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학 / 주 짐바브웨 대사

짐바브웨에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은 풍습이 없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수확기를 앞둔 추석날 보름달을 보며 풍작을 기원하듯이, 이곳 짐바브웨 사람들도 ‘보름달’에 대해서는 유독 좋은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는 나쁜 정령이 깃들어 정신이 병든 사람들도 제 정신이 돌아온다고 하며, 특히 우기(11~3월)를 앞두고 보름달 주변이 오렌지빛으로 물들면 풍년이 든다고도 한다. 보름달과 풍년을 연결하는 것은 우리네와 비슷한 것 같아 자못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초승달은 불길한 것으로 여겨 이때에는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고, 어떠한 의식이나 축제도 갖지 않는다고 하니, 오히려 초승달이나 반달에서 문학적인 감흥을 얻는 우리와는 또 다른 것 같다. 차고 기울어짐을 반복하는 달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떠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좀 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주기로 탈바꿈하는 초승달과 보름달을 하나의 생명이 영속적으로 재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2008년말 이임하는 스페인대사를 위해 주최했던 관저 만찬을 빼놓을 수 없다. 그날은 12월1일이었는데, 마침 달을 중심으로 목성(Jupiter)과 금성(Venus)이 양편에 위치하여 절묘한 삼각형을 이루었던 날이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천문 현상이다. 당시 이 모습을 두고, 한 참석자가 짐바브웨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나타날 징조라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붙였던 기억이 난다. 농담 삼아 한 이야기지만, 당시 짐바브웨가 대선을 전후하여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였던 부정선거로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었고, 무가베 대통령과 서방 국가들이 뿌리깊은 반목을 거듭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만큼,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기기에는 뼈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짐바브웨의 여야는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적인 대타협을 도출하면서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해 가는 등 ‘아프리카의 식량창고(bread basket)’로 불렸던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노력중이다. 정세가 안정되면서, 경제도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특히 세계 3대 폭포로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외국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짐바브웨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나라가 가진 풍부한 광물자원 때문이다. 그간 하이퍼 인플레이션, 콜레라 등 부정적 소식들로 우리 언론 지면을 장식하면서 관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던 이 나라가 사실은 석탄, 철광석, 니켈, 크롬, 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지하자원의 보고였던 것이다.

정치·경제계 인사의 교류로 신뢰를 쌓아 나가던 양국 관계도 올해 5월 창기라이 총리의 방한을 통해 그 정점에 달했으며, 이후 포스코 등 우리 기업의 투자 진출을 통해 차츰 가시적 성과를 생산해내고 있다. 불과 16년전 우리 국민의 입국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할 수 있다.

사바나 기후답게 다양한 식생을 자랑하는 짐바브웨지만, 요즘 하라레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제, 오늘, 내일(yesterday-today-tomorrow)’이라는 꽃은 한 나무에 보랏빛, 분홍빛, 그리고 흰빛의 세 가지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 장관을 연출한다. 무엇보다도 환한 보름달 빛을 받은 모습은 로맨틱하기까지 해서 뭇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오랜 식민지 역사와 독립투쟁, 그리고 이후 겪었던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짐바브웨의 ‘내일’은 무슨 색깔일까.

◆ 오재학(56)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제11회 외무고시 ▲외교통상부 홍보과장 ▲주벨기에 참사관 ▲외교통상부 구주국 심의관 ▲주싱가포르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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