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며느리가 몰래 지원…‘아이돌 메들리’ 하루만에 마스터
84세 왕언니 노강진씨
청춘합창단에 지원서를 보낸 사람은 3200여명이었다. 그 중 오디션을 볼 수 있는 1차 합격자는 200명이었다. 제작진으로부터 “1차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노강진 어르신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작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지원서를 보낸 까닭이었다. “저는 3남매를 뒀는데, 모두 잘 성장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어요. 그게 제 일생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청춘합창단은 요즘 소녀시대, 2AM 등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 메들리를 연습하고 있다. 오는 28일 열리는 KBS 전국합창대회 본선 경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 말의 서울 예선 대회에서는 합창단의 지휘를 맡은 김태원이 작사·작곡한 노래 ‘사랑이란 이름을 더하여’를 불렀다. 본선에서는 그 노래뿐만 아니라 아이돌 메들리를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80이 넘은 노강진 어르신이 아이돌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처음에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편곡을 잘 해주셔서 그런 지, 여덟 곡 메들리를 하루 만에 익혔어요.”
하루 종일 합창 연습을 하고도 생생한 음성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평생 노래를 즐기며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만, 노래 속에서 마음의 천국을 찾았어요.”
그는 신앙생활을 하며 성가대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다. 최근엔 집 근처에 있는 서울 강남복지원에 다니며 합창뿐만 아니라 하모니카 연주, 시작(詩作) 등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게 하니까 나이 먹어서도 늘 바빠요.(웃음)”
두 살 위인 남편도 매일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다. 노강진 어르신은 청춘합창단의 후배들이 남편 흉을 앞다퉈 볼 때 넌지시 한 마디 던진 적이 있다. “이 세상에 부부 간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는 “부부간에 못마땅한 게 있어도 자식을 위해서 조금씩 양보하고 살면 그만한 보람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청춘합창단은 황혼에 찾아온 선물이에요. 80대가 되어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껴요.”
어릴때 음악공부 꿈 접었었지만 혼자서 늘 가곡 불러와
폭풍 테너 정병학씨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외모와 달리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닌 정병학씨. ‘폭풍 테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청춘합창단 동료들의 추천으로 테너 솔리스트를 맡았다.
합창단의 스타로서 은근히 뻐길 만도 하건만, 그는 단원들 사이에서 가장 튀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다. 연습 시간에 지켜보니 그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할 뿐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 제가 내성적이에요. 노래를 하고 싶어서 합창단에 참여했지만, 제 얼굴이 방송에 비치는 것조차 민망합니다.” 그는 당초 인터뷰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이틀에 걸쳐 수차례 연락을 해서 설득한 끝에야 “자꾸 거절하는 것이 너무 죄송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를 통해 음악을 접했어요. 노래 부르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음악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병원 행정직원으로 일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의 가정이 화목하다는 것은 오디션 때 따라온 딸과 손녀가 열렬히 응원했던 모습을 통해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는 한 아마추어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노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혼자서 늘 가곡을 불러왔어요. 지역 구청이 만든 가곡 교실에 참여해서 합창단 활동을 해 왔지요.”
그는 다른 사람과 화음을 이루는 합창에 익숙하기 때문에 청춘합창단 동료들과 연습을 하는 시간이 편하다고 했다. 나이 탓에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지만,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과 어울리니 생동하는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수많은 역사적 격변을 지켜봤던 세대다.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자식, 손자뻘의 사람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을까.
“여러 가지 형편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었더라도 인생을 멀리 내다보고 그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둘째 네살때부터 하프 해외연주 다녀… 자식엔 마음의 빚
소녀시대 춤도 거뜬 배용자씨
2NE1의 ‘아이 돈 케어’,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의 리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75세의 청춘. 배용자씨는 나이로 봐서는 분명 할머니인데 그렇게 부르기가 어색할 정도로 젊은 분위기를 풍긴다.
늘 즐거운 모습으로 청춘합창단의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번이나 숙연해졌다. 평생 그늘 없이 살았을 것 같은 그에게도 남모르게 속 눈물을 삼켰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1950년대부터 하프 연주자로 활동했어요. 그 당시에 국내에는 하프가 참 귀했지요. 1970년대 초반에 홍콩과 태국 등으로 진출했어요. 그때는 태국이 한국보다 잘 살았을 때인데, 초호화호텔에서 공연하며 돈을 잘 벌었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어요. 큰 아이가 열 살, 둘째가 네 살 때 외국으로 나갔거든요.”
젊었던 그는 아이들에게 돈을 많이 대주는 부모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부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 되는 지를 미처 몰랐다.
“아이들은 다행히 잘 커 줬어요. 하지만 엄마로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잘못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7~8년 전에 두 아들이 사업 실패로 고생할 때 그 빚을 대신 갚아준 것은 과거에 대한 뼈저린 회한의 심정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노년에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자식들이 재기했으니 그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청춘합창단에 참가하는 은혜를 입게 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합창 연습과정에서 동료 단원들이 김태원 지휘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중구난방 떠들 때, 그가 앞에 나서 “어떤 경우든지 지휘자 말을 따라야 한다”며 동료들을 설득한 적이 있다.
“김태원씨는 뛰어난 작곡가이고 기타리스트이지만, 지휘자로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더라도 그분이 젓는 노를 모두 따라가야지, ‘잘 한다’, ‘못한다’하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그분은 지휘를 잘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구석에서 연습을 하더군요.”
그는 “힘든 일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살면, 반드시 보답이 돌아오는 게 인생”이라며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증권사 사장 출신… 은퇴 후 기타·국악·뮤지컬 ‘제2 인생’
금융통서 음악통 변신 전웅씨
“아이돌 노래요? 우리 세대는 TV에서 그런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지요. 청춘합창단에서도 처음에 불렀을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부르면 부를수록 흥겹더군요.”
전웅씨는 내년에 환갑이지만, 목소리는 그보다 열 살은 젊어 보였다. 오디션에서 스스로를 ‘전직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했던 그는 금융가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30여 년간 증권전문가로 일하며, 교보투신운용본부장,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사장 등을 지냈다. 그는 “청춘합창단이 제2의 인생을 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 재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음악을 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반대하셨지요.”
그는 직장에 다니면서 음악과 거리가 멀어졌다.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직장 업무에 몰입을 했다. 그 결과 금융인으로서 크게 인정받으며 증권사 사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는 2007년 증권사를 은퇴한 후에 기타 학원에 등록하고, 국악과 뮤지컬을 배우러 다녔다. 어렸을 때 꿈꿨던 음악인의 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쉽지 않더군요. 제가 금융계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음악계엔 전혀 없으니 어디서 노래 무대 하나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참에 청춘합창단 소식을 듣고 오디션에 응했다. 그는 “중저음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얻으며 베이스 파트에 배속됐다.
합창단 연습 도중에 지휘자 김태원씨가 “베이스 파트의 가사를 테너 파트로 옮겨갈 수도 있다”고 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잘할 테니 제발 그러지는 말아달라”며 호소 작전을 펴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청춘합창단이 끝나도 계속 노래를 부르는 길에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합창단 일원으로 활동할지, 솔로 가수로 나서게 될지는 나중에 판단할 생각이다. “이 나이가 되니 삶이 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인생과 비교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면 통찰력이 생겨 일가를 이룰 수 있지요. 그러면 다른 길도 자연스럽게 열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대문에서 옷팔며 암으로 먼저 간 남편에게 보여주려 시작
30여년간 뮤지컬 활약 손해선씨
올해 58세의 손해선씨는 합창단에서 ‘막내’로 불린다. 그보다 나이가 어린 단원도 있지만, ‘언니들’은 손씨를 막냇동생처럼 예뻐한다. 늘 환한 얼굴로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성격 덕분이다. “제가 본래 설치고 다니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헤헤.”
손씨는 21세 때 국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에 들어간 이후로 30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해왔다. 그는 청춘합창단 오디션 때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에게 당신 없이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남편은 2010년에 타계한 연극배우 서희승씨.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손씨의 목소리가 젖어들다가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떨쳐버리려고 하는데도, 추석을 앞두고 1주기(9월7일)를 맞으니 이렇게 자꾸 울먹이게 되네요.”
손씨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남편의 직장암 발병과 수술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30여년간 국립극단에서 활동했던 서희승씨는 수술 직후 연극 무대에 올랐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1년만 활동을 쉬라”는 아내의 말에 서씨는 “배우는 무대에서 죽는 게 영광”이라며 웃었다. 그 말이 화가 됐을까. 암이 전립선에 전이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의사의 말을 따라 종양 적출 수술을 한 지 3개월도 안 돼서 세상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의료 사고가 있었다. 병원 측에서도 과실을 인정했으나 그 책임 범위를 둘러싸고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게 손씨의 설명이다. “그 일에만 매달리며 속상해하지 않아요. 올해 1월부터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시조카가 하는 일을 거들고 있는데, 적성에 맞는지 너무 재미있어요.”
청춘합창단 오디션 때 따라왔던 그의 외아들 서재경(29)씨는 아역 배우 출신이다. MBC ‘한지붕 세 가족’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고, 청소년 드라마 ‘사춘기’와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도 호평을 얻었다.
“그런데 군에 다녀온 2009년 이후 배우로 컴백하는 데 애를 먹고 있어요. 이런 참에 제가 청춘합창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우리 가족에게 큰 선물입니다.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하며 기쁨을 얻듯이 아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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