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의 몸은 나에게 삶, 사랑, 그리고 의식을 주었다.…
그녀의 순결하고 감명적인 피는,
그녀의 뺨에서 말을 하고 너무나 훌륭히 정련되어서,
그녀의 몸도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녀는, 그러므로 풍요롭게 널리 보금자리를 주었던 그녀는, 떠났다.
이 책은 영국의 성직자 시인 존 던(1572~1631)의 시 ‘영혼의 과정에 대하여: 두 해째의 기념일’로 시작한다.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책을 헌정하며 올린 시다. 존 던은 연애시 ‘노래와 소네트’로 유명한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의 시인. 그는 사랑의 온갖 심리를 대담하고 정치한 이미지를 구사해 불굴의 정열과 냉철한 논리, 그리고 해박한 지식의 시로 빚어내 20세기 현대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성직자로는 이례적으로 순결한 영혼과 뜨거운 몸을 논리적으로 아름답게 연결한 이 시인은 정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 받아온 몸을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복권시킨 실용주의 철학자인 저자와 깊은 연관성이 느껴진다. 또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헌시를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핍박 받아온 여성의 몸의 복권을 주장하는 저자의 의도도 느껴진다.
이데아론에 바탕한 플라톤의 이성중심의 철학,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으로 정신의 우위를 강조한 기독교의 영향으로 서구에서 몸에 대한, 특히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뿌리 깊다. 이 때문에 몸(body)은 사실상 스스로 주체이면서 대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자주 마음(mind)과 대조돼 무감각하고 죽어있는 ‘물건’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래서 ‘몸뚱이(flesh)’로 비하하기도 한다. 저자는 ‘몸(body)’이라는 단어의 이같은 편견 때문에 보다 중립적인 ‘신체(soma)’라는 단어를 써 ‘신체미학(somaesthetics)’이라는 용어로 ‘몸의 의식’을 깨운다. 그러나 이미 10여년 전부터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예술의 영향으로 ‘몸’이 복권되고 오히려 그 정도가 지나쳐 문제가 되는 분위기에서 ‘신체’라는 용어는 ‘몸’이라는 말보다 부정적으로 느껴져 ‘소우머(soma)’를 굳이 ‘신체’라고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뿌리 깊은 몸에 대한 편견을 미셸 푸코, 메를로 퐁티, 시몬 드 보부아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윌리엄 제임스, 그리고 존 듀이 등 6명의 철학자들을 통해 수정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이론에 최신 신경과학과 심리학적 관점, 저자가 직접 배운 동양의 명상법, 신체교육과 치료의 전문적 과정 등을 적용, 확장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푸코는 자기 인식과 자기 변형의 중심으로 몸을 옹호한다. 푸코의 ‘자기 꾸미기’는 보디빌딩이나 패션으로 자신의 외양을 가꾸는 것뿐 아니라 태도나 성격 등 내부감각을 변화시키는 것도 포함한다. 이 같은 푸코의 경험적 변형의 중심은 몸에 있어서의 쾌락(pleasure)의 경험이다. 그는 고정관념이나 관습적 한계가 창조적 자기만족과 성숙의 가능성을 억제하기 때문에 ‘쾌락을 끊임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강력한 약물과 동성애적 사도마조히즘까지도 옹호한다.
저자는 푸코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그가 최대한의 쾌감을 얻기 위해 부드러운 실천과 미묘하고도 조용한 즐거움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교육되거나 정화되지 않은 상태의 몸의 자발성, 즉각성 그리고 내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으며 보부아르는 주류 세력인 젊은 남성이 아닌 이들의 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소외되고 부정되고 있는지 비판했다. 저자는 비반성적인 몸 그대로의 가치를 발견한 메를로퐁티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하고 보부아르의 소외된 몸의 비판을 지지, 소외된 여성과 노인의 몸에 대한 건강하고 이상적인 복권을 모색했다.
분석심리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몸의 감각을 정서, 결단력, 감각 등 정신의 개념을 끌어들인 철학적인 설명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저자는 미학과 윤리를 몸에 연결시킨 비트겐슈타인의 신체적 반성을 민족적, 인종적 무관용까지 확대시켰다.
저자는 몸의 느낌이 정신적 삶의 모든 영역을 설명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한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를 설명하고 몸과 마음을 통합체로 볼 것을 주장한 존 듀이의 철학을 지지, 통일적 심신의 일원론으로 몸의 철학 구축을 시도했다. 저자는 그러나 에로틱한 몸의 중요성을 경시한 두 사람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저자는 신체미학이 삶의 예술로 몸의 경험과 숙련된 개선을 철학의 중심에 둔 원리라고 결론지었다. 근대의 데카르트주의와 관념론에 의해 강화된, 지배적인 플라톤주의의 전통이 그보다 더 오래된 고대와 동양의 사상을 외면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몸을 통해 살고,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하기 때문에 몸에 대한 연구, 돌봄 그리고 개선이 철학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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