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의 궁평항 인근에 자리한 한옥, 옥란재를 다녀왔다. 철근과 콘크리트 숲이 내뿜는 독한 기운에 마음을 다치면 가끔 찾아가 쉬는 곳이다. 이번엔 모처럼 학생으로 돌아가 수업을 듣고 왔다. 이름하여 숲 학교.
학생들의 나이와 직업이 이토록 다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도 있고 여대생도 있다. 사진작가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여기서는 학생이다. 네다섯살 먹은 아이들은 수업을 땡땡이치고 흙장난을 하거나 연못가의 오리떼를 쫓아다녔지만 이 학교에는 시험도 성적표도 없다.
옥란재 주변의 원림을 산책하며 식물학자 정헌관 박사가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를 듣다보면 칠판 없는 수업 시간은 훌쩍 날아가 버린다. 여태 500만 그루쯤의 나무를 심고 신품종 개발에 괄목할 성과를 이루기도 한 육종학자는 나무가 아니라 가까운 친구 소식을 전하듯 살갑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항암성분이 있는 엄나무엔 왜 가시가 많을까? 우울증 치유효과가 뛰어난 피톤치드는 나무의 똥일까, 오줌일까? 아까시나무는 알려진 것처럼 정말 쓸모없고 나쁜 나무일까? 오동나무에 동그랗게 뚫린 저 구멍은 어느 새의 집일까?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호기심을 일으키는 질문으로 시작된 수업은 차츰 깊고 넓어져 갔다. 버드나무 추출물로 아스피린을 만들기도 하지만, 결국 숲은 의학, 미술, 음악, 철학, 문학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가 1200종이나 된다는데 내가 이름과 모양을 아는 나무를 꼽아보자니 열 손가락을 채우기가 힘들다. 그뿐인가. 일생 동안 나무와 주고받는 호흡과 먹거리를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대략 8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기본은 하는 것이라는데, 나란 인간은 여태 몇 그루를 심었나….
“…잡목은 없습니다. 모든 나무들은 이름이 있고 제 역할이 있습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나무들을, 내가 그 이름을 모른다고 잡목이라 부르지 마세요.”
그 얘기를 들으며 명예도 영광도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떠올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리라. 이기적이고 성마른 리기다소나무와 더디 자라지만 배려와 상생의 본성을 타고난 조선소나무 아래 서서, 그 생태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인문학적 사유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수업이 끝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음악회가 열렸다. 옥란재 안주인이 이른 봄 솔순으로 담근 주스와 막 수확한 포도를 먹으며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었다. 학생 입장으로는 이런 호사가 없으나…머릿속으로 자본주의적 주판알을 튕겨본 나는 숲학교 교장선생님 홍사종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며 힘들게) 숲학교를 여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그는 숲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숲은 저만치 있는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입니다. 나무와 사람, 그 생명의 뿌리는 서로 연결되고 순환합니다. 숲이 망가지면 우리의 삶도 무너집니다….
어찌 모르겠는가. 아이들이 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하루라도 벗어나 풀잎을 만져보고 숲길을 걸어보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깊은 숨을 쉬는 걸 보고 싶었을 것이다. 숲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나누고 싶어 안타까웠을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낮과 밤이 뒤섞이는 어스름 무렵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이 계절은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메타세콰이어 숲 아래 앉아, 낮과 밤이 바뀌면서 동시에 여름과 가을이 뒤섞이는 시간과 공간을 지켜보았다. 햇살이 사위면서, 배롱나무 가지 끝마다 연분홍 꽃더미가 화사하다. 바람이 스치니 눈이 사르르 감긴다. 풀벌레소리가 소란하며 고요하다.
옥란재는 당호(堂號) 앞에 ‘책읽는 집’이라는 말이 얹혀 있지만 이곳에 와서 책을 읽어본 기억은 없다. 여기에 와서는 그저 이렇게 나무와 숲을 읽다 돌아간다. 커다란 치유와 평화를, 책 대신 숲과 바람이 읽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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