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군 과수원에서 육성근씨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며 웃고 있다.
전북 장수군 과수원에서 육성근씨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보며 웃고 있다.
장마 피해 본 장수 사과 재배 육성근 씨“한창 비가 오고 태풍이 불 때는 완전 망하는 줄 알었지. 근디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고. 덥고 따가운 뙤약볕이 사람을 지치게 허지만 그랴도 이런 햇볕이 얼마나 고마운겨. 예년만은 못해도 추석은 그럭저럭 날 것 같햐.”

지난 5일 ‘추석 사과’ 주산지로 알려진 전북 장수군에 들어서자 정자에 모여 앉은 동네 어르신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두대간에 둘러싸인 장수군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은 불과 보름 전 만해도 올해는 추석에 맞춰 추석 사과를 출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많이 와 과수가 익을 정도로 일조량이 충분치 않았고 바람까지 강하게 부는 등 기후조건이 워낙 좋지 않은 데다 올해는 추석이 여느 해보다 빠르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8월 초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강풍이 불어 장수군 전체 사과 농가에서 20% 정도가 낙과 피해를 보면서 농민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960여㏊에 걸쳐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600여 농가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추석 출하기를 놓치면 가격도 떨어지는 데다 수요가 줄어들면 다시 가격이 떨어져 결국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와서인지 여름의 끝자락에서야 얼굴을 내민 태양 덕분에 장수군은 어느새 온통 새빨갛게 농익은 사과 빛깔로 넘쳐나게 됐고 사과를 따는 농민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육성근(36)씨는 “얼마 전만 해도 올해 사과농사 완전히 망쳤구나 생각했다”면서 “다행히도 8월 하순부터 비가 그치고 맑은 날이 계속되면서 일조량이 늘어 수확률이 80%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육씨는 “귀농 후 사과 농사를 10년째 짓고 있지만 올해만큼 힘든 때가 없었다”며 “정말이지 비 많고 바람 많은 올해 같은 여름이 내년에도 계속되면 사과 농사 짓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던 육씨는 제 빛깔을 내고 있는 추석 사과를 대견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

육씨가 말하는 추석 사과라는 것은 사과 품종 가운데 ‘홍로’를 의미한다. 다른 사과보다 꽃 맺음에서 열매 수확까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짧아 추석 즈음에 수확이 가능하다고 해서 추석 사과라고 부른다. 반면 11월 중순쯤 수확하는 ‘후지’ 품종은 ‘설 사과’라고 한다.

추석 사과는 지난 봄 이상기온으로 사과나무의 꽃피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8월 초까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벌써 수확에 들어가 저온 저장고에서 3~4일 숙성한 후 출하까지 끝내야 하지만 올해는 출하 시기가 늦어져 제 가격을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5㎏ 한 상자의 경우 과수농가에서 출하되는 가격이 지난해에는 4만~5만원이었지만 올해는 이보다 1만원 정도 낮게 책정됐다.

그러나 사과 재배 농가들은 이런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해외 수출을 위한 활로를 개척하고 있다. 육씨를 비롯해 장수군의 30~40대 젊은 농업인들은 이미 지난해 러시아와 대만으로 사과와 배를 5t이나 수출한 경험이 있어 수출이 가능한 새로운 국가들을 물색 중이다. 육씨는 “과수 수출은 아주 높은 단가를 받을 수는 없지만 생산비와 유통비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준다”며 “당도가 높아 아삭 아삭한 우리나라 과일맛을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인터넷 판매를 통해 매출을 늘리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김종훈(42) 신농사과영농조합법인 대표는 “홍로의 경우 추석 전에 인터넷이나 통신판매를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후지 품종은 직거래 형태인 인터넷 판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0여년 전 인터넷 직거래 판매를 시도했었다가 주문 및 발송 과정에서 실수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때보다는 주문 및 발송 과정이 많이 좋아졌다는 판단에 따라 인터넷 판매를 재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육씨와 김 대표는 장수군의 비슷한 또래 귀농인들과 머리를 맞대며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이들이 경작하는 사과 농장의 면적은 30㏊ 정도다. 부농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과수 재배 및 생산, 판매의 모든 과정에서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성공한 귀농인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김 대표는 “젊다 보니 농업에 대한 정보교환 등이 용이하다”며 “대도시에서 팍팍한 월급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자리잡은 10년 동안 한가족처럼 됐고 이번 한가위에도 함께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수 = 박팔령기자 park80@munhwa.com
박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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