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신간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11월1일부터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원제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주류 경제학에서 들을 수 없었던 23가지의 이야기(Things)들을 구체적 자료와 사례를 통해 조목조목 전하고 있다.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장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소리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Thing 1). “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부에 대해 널리 퍼진 불신이 근거가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Thing 12).
이런 주장들을 보면, 이 책이 선진국에 의해 주도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부분적으로 박정희 식의 계획 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온 기존 저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장 교수는 28일 오후에 열린 간담회에서 “2007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좀 더 대중적인 경제서를 써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며 “독자들이 유명한 사람들(경제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사고하기를 바란다”고 집필 취지를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30년 동안 실천된 경제학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을 뿐”이라고 쓸 정도로 자유시장 경제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그는 영국 옵서버지 서평자 존 그레이가 언급한 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반자본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위기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로 개혁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장 교수는 이번 책에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시스템이라고 믿는다”고 적시했다. 한국어판 부제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인 것은 그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케인스 전기 3부작으로 유명한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촌평이 절로 떠오른다. “통렬하고 재미있다”.
통렬한 것은 역시 그의 직설적 어법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2008년 위기를 불러올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사실 그들은 1980년대 초 이후 크고 작은 수십 개의 금융 위기에도 책임이 있다. 금융 규제 철폐와 무제한적 단기 이윤 추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준 것이 바로 그들이다”(Thing 23).
“시장에 맡겨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Thing 3).
그에 따르면 선진국 사람들이 일한 것에 비해 임금이 높은 것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이민을 억제하는 이민 정책과 함께 그 나라의 일부 기업인이나 과학자 등의 생산성이 높아서다. 그런데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열정에 앞서 그 나라가 갖추고 있는 시스템 덕분이라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경제공동체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시스템 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책이 특별히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시각들을 파격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Thing 4)가 단적인 보기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터넷의 속도에 경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 측면에서 20세기 초에 등장한 전보가 더 위대했다. 전보는 배나 말에 의존하던 것에 비해 소식을 2500배나 빨리 전할 수 있게 했지만 인터넷은 팩스에 비해 100배 정도 더 빨라진 것뿐이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가사노동을 쉽게 만들어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을 가능케 했고, 이에 따라 전 세계인의 생활 방식은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인터넷은 사람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크게 바꿨지만 세탁기만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진 못했다. 장 교수는 “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개도국의 시장 개방, 과도한 금융산업 육성 등이 정보통신(IT) 기술의 발전 때문에 불가피하다’라는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다. ‘지식사회니까 제조업보다는 첨단 서비스업을 육성하자’는 정책에 그는 반대한다. 현실을 보면 서비스업만으로 사는 나라는 없다. 서비스업 강국이라는 스위스·싱가포르 등도 사실은 1인당 제조업 생산이 세계 5위권 내에 든다. 개도국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서비스 산업 위주의 경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탈산업화 환상이 낳은 착시현상일 뿐이다. 선진국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한국도 현 단계에서 제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이 제조업을 따라오니 한국은 금융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 미국·영국 등이 한국에 자리를 절대로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금융업에 매달리기보다는 제조업 기반을 더 확실히 다지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이런 주장들은 자유무역체제의 부정적 측면만 극대화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똑같은 자료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으니 내 책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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