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작가 새 소설집 ‘포주 이야기’“나는 포주였다. 이것이 첫 문장이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 출간된 김태용(38) 작가의 신작소설집 ‘포주 이야기’(문학과지성)의 표제작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이 소설에서 화자(話者)는 ‘나는 포주였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쓰면서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괴로워한다.

전직 포주인 화자는 무의탁 독거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에게서 처음 한글을 배운 뒤로 내적 분열을 일으킨다. 글을 알기 전까지는 포주로 살아온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화자는 “글을 쓸수록 나의 죄는 점점 부풀려지고 가중되어가는 것만 같다. 글 속에 은폐된 더 고약한 죄의 이력이 나를 괴롭힌다.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다. 기억을 불러내어 글을 쓸수록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다”고 털어놓는다.

글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결국 작가 자신이 글, 즉 문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작가 역시 글에 대해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반골적 태도는 이야기를 신전에서 끌어내려 세상의 다른 사물들과 접촉하며 섞여드는 여러 사물들 가운데 일부로 만든다. 이것이 ‘문학 이후의 문학’을 계승하는 김 작가의 면모다. 문학평론가 김태환씨는 이 같은 작가세계에 대해 “김태용은 소설 뒤에 소설이 있다, 문학 뒤에 문학이 있다고 말한다”며 “그것은 이 도시의 어두운 바닥에 쏟아져 스며들어 가는 문학의 배설물, 문학의 유해로서의 문학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작품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각성 상태인지 환각 상태인지 모를, 환자인지 이미 시체인지 모를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사람들은 한정된 공간, 곧 침상 위나 혹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말을 이어간다. 심하게 말하면, 소설은 없고 ‘소설적인 문장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문장만이 남아 중얼거릴 뿐이다. 술술 읽히는 주절거림, 턱턱 걸리는 문장들, 불쑥 솟아오르는 이미지들뿐인 소설 속에서 독자는 과연 어떤 소설적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은 이 소설집에서 그 어떤 소설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록작들은 분명히 소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지와 감각적 문장 안에서 소설적 이야기를 어느새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포주로 길러진 한 소년(단편 ‘포주 이야기’), 제대를 앞두고 부대로 복귀하지 못하고 숲을 헤매는 군인(단편 ‘웅덩이’), 입양돼 미국에서 자란 뒤 찾아온 아들을 병상에서 맞는 노인(단편 ‘머리 없이 허리 없이’) 등 민족사와 가족사가 얽힌 인생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게다가 이러한 인간 군상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어떻게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소설적 장치에서 글을 부정하는 글,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써나가는 한 작가의 대안적 소설, 다시 말해 새로운 소설을 발견할 수 있다. 수록작 ‘머리 없이 허리 없이’는 올해 ‘제2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이 소설은 온갖 역설과 모순의 수사법으로 점철돼 있다.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횡설수설”이라며 “김태용의 횡설수설은 해체되면서 동시에 뭔가 엉뚱한 이야기의 구조물을 지어낸다”고 평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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