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법원 13명에 무죄… “또 생명 위기”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해 마을 남성 14명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파키스탄 여성 무크타란 마이(39·사진)의 9년에 걸친 기나긴 법정 투쟁이 사실상 패배로 끝났다. 21일 대법원은 피고 1명에게만 종신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전원을 무죄 석방했다.

마이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성폭행 피해를 법정에 고발, ‘이슬람권의 잔다르크’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다. 마이는 유럽위원회의 인권상 등 많은 상을 받았으며, 그의 자서전은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순위 3위에 오를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현지 유력 일간지 ‘더 돈(The Dawn)’은 21일 “수백년에 걸쳐 이어져온 부족사회의 폭압을 용기 있게 고발해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돼온 마이가 이번 판결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펀자브지방의 작은 마을 미르와라에서 타틀라 부족 일원으로 태어나 성장한 마이는 지난 2002년 마을의 실권을 쥐고 있는 마스토니 부족회의로부터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라며 집단성폭행 형에 처해졌다. 12세의 동생이 마스토니 부족 소녀와 ‘부당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극도로 보수적인 파키스탄 이슬람 부족사회에서 성폭행당한 여성은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마이는 달랐다. 범인 14명을 처벌해달라며 법정투쟁을 시작, 지방법원으로부터 이 중 6명에 대한 사형선고를 이끌어낸 것. 비록 8명이 무죄 석방되기는 했지만 파키스탄 인권 사상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2005년 고등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6명 중 5명의 무죄를 인정했다. 마이는 좌절하지 않고 대법원에 즉각 항소했다.

대법원이 마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소녀의 오빠를 제외한 5명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뚜렷한 물증’, 즉 디옥시리보핵산(DNA)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변호인단은 “ 많은 마을 사람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무시한 대법원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라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미르와라를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여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는 로이터, AFP통신 등과 전화인터뷰에서 “석방된 남자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나와 내 가족을 살해할 것”이라면서도 “나는 위대한 알라의 법정 이외에 어떤 법정도 신뢰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알라의 자비에 맡기기로 했다”고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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