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중 첫 소설집 ‘개그맨’2010년대 한국 문학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소설가 김성중(36)씨의 첫 소설집 ‘개그맨’(문학과지성)이 나왔다.

지난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웹진문지문학상 등을 잇달아 수상한 김씨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 왔다.

등단 이후 김씨가 발표한 단편소설 9편을 묶은 창작집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작가에게 쏟아졌던 찬사가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우선 표제작 ‘개그맨’은 창작집에서 ‘인간적인’ 깊이가 가장 돋보이는 수작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TV 안에 있다. 그는 개그맨이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은 고통받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심연을 들춰낸다.

한 개그맨과 사랑했지만 다른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후 14년간 ‘무탈하게’ 산 여자가 주인공이다. 나이 차가 많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녀는 옛 애인이었던 개그맨의 부고를 받고 자신과 헤어진 이후 그가 걸었던 삶의 족적을 뒤쫓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상처가 세밀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노래 속의 인생을 다 통과했을 때, (중략) 나는 인생이 낭비되어 버린 것을, 어떤 선택지에도 동그라미를 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이곳의 누구보다 외롭고 비참해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작품 ‘버디’는 평균 수명이 140세까지 늘어난 미래 세계의 참혹함을 그리고 있다. 여든이 넘은 우울한 ‘나’와 한쪽 눈이 불구인 아나키스트 버디, 그리고 평균 수명의 절반 수준에서 곧 생을 마치게 될 여인 R의 기이한 동거를 배경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작품은 죽음을 대비할 시간이 지루할 정도로 길어진 시대의 역설적 악몽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늘어난 삶의 시간이 정녕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단편 ‘게발선인장’으로 연결된다.

소설 ‘게발선인장’의 주인공은 파란만장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 노년을 맞은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할아버지는 사이비 종교 ‘일주교’의 교주로 행세하며, 할머니는 일주교의 유일한 신도다.

하지만 단순히 할아버지(교주)가 할머니(신도)를 속이는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가짜 교주의 자리에서 내려와 삶을 되찾으려는 할아버지의 뒷덜미를 잡고 있는 것은 할머니다. 삶의 목적이자 이유가 돼 버린 할아버지의 교주 노릇을 할머니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현실을 잊고자 만든 자신의 환상에 결국 더 큰 상처를 입는, 힘없는 노년의 절망적인 삶을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

이외에도 고전 ‘토끼전’을 김성중의 스타일로 패러디, 상처와 치유에 대해 우화적으로 접근한 작품 ‘간’, 희망은 봉인되고 출구마저 막힌 악몽의 끝없는 순환을 보여 주는 ‘순환선’, 파국의 불안이 가중되는 반성장 시대의 성장통 이야기 ‘허공의 아이들’, 서로의 그림자가 바뀌면서 왜곡되고 전도된 그림자들로 혼돈의 도가니가 된 섬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 사건들을 담고 있는 ‘그림자’ 등 수록작들은 만만찮은 깊이와 내공을 담고 있다.

글 =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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