 무예에 일가견을 가진 저자는 ‘경기감영도’나 ‘북새선은도’ 등을 통해 무과시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조선후기 대표적 풍속화인 ‘평생도’를 중심으로 최근까지 연구된 양반의 생활사 관련 자료를 활용해 양반의 일평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평생도’는 옛날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삶의 내용을 8폭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태어나서 첫 생일날을 그린 ‘돌잔치’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지는 ‘혼인’, 과거에 장원 급제해 어사화를 꽂고 사흘 동안 거리를 순회하는 ‘삼일유가’, 남들이 다들 인정하고 부러워할 만한 관직을 거쳐 은퇴할 때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과거 및 관직과 관련된 내용이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어 과거 급제와 관직 생활이 조선시대 양반의 일생에서 차지한 비중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돌잔치, 교육, 혼례, 과거 시험, 관직의 길, 회갑, 상례와 제례 등 모두 7장으로 짜여진 책의 구성도 ‘평생도’의 전개와 거의 일치한다. 저자가 김홍도의 ‘모당 홍이상 평생도’ 등 현재 전하는 다양한 ‘평생도’ 그림과 ‘단원풍속화첩’, 구한말 3대 화가 중 한 사람인 김준근의 그림,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였던 이문건이 손자를 키운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양아록(養兒錄)’ 등의 옛 글을 통해 복원해 낸 양반의 일상생활은 매우 구체적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양반 중심 조선 사회의 희생자였던 여성과 노비의 삶을 언급하고 현대인의 삶이 ‘평생도’에 그려진 양반의 삶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지적한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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